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세이프가드 요건 3가지 중 2가지 충족 못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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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피해’와 ‘수입 증가와 산업 피해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 부족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미국이 우리나라의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것이다. ‘세이프가드(safeguard)’로 불리는 이 조치는 자국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잠정적 무역장벽이다. 그런데 미국이 세이프가드 발동요건을 지켰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이번 세이프가드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지난해 10월 발표에 따른 결정이다. 당시 ITC는 보도자료를 통해 “외국산 세탁기의 수입 증가로 미국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며 세이프가드 검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중심으로 우려가 일었다.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삼성과 LG의 점유율은 현지 업체 월풀에 이어 각각 2·3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1월22일(현지시간) 삼성·LG 등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기로 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관세 부과 권고안에 대해 이 같은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백악관에서 세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이 일일 언론 브리핑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언급한 ‘세이프가드 검토’, 결국 현실로

 

세이프가드는 정상가보다 싼 가격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매기는 덤핑관세와는 성격이 다르다. 덤핑관세는 시장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부과되지만, 세이프가드는 공정한 수입에 대해 가하는 규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동요건이 더 엄격하다.

 

그럼 미국은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서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을까.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이프가드 발동요건은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수입이 증가한 경우’다. 

 

미국 리서치회사 판지바는 자국의 한국산 제품 수입량을 조사한 바 있다. 여기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11월 삼성 세탁기를 수입한 양은 2016년 11월 대비 52% 늘었다. ITC가 세이프가드 가능성을 거론(10월)하기 전인 지난해 9월에 비하면 40% 증가했다. LG 세탁기의 경우 지난해 11월 수입량이 2016년 11월에 비해 9%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보다는 3배 늘었다.  

 

미국이 사온 태양광 제품의 양도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수입량은 2016년 11월 대비 두 배 이상 뛰었다. 우리나라는 미국 내 태양광 제품 시장에서 점유율 2위(21%)를 달리고 있다. 

 

 

세이프가드 발동요건① ‘수입 증가’…최근 1년간 증가는 사실

 

한국무역위원회의 2002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무역협회(WTO)는 “전체 기간 중 수입증가 추세가 있다고 해도, 최근의 수입추세가 급증하지 않을 경우 세이프가드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단 WTO는 “조사 기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고 덧붙였다. 즉 미국이 자의적으로 2016년 11월부터 1년 동안의 수입량을 세이프가드 판정 기준으로 삼았다면, 국내 세탁기․태양광 제품에 대한 수입제한은 타당한 부분이 있다. 

 

세이프가드 두 번째 요건은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나 그럴만한 우려가 있을 경우’다. 이에 관해 한국무역협회는 “상품의 점유율·판매·생산·이윤 및 손실·고용수준의 변화 등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1월23일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와 관련 민관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부당한 조치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발동요건② ‘산업 피해’…美 월풀 매출 오히려 지난해보다 늘어

 

한국산 세탁기로 인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미국 기업은 월풀이다. 현지 세탁기 시장 점유율 1위인 월풀은 “한국 세탁기에 50%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지난해 3분기 월풀의 매출액은 54억 달러로, 2016년 3분기(52억 달러)보다 오히려 3% 넘게 올랐다. 또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률은 6.1%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분기 미국 제조업 영업이익률 평균인 7.06%(CSI 마켓 조사)에 비해 1%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는 세 번째 요건은 ‘수입 증가와 심각한 피해․우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경우’다. 이에 대해 WTO는 “수입 증가에 의한 산업피해 효과와, 수입 증가 이외의 요인들에 의한 산업피해 효과를 분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동요건③ ‘수입’과 ‘피해’ 상관관계…근거자료 제시 안 해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한국 세탁기의 물량공세에도 월풀의 매출은 올랐다. 또 ITC가 세이프가드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지난해 10월 보도자료엔 ‘세탁기 수입 증가’와 ‘심각한 피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근거자료가 없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올 1월23일 민관합동대책회의에서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는 발동요건을 전혀 충족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세이프가드의 발동을 타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제협상 전문가인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는 이와 같이 말하며 “실리를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어떻게든 수입 공세에 대응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우리도 세이프가드에 상응하는 강경책으로 맞서야 한다”며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자동차에 관세를 매기는 등의 방법으로 자존심을 건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응해 WTO 제소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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