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상 최고 미스터리 ‘올로프 팔메 암살 사건’
  •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2 11:22
  • 호수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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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32년째 미제 사건으로 남아

 

스웨덴에는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미스터리한 일이 하나 있다. 스웨덴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올로프 팔메 전 총리(1927~1986) 암살 사건이다. 그는 1969년부터 76년까지, 그리고 82년부터 86년까지 두 번에 걸쳐 스웨덴 총리를 역임하면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와 복지정책을 완성한 인물. 스웨덴 정치학도 80%가 ‘닮고 싶은 정치인’으로 꼽았던 그 인물이다.

 

그런데 스웨덴 민주주의 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암살당한 지 32년이 지났는데도 스웨덴은 아직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웨덴 정부가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다.

 

1986년 2월의 마지막 날인 28일 금요일 저녁. 스톡홀름 중심가 스베아베겐(Saeavägen) 45번지에 있는 영화관 ‘그랜드’에서는 스웨덴 코미디 영화 《모차르트의 형제들(Bröderna Mozart)》이 상영되고 있었다. 올로프 팔메는 이날 부인 리스베트 팔메와 함께 둘째 아들 모르텐 내외를 만나 이 영화를 봤다.

 

저녁 9시경 시작한 영화는 11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영화관 앞에서 아들 내외와 헤어진 팔메 부부는 영화관에서 멀지 않은 회토리엣(Hötorget)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팔메의 경호원은 오전 11시 퇴근했다. 평소 근무 시간이 아니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팔메는 다른 때보다도 일찍 경호원을 퇴근시켰다.

 

2016년 2월28일 올로프 팔메 전 총리 암살 30주년을 맞아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가 스베아베겐 거리에서 시민들이 꽃을 놓으며 그를 추모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

 

32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은 그날의 총성

 

팔메 부부가 스베아베겐 42번지 앞에 다다랐을 때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느닷없는 총소리와 함께 팔메가 쓰러졌다. 첫 번째 총알이 그의 가슴 위쪽을 관통했다. 리스베트를 향했던 두 번째 총알은 허공을 갈랐지만 팔메는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스웨덴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 올로프 팔메.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일컬어지던 영세중립국 스웨덴에서 그는 대로에서 암살당했다. 누구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1월30일은 올로프 팔메가 태어난 지 91주년 되는 날이다. 팔메가 사망한 날과 한 달 차이다 보니 스웨덴에서는 이 무렵부터 팔메에 대한 관심이 특별히 높다. 일부에서는 1월30일부터 2월28일까지 한 달 동안 그에 대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가 열린다.

 

특히 그가 공부한 스톡홀름대학에서도 팔메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이 열리곤 한다. 뿐만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등의 진보정치 포럼과 사회민주주의 모임, 그리고 팔메가 완성한 스웨덴 복지정책에 대한 학술 세미나가 열리기도 한다.

 

그는 헌법 개정을 통해 그때까지도 헌법상 전제군주국가였던 스웨덴을 입헌민주주의 국가로 바꿨다. 등극한 지 얼마 안 된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브 16세로부터 영국이나 노르웨이, 덴마크의 국왕들도 가지고 있던 제의주도권을 빼앗기도 했다.

 

또 타게 에를란데르 때 강화됐던 고용 유연성을 고용보장 강화로 바꿨고, 유럽 평균보다 낮았던 조세부담률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보편적 복지를 강화했다. 그래서 스웨덴 복지정책이 가장 진보적이었던 때가 올로프 팔메 집권기라고도 얘기한다.

 

사민주의(社民主義)와 복지, 노동에 이르기까지 스웨덴의 모든 것이 팔메 시대에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1977년부터 81년까지 실각의 시기를 보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메는 스웨덴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으로 규정됐다. 더구나 스웨덴 귀족 집안 출신이고 가난이라고는 알 수도 없는 환경에서 자란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팔메의 죽음은 그가 죽은 지 32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미제(未濟) 사건이다. 범인에 대한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원래 팔메의 암살 사건 수사는 2011년 2월28일 영구 미제 사건이 될 수 있었다. 스웨덴은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가 25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메의 사건은 특별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기로 함에 따라 현재까지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스웨덴 시민들은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간주하고 있다. 사건 초기 수사를 맡았던 경찰도, 이후 사건 수사를 이관받은 스웨덴 비밀경찰 세포(Säpo·우리의 국정원에 해당)도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단서 하나 잡지 못하고 있다. 사건 당시 대여섯 명의 목격자가 범인을 봤고 3월1~2일에 걸쳐 범인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도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웨덴 국회의사당에 있는 올로프 팔메의 청동상(왼쪽). 팔메가 괴한의 총에 맞은 자리에는 이를 표시한 동판이 박혀 있다. 동판에는 ‘이곳에서 암살당했다. 스웨덴 총리 올로프 팔메. 1986년 2월28일’이라고 적혀 있다. © 사진=이석원 제공

 

“누구도 사건 해결 의지 없어”

 

지난 30년간 팔메 암살의 배후에 대한 음모론만 그치지 않는다. 소련 친화적인 팔메를 좋지 않게 생각한 미국 CIA(중앙정보부)가 벌인 일이라는 추측에서부터 팔메의 사회주의적인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려던 극우 세력의 사주,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추종자의 범죄, 유럽 군수산업계의 사주, 쿠르드 노동자당의 소행 등등 여러 가지다.

 

사실 한국 사회에 올로프 팔메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팔메의 사회민주주의 입장에 대한 관심만 최근 10여 년 사이에 급격히 증가하고 있을 뿐이다. 각 대학 정치외교학과에서 나오는 논문을 제외하고는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책이라고는 2012년 출간된 하수정씨의 《스웨덴이 사랑하는 정치인 올로프 팔메》 정도다.

 

팔메 살인범은 과연 잡을 수 있을까? 진짜 스웨덴 정부는 이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아직 남아 있을까? 남녀노소를 막론한 스웨덴 사람들이 아직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사건은 영구 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가 자신이 진짜 팔메의 암살범이라고 나서기 전에는 말이다. 하긴 지금까지 150여 명이 ‘내가 팔메를 쐈다’는 주장을 해 왔기에 진짜 암살범이 나타난다 해도 입증할 가능성이 별로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메 탄생 91주년, 서거 32주기가 되는 1월30일부터 2월28일까지 ‘팔메 일생의 달’에는 팔메 연구와 함께 그의 암살범에 대한 관심의 불씨도 지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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