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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무책임할 권리’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13(Tue) 13:00:00 | 14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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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심각한 사건이 나라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올림픽을 앞두고 예언컨대, 올림픽이 지나가도 이 두 사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잠시 수그러들었다가도 다시 피어오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 고름 덩어리의 핵심이 터져나온 사건이고, 그냥 두면 계속 아프기 때문에 사람들이 만지고 또 만지지 않을 수 없다.

 

맞다. 짐작하신 대로 하나는 서지현·최영미 두 여성이 꼭지를 따버린 성폭력 권하는 사회라는 고름 주머니다. 또 하나는 정형식이라는 이름을 저명인사 사전에 등재해 버린 이재용 삼성 부회장 집행유예 판결이다. 재벌 불패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두 사건은 그 겉모양은 매우 다르지만 평행우주 같은 데가 있다. 물론 암종 또는 고름 덩어리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라도 말이다.

 

그 닮은 점을 나는 ‘무책임할 권리’와 ‘회수’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자 한다. 먼저 성폭력에 대한 고발과 폭로를 살펴보자. 검찰이라는 권력조직 내의 상급남성이 하급여성 검사에게 저지른 성추행은, 중인환시리에 아무도 말리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서슴지 않고 행해졌다. 성적 침해임을 과연 안태근 검사가 몰라서 그랬을까. 이후 서 검사가 처한 상황을 보면 그는 그 성추행의 내밀한 의미를 알아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 메커니즘은 최영미가 고발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남성중심 사회의 일종의 배제 시스템이란 것이다. 정형식이 이재용 석방의 내밀한 의미를 알아도 너무나 잘 알 듯이. 온 국민 또한 너무나 잘 알 듯이. 이 또한 시스템이고 헌법이나 기타 법률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해 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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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판결은 재벌이 대한민국이라는 헌법적 공동체의 법 위에 군림한 존재임을 드러내었고,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성들이 법과 사회적 안전장치들이 보호해 주지 않는 사적 영역에 갇혔던, 즉 아래에 있는 존재임을 드러냈다. 즉, 전혀 다른 방향에서 우리 사회에 시민적 가치를 벗어난 영역이 있음을 드러내었다. 재벌과 여성은 다 사회 바깥에 있다. 이재용이 법의 이름으로 석방된 것은 시장이라는 자본주의적 장치가 사회라는 인간적 결합의 장소를 파괴한다는 증거이고,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그토록 오래 자주 고발하여 외쳐도 이제야 겨우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마땅히 형성해야 할 인간공동체 사회를 여성을 삭제한 채 만들고  있었다는 증거로 이야기해도 될 것이다.

 

이 두 사건이 만났다. 같은 시간대에, 흔히 말하는 물타기가 아니냐는 음모론적 의심을 받으면서 등장한다. 성폭력으로 재벌 불패 신화를 덮을 수 있다는 판단을 누군가가 정말로 했다면, 그 또한 우리 사회가 공적 책임을 구축하는 일에 얼마나 무능했던가를 말해 줄 뿐이다. 초법적 사건을 무법적 사건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가능할까. 예전엔 가능했으나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 어느 쪽을 더 심각하게 여기는가는 경쟁할 문제가 아니다. 드디어 시민정신이란 것이 발생하기 시작한 증거로 나는 읽는다. 이재용도 법을 자기 편의대로 구부려 적용받으면 공분을 사고, 성폭력한 자들도 ‘배려의 손’을 놀리면 공분을 산다. 더 이상 무책임할 권리가 없다.

 

시대가 결코 매끄럽게 발전하진 않지만, 이 삐그덕을 견디며 저 너머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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