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 찾아주는 작은 책들이 인기 끌 것”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2 14:28
  • 호수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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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취향의 변화로 읽는 2018년 출판 전망

 

《트렌드 코리아 2018》(미래의창 펴냄)에서는 2018년의 최대 트렌드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비에 지출을 늘리고, 불안한 사회로부터 자기만의 안식처인 나만의 케렌시아를 찾아 나서는 현상’을 선정했다.

 

회복과 모색의 장소를 뜻하는 ‘케렌시아(Querencia)’는 나만의 공간이다. 케렌시아는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는 삶을 추구하는 ‘월든니즘(Waldenism)’과 개념이 비슷하다. 이들을 ‘워라밸(work-life balance)’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세대는 싫어하는 취향도 당당히 밝힌다는 ‘싫존주의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떤 공간으로 숨어들어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점가에서도 이런 세대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의 복잡다단한 일상과 결정의 어려움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외국 도서 《신경 끄기의 기술》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세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트렌드와 맞물려선지 지난해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대하소설이나 똑 부러진 교양서도 아니고 더군다나 유명 작가가 펴낸 책도 아니었다. 2016년 출판 키워드는 ‘위로’였는데, 위로로 회복한 독자들은 자존감을 찾고 행복을 추구했다. 50만 부 이상 팔린 국내 도서 《자존감 수업》(심플라티프 펴냄)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올해도 그 추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2017년, 독자들은 작가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친근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유명 작가의 활약보다는 신인 작가가 SNS나 대중매체 채널의 힘을 업고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는 현상이 눈에 띄었다. 그 작가들이 펴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들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독자들, 권위보다 친근한 SNS 매력에 끌린다

 

교보문고, 인터파크도서, 예스24 등 서점이 2017년도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1위는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말글터 펴냄)였다.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것이다.

 

《언어의 온도》는 2016년 8월 출간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을 통해 책이 공유되면서 수많은 독자들을 만나며 판매량 곡선이 서서히 올라갔다. 기존 출판 홍보 루트와는 전혀 다른 플랫폼을 타고 이른바 ‘역주행’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가지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 펴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6년 10월 출간 당시에는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료 국회의원 300명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이슈가 되어 올해 3월에는 판매량이 10배(2016년 11월 대비)로 뛰었고, 지난해 5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판매량은 23배(2016년 11월 대비)로 증가하며 이후 지속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이런 책들의 인기에 대해 “젊은 시대는 고성장, 즉 축적의 경험이 전혀 없다. 그런 이들이 달콤한 미래를 꿈꾸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촛불혁명’이라는 무혈혁명을 경험한 젊은 세대는 이제 달라졌다. 그들은 나태와 무기력에서 벗어나 인간적 자존감을 추구하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7년에 그들은 ‘자아존중’의 원초적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젊은 세대의 재산이 생겨난 것인가. 기성세대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터널에서 벗어날 사회적 자산이 생겨난 건가. 하여튼 축하하고, 기대가 많이 된다”고 평가했다.

 

 

서울도서관, “올해는 ‘휘게’가 휩쓴다”

 

서울시청 구청사에 만들어진 서울도서관은 오는 2월4일까지 6개 자료실과 1층 기획전시실에서 ‘미리 보는 2018: 책으로 읽는 트렌드’ 등 2018년 전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에서 서울도서관은 2018년 트렌드로 ‘휘게(hygge)’를 꼽았다.

‘휘게’는 편한 사람들과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뜻하는 덴마크 단어다. 1인 가구 및 싱글들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설명한 ‘케렌시아’와 일맥상통한다.

 

《휘게라이프》(위즈덤하우스 펴냄)의 저자 마이크 바킹은 “휘게는 간소한 것, 그리고 느린 것과 관련이 있다. 휘게는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한 분위기와 더 가깝다. 값비싼 샴페인이나 향기로운 굴 요리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것들이 꼭 휘게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잠옷을 입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 좋아하는 차를 마시면서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 여름휴가 기간에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는 것 모두 휘게다”라고 설명한다.

 

한편, 최근 출판계의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는 ‘작음’이다. 책 자체도 작고 얇아졌지만 다루는 내용도 소수 독자의 마니아적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다. 이들의 콘텐츠를 주목하고 책으로 묶어 시장에 내놓는 이들은 소규모 혹은 1인 출판사들이다. 연간 1~5종의 책을 발행하는 소규모 출판사는 3730개에서 4938개로 증가, 전체 출판사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4%에서 9.2%로 늘었다.

 

《언어의 온도》를 만든 1인 출판사처럼 이 작은 출판사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며 생존을 모색할 것이다. 한탕을 노리기보다 독자의 마음에 온도계를 놓고 독자들과 SNS를 주고받으며 독자를 위한, 독자에 의한, 독자의 책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책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이제 스토리두잉(Story Doing)이 더욱 중요해졌다. 자사의 브랜드 스토리에 사용자의 참가를 유도하고 체험하게 하는가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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