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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시론] 다음 세대에겐 생존 이상의 고민 물려줄 수 있기를

남인숙 작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2(Fri) 14:00:00 | 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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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3일, 2017년 청소년 종합 실태조사 결과가 보도됐다. 청소년들은 직업 선택에서 돈보다는 장래성과 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절반 정도가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정확한 실체는 모르더라도, 거대한 꿈 하나쯤 품고 있고 거개의 미래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장면으로 모아지던 이전 세대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한 건 이것이 달라진 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만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판단이 아닌 ‘불안’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 불안은 어른들이 이미 살고 있는 세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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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핀란드 젊은이들을 초대해 한국을 여행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줘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회차를 더할수록 인기가 더해져 종국에는 그 채널이 생긴 이래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출연자들이 천부적인 유머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눈길을 끄는 외모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게 한 그들의 매력은 낯설게마저 보이는 그들의 ‘여유’였다.

 

한국인들은 여행할 때조차 치열하고 경쟁적이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도 한국인들이 많은 여행지의 특정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면 유난히 긴장해야 한다. 이처럼 경쟁이 일상화돼 있는 우리에게, 조바심 내지 않는 태도와 여유롭게 열린 시선으로 낯선 사회를 대하는 핀란드 청년들이 잠시나마 휴식을 준 것이다.

 

물론 그들의 고향인 핀란드도 무결점 천국은 아니다. 13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부동의 1위인 한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자살률이 높은 편이고, 높은 세율과 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불평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쟁이 아닌 상생을 성장의 방식으로 삼고 있는 교육과 복지정책,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로 모든 개인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안정감은 있는 곳이다. 우리처럼 열심히 살아도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을 절대 다수가 느끼는 사회는 아니다.

 

1990년대 비슷한 시기에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핀란드는 보편복지를, 한국은 신자유주의 도입을 통한 무한경쟁을 지향하며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 생존이 목표가 된 다음 세대의 심리 성적표인 것이다.

 

모두가 전력 질주하는 사회에서 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유를 포기하고 열심히 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살며 성취를 느끼고,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인간다운 사회다. 삶은 정글이라며 모두를 포식자로 키우는 것이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확인한 셈이다. 위대한 과학자나 예술가가 될 수도 있을 인재들이 다 같이 의사·공무원·교사를 꿈꾸게 하는 사회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자본주의의 정점 또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하는 현재 세상에서는 이제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은 없을 것이고, 양으로 계량하는 성취의 산법(算法)이 대대적으로 개편될 것이다.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이 시대에 다음 세대에게 생존 이상의 인간다운 고민을 물려줄 수 있는 가치관의 변화가 시작돼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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