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북한의 평창 참가보다 더 중요한 것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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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요즘의 서명, 사인에 해당하는 말이 있었다.

 

‘수결(手決)’이 그것이다. 국어사전에 이렇게 돼 있다. “예전에, 자기의 성명이나 직함 아래에 도장 대신에 자필로 글자를 직접 쓰던 일. 또는 그 글자.”

 

조선시대에 도장 문화가 발달했던 것은 맞지만 우리 조상들이 도장만 썼던 것은 아니다. 수결도 꽤 성행했다. 한국법제사를 공부하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조선시대는 부모 자식 간에도 돈을 빌려주면 차용증을 쓰고 도장을 찍거나 수결을 뒀다.” 설마 싶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조선시대 하면 온정주의가 강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부모 자식 간에 작성된 차용증들을 보면 사실은 엄정한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유가 있다. 요즘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둘러싸고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다.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이 1월1일 오전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남북 협의는 일사천리로 전개됐다. 1월1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개최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여를 위한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운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의 남북단일팀 구성 등을 포함한 11개 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1월20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 올림픽박물관 기자회견장에서 남북한 평창 동계올림픽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왼쪽부터), 김일국 북한 체육상,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장이 바흐 위원장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무리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지만 작금의 남북관계를 보면 지난해까지 핵전쟁 일보 직전을 연상케 하던 그 국면이 있기는 했던가 싶을 정도다. 계절은 여전히 엄동설한인데 남북관계는 갑자기 봄바람이다. 현재로서는 진도가 어디까지 나갈지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한 템포 쉬면서 국면전환을 복기해 보자. 남북 사이에 갑자기 훈풍이 부는 것은 김정은의 통보성 제의 때문이다. 이유가 미국의 대북제재 때문이든 아니든 간에 김정은이 ‘결심’을 했기 때문에 유화국면이 조성된 것이다. 이 말은 김정은이 생각을 바꾸면 유화국면은 다시 대치국면으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남북관계에 관한 한 북한이 항상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항상 제멋대로 행동해 왔다. 지금도 평창동계올림픽에 와준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참가비용? 당연히 남한이 대야지” 하는 식이다. 이래서는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없다. 평창동계올림픽은 북한이 오든 말든 잘 치르면 그 자체로 성공적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명분은 좋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아무리 민족이 소중해도 내 부모 형제만은 못하다. 조선시대 부모 자식 간에도 차용증을 쓰고 수결까지 뒀던 그 엄정한 정신을 남북관계에도 적용해야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은 북한이 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고 난 후에 써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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