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하기…우울한 사람 대하는 방법
  • 노진섭 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8 10:32
  • 호수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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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우울증은 5명 중 1명 앓는 ‘국민병’

 

국내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배경에는 우울증이 있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우울증을 치료해야 하루 40명씩 목숨을 끊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모든 의사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70%는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병·의원을 찾기 때문이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 시사저널 최준필

 

‘내가 우울증인 것 같다’는 생각 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울증은 두 가지로 표현된다. 생각은 온통 부정적이고, 즐거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는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고 치료가 필요하다. 일단 우울증 자가 진단표(PHQ-2, 별도 표 참고)를 보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면 좋겠다. 두 질문의 점수가 3점 이상이면 우울증이므로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병원에서는 우울증 선별 질문지(PHQ-9, 별도 표 참고)로 우울증의 정도를 측정하고 상담을 통해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는다. 병원에 가기가 힘들다면 터놓고 대화할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우울한 사람과 잘잘못을 따지는 논쟁을 벌이는 행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4가지를 해 주면 된다. 힘든 점을 가만히 들어주고, 그것에 공감을 표현하고, 너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줘야 한다. 덧붙여, 자살 가능성이 커 보이면 전문가와 상담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우울증 환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우울증은 항우울제(SSRI)를 사용하면 대부분 완치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비(非)정신과 의사는 이 항우울제 처방을 60일까지만 하도록 돼 있다. 실제 항우울제는 그 이상 기간 사용해야 효과가 있는데 말이다. 사실상 비정신과 의사는 우울증 환자를 장기적으로 치료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항우울제 처방 60일 제한 규정’을 풀어야 더 많은 우울증 환자를 진료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공통점은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모두 내 탓’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가 말만 붙여줘도 자살 생각은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대화 자체가 자살 예방법 중 하나다. 이 일을 할 사람들이 사회복지사다. 100병상 이상 병원에서는 사회복지사를 1명씩 둬야 한다. 그러나 형식적이어서 큰 역할을 못한다. 이들이 환자와 대화하고, 필요할 경우 자살예방센터와 연계하는 일을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우리 뇌에는 부정적 또는 긍정적 생각이 혼재하는데, 우울증에 빠지면 긍정적 생각은 거의 없어지고 부정적 생각이 지배한다. 따라서 긍정적 생각이 많아지도록 치료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인지행동치료다. 이 치료 후 우울증 재발률도 20% 미만으로 떨어진다. 현재 정부가 이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검토 중인데, 보험 혜택 범위에 포함돼 많은 사람이 이 치료를 받으면 좋겠다.”

 

 

통계상 우울증 진료를 받은 사람이 약 60만 명이라면, 실제 우울증 환자는 더 많다는 얘긴가.

 

“2011년 연구결과를 보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환자는 1000만 명에 이른다. 가벼운 우울증까지 합하면 약 1500만 명이 우울증에 시달린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질환인 고혈압이나 당뇨병보다 더 많은 수치다. 이 정도면 우울증은 국가가 집중 치료해야 할 ‘국민병’이다.”

 

 

우울증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살인데, 우울증을 치료하면 자살률이 떨어질까.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이다. 외국은 우울증을 치료해 자살률을 낮췄다. 국내 자살률은 14년간 세계 1위다. 자살자의 약 80%는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을 치료하면 자살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또 1명이 자살하면 주변인 최소 6명은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할 가능성이 커진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울증 치료는 절실하다. 우울증을 치료하면 자살자의 절반 이상을 구할 수 있다.”

 

 

자살 예방은 중앙자살예방센터 등 기관이 담당하지 않는가.

 

“자살을 예방하는 기관이 있는데도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병원에서 우울증을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70%는 죽기 한 달 전에 다양한 신체 건강 문제로 병·의원을 찾는다. 우울증 환자는 정신이 피폐한 상태여서 온갖 신체적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의 자살 위험성은 일반인보다 최고 30배 높다. 이들을 만나는 의사가 우울증을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많은 우울증 환자를 어떻게 진료할 것인가.

 

“동네 병·의원에서 우울증을 점검하면 된다. 이제는 불면증을 정신질환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고혈압도 내과에서만 보는 질환이 아니다. 우울증도 정신질환으로 묶어둬 정신과에서만 진료해서는 안 된다. 정신과 의사 수는 전체 의사의 3%인데, 이들이 이 많은 우울증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 동네 병·의원을 찾는 만성질환자의 10~40%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들을 6개월에 한 번씩이라도 점검하면 자살을 크게 예방할 수 있다. 환자에게 최근 2주일 동안 기분이 어땠는지만 물어보면 된다. 2010년 미국, 영국, 중국, 일본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 동네 병·의원에서 우울증을 걸러내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모든 환자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외국은 이렇게 우울증을 관리하고 있다.”

 

 

모든 의사가 우울증을 진단하고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가.

 

“모든 의사를 대상으로 우울증을 점검하고 자살을 예방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의대를 졸업하고 34년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자살을 어떻게 예방해야 할지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다. 자살하려고 계획한 환자를 발견해도 대처할 준비가 안 돼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자살을 방치하는 셈이다. 일본의 모든 의사는 1년에 3~4회 환자의 자살을 막기 위한 예방 교육을 받는다.”

 

 

정신과는 어떤 우울증을 진료해야 할까.

 

“심한 우울증 환자는 정신과에서 진료하도록 유도하는 게 맞다. 심한 우울증이란 다음 4가지 중 한 가지에 해당할 때다. 항우울제 2가지 약에 반응이 없거나, (환각, 환청, 망상 등) 정신질환 증상이 있거나, 자살 위험이 심각히 크거나, 조울증이 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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