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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평창 오는 ‘장마당 세대’ 北 체제 변화 이끌까

북한 선수·예술·응원단, 방남 전 철저한 사상교육 받아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12(Mon) 08:00:00 | 1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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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 벽두부터 ‘북한’이란 쓰나미를 만났다. 2월9일 개막식에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한 데다 이를 전후해 응원단과 예술단 공연, 태권도 시범단 등이 파상공세를 펼친 것이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을 파견하는 카드를 던짐으로써 평창올림픽이 북한발 소용돌이에 더욱 휘말린 형국이다. 일각에서 ‘평양올림픽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관심을 보인다는 건 지난해 말까지는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김정은이 주도한 핵과 미사일 도발로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제재와 고립을 자초한 상황이라 대남 비방 등 대립각을 세워왔다는 점에서다. 그렇지만 1월1일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그는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고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발언도 쏟아냈다. 새해 들어 북한이 대화 공세 등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지난해 말 일부 나왔지만 김정은이 직접 공식 석상에서 평창올림픽까지 거론해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려고 나선 건 예상 밖의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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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평창올림픽으로 유엔 제재 시험

 

올림픽을 계기로 한 북한의 공세는 치밀하고 집요하다. 잇단 깜짝 카드로 올림픽을 가로채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까지 외신들은 내놓는다. 대북제재 대상이 된 만경봉호와 항공기, 주요 인물들을 평창에 잇달아 투입함으로써 한국 정부는 물론 유엔을 시험하고 있다. 북한에 가급적 전향적인 태도로 호응하려는 입장인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이슈 때문에 미국과 국제사회에 아쉬운 소리를 하느라 바쁜 형국이다. 우리 국민들이 북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두고 갈라섰다. 남남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한·미 공조의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공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보다 대범하게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북한의 올림픽 대화 공세를 짚어보면 북한 내부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500명 안팎의 북한 인력이 평창행을 결정했지만 부담도 크다는 진단이다. 이는 북한 관영매체 등이 동계올림픽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평창’이란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이 같은 북한의 신중한 모습은 평창올림픽 이후 상황관리 때문으로 보인다는 게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남조선’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는 건 북한 당국에 있어 주민들에게는 절대 알려서는 안 될 비밀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대해 말한다면…”이라며 운을 떼버렸다. 북한 주민 대부분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신년사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천기누설’로까지 볼 수 있다. 자칫 “남쪽에서는 88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어 동계올림픽까지 열리는 데 우리는 뭔가”라는 동요의 입소문이 주민들 사이에 번지면 큰일이다. 

대부분 2030세대인 북한 선수와 응원단·예술단의 입단속도 쉽지 않은 문제다. 마식령스키장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인 국제 수준의 동계올림픽 시설은 물론 서울~강릉 간 고속철도(KTX) 경험, 번화한 서울 전경과 강릉·평창 등의 모습은 이들에게 큰 충격일 게 분명하다.

 

북한은 이미 김대중(DJ) 정부 때인 2002년 10월 고위급 경제시찰단 남한 방문 때 유사한 경험을 했다. 남산 서울타워에 올라 고층빌딩과 서울의 불야성을 마주한 북측 고위 인사들은 “눈이 두 개밖에 없어 더 많이 볼 수 없는 게 안타깝구만…”이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선물 등을 너무 많이 받는 바람에 “평양에 돌아가 시계방을 차려도 되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KTX 경부선 구간을 시승한 이들은 시속 300km를 돌파하자 일어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남한 사정을 좀 안다고 자신하던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도 경기도 기흥의 삼성전자 생산라인을 돌아보다 김치냉장고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들이 돌아간 직후 정보당국이 판문점을 통해 김치냉장고를 몰래 보내준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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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남한 다녀간 고위층 줄줄이 숙청

 

북한 고위층들에게도 남한행은 극도의 스트레스다. 자칫 잘못하다간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적진에 들어가 장군님의 전사로…”를 운운하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란 얘기다. 경제시찰단 단장으로 왔던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은 김정은이 주도한 화폐개혁 실패의 희생양으로 처형당했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제1부부장도 반체제 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 때 밀사로 서울에 왔다 돌아간 류경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부부장도 간첩죄로 처형당했다. 김영남이나 현송월도 이런 스트레스의 예외일 수 없다. 정부 당국자는 “오빠의 든든한 후광을 업은 김여정만이 거의 유일하게 숙청이나 처형의 부담 없이 남한을 다녀갈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2030세대는 이른바 ‘장마당 세대’로도 불린다. 국가체제의 배급에 의존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대부분의 생활을 비공식적인 장마당 유통에 의해 영위한다는 점에서다. 이를 통해 북한 체제의 문제점은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외부 사조에 눈뜬 경우가 많다. 북한판 한류라 불리는 가요와 영화·드라마를 적어도 수십 편씩은 접했을 것이란 게 같은 또래 탈북 여성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이번에 평창에 오거나 다녀간 북한 선수단과 예술단·응원단의 경우 사전에 철저한 사상교양을 받고 파견됐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또 남한 체류 일정 중에도 끊임없는 감시와 자아비판 등이 이뤄진다. 평양에 돌아간 뒤에는 가혹할 정도의 사상검증과 단속이 이뤄진다. 과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등에 왔던 여성 응원단 중 일부가 친구나 가족에게 남한 사회의 발전상에 대해 언급했다가 엄한 처벌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런 사례를 들며 북한 당국이 날 선 경고를 잇달아 보내고 있지만 남한의 발전상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을 청춘세대들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커튼이 내려진 차창이나 호텔·선박의 창문을 통해 북녘의 젊은 체육인과 예술인들은 목도할 것이다.  ‘낡고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로 선전되고 강요받아온 ‘남조선’의 발전상은 그들에게 충격일 수 있다. 돌아가는 그들의 보따리에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일깨우는 민들레 홀씨가 가득 담길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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