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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소시민과 가장의 고뇌 등에 업은 ‘한국형 히어로’

천만감독 연상호, 색다른 기획으로 슈퍼히어로 장르 불모지에 도전장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6(화) 18:00:00 | 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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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평범한 사람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게다가 그 배경이 한국이라면 어떨까. 2000년대 들어 마블과 DC를 필두로 한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세계 영화 시장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드문 시도다. 《염력》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평범한 중년 남성 석헌(류승룡)이다.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2016)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를 꼬집었던 연상호 감독. 그가 이번에는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통해 무분별하게 자행돼 온 도시 개발의 이면과 소시민의 울분, 소원했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 회복을 이야기한다. 《염력》이 위로하며 보듬고 싶은 가치들이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영화 스스로 일정 정도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충분히 효과적인 방식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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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초능력, 흙수저 딸을 구하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세상에서 약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보여준다. ‘대박 치킨집 청년 사장’으로 화면에 첫 등장했던 루미(심은경)의 현재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가게 구석에서 쪽잠을 자는 신세다. 가게가 있던 곳이 대기업의 투자개발 지역이 되면서다. 버티려는 이들과 쫓아내려는 용역들의 몸싸움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루미는 엄마마저 억울하게 잃는다.

 

석헌은 10년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린 루미와 아내를 남겨둔 채 집을 나왔다. 그는 은행 경비원으로 일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처지다. 눈에 띄는 건 석헌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전, 카메라가 그의 동료인 은행 청소부 아주머니(예수정)부터 주시한다는 점이다. 그가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은행에 손님용으로 비치된 믹스커피 다발이다.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인 은행. 하루에 일일이 세기도 어려운 돈이 오갈 때, 그곳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누군가는 공짜 커피 한 잔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해 침을 삼키는 형국이다. 결국 그는 젊은 직원에게 수모를 당한다. 고작 믹스커피 몇 개를 가져갔다는 이유다.

 

카메라가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는 크게 상관없는 이 장면을 굳이 주목한 뒤 넘어가는 이유는 나름 분명해 보인다. 영화의 주 무대인 도시 개발지역 외에도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고, 그렇기에 벌어지는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석헌과 그 주변의 일상은 늘 이런 일로 가득 차 있다. 악덕 건설업체의 홍 상무(정유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예’라는 말을 쓴다. 이 모든 상황을 뒤집으려면, 석헌과 주변 사람들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 위해선, 초인적인 힘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짜릿한 상상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능력이 아니고는 현실이 쉽게 바뀔 리 없다는 비관이 작용한 슬픈 상상력이다. 《염력》의 ‘소시민 히어로’ 석헌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서 석헌이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는 중년 남성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석헌은 “아빠 노릇 한번 제대로 하라고 이런 능력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며 초능력을 딸 루미와 철거민을 돕는 데 쓴다. 그의 노력은 물론 눈물겹다. 아버지를 오해하고 미워했던 딸은 서서히 미움을 거두고, 경제적 능력으로는 가족을 구원할 길이 없어 가족을 버려야 했던 석헌은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자리를 되찾는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아쉬운 점은, 흙수저 계급론과 헬조선 프레임에 갇힌 청년 세대 루미가 제힘으로 어떻게든 현실에 부딪쳐보다가 결과적으로는 석헌의 도움을 받는 캐릭터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염력》은 크게 보면 희생하는 아버지, 가정 안에서 다시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아버지의 서사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루미에게 초능력이 있었다면 같은 배경이라도 이야기 전개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도 가능하다. 애초에 왜 초능력은 루미의 것이 아니었는가. 이 시대 가장이 짊어진 무게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능력이 필요할 정도란 말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한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그 능력은 오직 아버지만 요구받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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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슈퍼히어로 영화는 가능한가

 

루미와 철거민들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대목에서는 용산 참사 모티브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대포, 쫓기듯 건물 옥상으로 몰리는 사람들,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진압작전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무렵, 현장에 나타난 석헌은 철거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경찰과 대치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실제 용산에서는 일어나지 못했던 기적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그리는 초능력을 지닌 소시민과 공권력의 대결은 ‘그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슬픈 가정법(假定法)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진상 규명이 명확히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현재진행형인 참사의 모티브를 오락적인 장치에 버무려 놓으니, 이를 마냥 즐겁게 바라볼 수만은 없어 난감해지는 것이다. 물론 코미디 영화에서 현실의 비극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구체적인 하나의 참사를 떠오르게 만드는 영화적 설정은 온당한지 자꾸만 돌이켜보게 된다. 언론시사회 당시 용산 참사가 연상된다는 지적에, 연상호 감독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도시 개발이라는 보편적 시스템 문제와 인간적인 히어로의 대결을 그리고 싶었다”며 “이 점이 대중 영화로서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한국에서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의 이야기는 흔치 않은 시도라 그만큼 이야기를 만들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다룬다 하더라도 아직은 사회적 약자들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초능력자》(2012) 역시 약자와 약자의 대결이었다. 이 영화는 기이한 초능력을 지닌 죄로 외톨이처럼 살아야 했던 초인(강동원)과 그의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고수)의 대결을 그렸다. 아직까지 ‘한국형 히어로’란 특별한 능력이 있더라도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저주로 안고 살아가야 하거나, 힘없는 사람들이 갑갑한 현실을 뒤집을 단 하나의 희망 차원에만 머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촛불 정권이 들어서며 일말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이 여전히 유효한 방식의 판타지인지는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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