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르포] '부동산 다단계 영업사원' 양산하는 현장을 가다
  • 박소정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8 13:39
  • 호수 147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모는 몇 분이나 계시니?”…지인에게 우선적 투자금 유치 요구 논란

 

‘여성사원 특채. 근무: 오전 10시~오후 4시, 급여: 130만+a(인센티브), 월 500만원 가능, 연락처: OOO-OOOO-OOOO’.

서울 사당역에 붙어 있는 한 전단지 내용이다. 회사명도, 위치도 명시돼 있지 않았다. 이런 전단지는 서울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체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구직 문의 문자를 보내자 ‘모집은 이미 끝났지만, 오늘 오후 3시에 면접을 보겠느냐’는 답장이 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회사를 ‘종합부동산업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며 ‘교육을 받아보면 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면접에 응하겠다고 하자, 회사 위치를 보내줬다. 찾아간 사무실에는 부동산업체가 아닌, 다른 상호가 쓰여 있었다. 업체는 이력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면접도 회사 임원들과의 가벼운 대화만으로 끝났다. 다음 날부터 교육을 받으러 오라고 했다.

 

 

“연봉 6억원 벌 수 있다”며 영업활동 부추겨

 

교육은 부동산업체 상무의 ‘성공신화’로 시작됐다.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선 거야. 나도 모르는 새 빚이 4억이 돼 있었어. (부동산업체) 입사 후 2개월 만에 괜찮은 땅이 있어서 내 돈 1250만원에 1000만원 빚을 내서 투자했지. 15개월 만에 4억 빚을 다 갚았어.” 입사 첫해 2250만원을 투자한 부동산의 시세 차익과 연봉만으로 불과 1년3개월 만에 4억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연봉과 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직위쯤 되면 연봉 5억~6억원은 벌어.”

둘째 날에는 회사의 경쟁력을 과시했다. 업체 대표는 이같이 설명했다. “우리 회사만이 확보하고 있는 정보력이 있지. 국토부에 친구가 있고, 경기도 ××시장이 내 친구 형이에요. 현지 지주들과도 네트워크가 다 만들어져 있어요.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력이 있는 거야.” 이 회사가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이 업계에서 이 일을 오래 해 온 우리 회사만이 가능한 거예요. (교육생) 세 분은 회사 잘 만난 겁니다. 무술년의 행운아들입니다.”

 

그러나 업체는 정작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도 ‘출근을 하면 차차 알려주겠다’고만 했다. 그 다음 날,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출근표에 적힌 각자의 이름 옆에 출근시간을 기록하고 사원들의 일터인 ‘객장’을 안내받았다. 조그만 독서실 책상 8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책상마다 전화기가 한 대씩 놓여 있었다.

 

회사명도, 위치도 명시돼 있지 않은 수상한 구인 광고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붙어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업체는 앞서 주요 업무에 대해 ‘부동산 경매 대행’이라고 에둘러 밝혔지만 실상은 달랐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경매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여느 경매업체와 달리, 이 회사는 고수익을 미끼로 부동산 투자금을 모집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그리고 유치한 투자금의 10%를 인센티브로 지급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직원은 “투자금 일부는 윗선에 수당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직위가 올라가면 억대 연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금융당국의 인허가를 받지 않고 고수익을 약속하며 투자금을 모집하는 행위는 유사수신행위에 관한 법률에 저촉된다. 사실상 무허가 금융업체를 운영하는 것과 같다. 위반 시 2년 이상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직접판매공제조합의 한 관계자는 “다단계식으로 영업을 하고 수당을 지급한 게 맞다면 의무적으로 조합에 가입해야 한다”며 “문제의 업체는 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은 만큼 불법 피라미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영업은 사실상 다단계식으로 이뤄졌다. 조회시간 이후부터 점심시간 전까지 직원들은 이곳저곳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부분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편하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서로 간에 친분이 형성되면 대화는 이내 부동산 투자로 흘렀다. 블로그나 밴드, 카페에 팀장이 공유한 정보를 모아 게시물을 올리는 사원도 있었다. 업체는 먼저 지인들을 중심으로 공략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업체 직원에게 ‘가족 중 한 명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슬쩍 말을 건넸다. 그러자 대화를 들은 상무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투자를 해 봤냐고 물어봐. 어떤 부동산에 관심이 있고, 어느 지역을 산 적 있는지. 그러면 막 자랑을 할 거야. 그 얘길 잘 듣고 우리한테 전해 줘. 또 어떤 땅을 추천하는지를 물을 거 아냐. 그러면 딱 이렇게 말해. ‘이모, 나는 잘 몰라’라고.” 옆에 있던 팀장이 자신의 번호가 새겨진 명함을 건넸다. “여기로 전화하시라고 해. 내가 설명해 드릴게.” 그리고 덧붙였다. “이모가 몇 분 계시지?”

 

‘객장’ 내부에는 대부분 50~60대 주부로 이뤄진 사원 2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 사진=박소정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