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트럼프의 ‘America First’는 아니다
  • 신동기 인문경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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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의 잉여Talk] 지금의 미국은 인권과 환경 문제에 눈 감고, 지구촌 전체의 복지 증진에 관심 줄여

 

트럼프 정부 1년, 세계의 불확실성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America First’가 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미 정부의 대규모 이민자 추방이 발표되었다. 바로 트럼프 정부 들어 시작된 반(反)이민 정책에 의해서다. 그런데 그 대상이 무려 26만명이다. 2001년 대지진 이후 자국을 떠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엘살바도르인 26만명에 대해 16년간 계속 유지했던 ‘임시보호지위(TPS; Temporary Protected Status)’를 갱신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엘살바도르인 26만명은 이제 18개월 안에 미국을 떠나야 한다. 이민에 관용적이었고, 또 이민자들 자체로 시작된 그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지금까지의 이민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트럼프의 ‘America First’에 의한 미국의 과거로부터의 방향 전환은 전방위적이다. 지난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했다. 우리나라에는 FTA 개정을 요구하고, 그 외에도 다각적으로 통상 압박을 해 오고 있다.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는 향유하면서 자유무역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겠다는 자기 편의적 보호무역주의다. 

 

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파리기후변화협정(Paris Climate Change Accord) 탈퇴를 선언해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지구환경에 대한 인류의 공동책임 외면은 물론 수익자부담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국제 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지구 환경 악화에 대한 공동대응 전선의 동력이 상실되고 있다. 

 

유네스코도 탈퇴했다. 국제협력과 세계평화 유지에 대한 관심을 줄이겠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이란과의 핵 합의 재검토와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 수도 인정 선언으로 중동지역에 다시 음산한 먹구름을 불러 모으고 있다. 

 

© 사진=AP연합

 

미 독립, 지구상 최초의 ‘대의제 민주주의’ 혁명

 

필자는 학생 때 ‘사회계약론’을 처음 접했는데, 당시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원시 자연 상태에서 살던 사람들이 실질적인 자신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상호간에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생명이나 재산 보호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자연 상태에서의 무한대의 권리를 내놓고, 계약을 통해 유한하긴 하지만 자신의 재산과 생명 보호, 그리고 실질적인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민권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된 ‘국가’라는 것은 당연히 그 구성원들의 재산·생명 그리고 자유를 보장해야 하고, 국가 권력의 원천은 당연히 그 구성원들이라는 것이다.

  

처음 접했을 때 사회계약론에 의한 국가탄생설은 그냥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국가의 기원을 그렇게 한번 가정해 보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무지였다. 지구상에 실제로 사회계약론에 기초해 백지 상태에서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된 국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국가는 자신에 앞서 수천 년 또는 수백 년 전부터 존재했던 국가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국민 아닌 단 한 사람의 군주 1인만을 위했던 국가들을,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국가로 인도했다.  

 

흔히 사람들은 근대 정치체제인 대의제 민주주의의 출발이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착오다. 사실은 그 앞서의 독립혁명에 의해 건국된 미국이다. 사람들이 프랑스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바로 미국의 독립혁명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혁명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바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지구상 최초의 ‘대의제 민주주의’ 혁명 두 가지다. 즉 군주정인 모국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사회계약론에 입각해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미국이 처음으로(America First)’ 실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 독립전쟁 전 과정에 참전했던 프랑스혁명의 핵심 인물 라파예트(1757-1834)가 현장에서 미국의 근대국가 설립 과정을 배워 프랑스에서 재현했다. 프랑스 인권선언을 기초하고 혁명 주도세력인 국민의회 부회장과 파리국민군 사령관을 지냈던 그 라파예트다. 그러기에 미국 독립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토머스 페인(1737-1809)은 ‘미국 혁명은 역학에서 이론에 불과한 것을 정치에서 구현했다’고 말하면서, ‘미국은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일어섰다’고 말한다. 

 

사실 미국은 영국에서의 독립은 고사하고, 하나로 통합하는데도 가장 불리한 조건이었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민족, 다양한 종교 출신의 이민자들이 모여든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하나가 되어 모국인 영국을 물리치고 멋진 신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국가설계원리 덕분이었다. 사회계약론에 입각한 ‘사회와 인권의 원리’였다. 출신·인종·종교가 다르다 할지라도 인권이나 자유·평등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국가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또한 같은 이유다. 개인이나 국가 모두 인권을 존중하고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지키면 바로 그 원리가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세계가 미국을 대우하는 것은 꼭 군사력이나 경제력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온 대의제 민주주의를 맨 처음(First) 시도한 나라이고, 인권·자유·평등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가장 먼저(First) 실현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미국에 채무를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미국이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인권과 환경 문제에 눈 감고 지구촌 전체의 복지 증진에 관심을 줄이면서 전근대적 완력 드러내기에 취하는 것은 인류 전체 입장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예전 미국은 위대했었다. 미국의 ‘America First’는 맞다. 그러나 트럼프의 그 ‘America First’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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