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는 자와 막으려는 정부의 벼랑 끝 협상
  • 김회권·송응철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5 09:31
  • 호수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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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와 자금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가상화폐 영향력…놀란 정부의 거래소 폐쇄 전술 통할까

 

“자식 말을 그때 들었어야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고 무시했던 게 실수였다.”

 

1월8일 늦은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한 빌딩의 3층 교육장. 정년퇴직을 앞둔 김아무개씨는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아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21살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더리움’을 사라고 했다. 올해 안에 두 배는 뛰어오를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아버지는 “그런 게 있으면 세상 사람이 다 돈 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고 면박을 줬다. 그에게 이더리움이라는 단어도 생소했고 가상화폐는 이해불가 상품이었다. 그게 2017년 7월 부자간 나눈 대화였다.

 

면박을 줬던 당시 20만원대였던 이더리움은 김씨가 교육장에 나타났던 1월8일, 180만원대 가격을 유지했다. 반년 새 9배나 올랐다. 그 반년 동안 가상화폐는 뉴스의 주요 소재가 됐고 김씨처럼 늦게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었다. 처음에는 오르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아들의 말을 듣지 않은 걸 김씨 역시 자책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 연말 1~2주 사이에 리플이 10배 이상 뛰어오르는 걸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한 뒤 조바심이 커졌다. 정년퇴직을 앞둔 그는 재테크할 곳이 절실했고 가상화폐에 투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좁은 교육장은 가상화폐 인터넷카페 회원들 50여 명으로 가득 찼다. 이날은 카페지기가 직접 나서 차트 보는 법을 교육했다. 남녀노소 다양하게 앉은 사람들의 학구열은 뜨거웠다. “매수할 타이밍은 언제인가” “가장 참고해야 할 보조지표는 무엇인가” 등 질문이 쏟아졌다. 김씨 역시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카페지기의 얘기를 빼곡히 노트에 채워나갔다.

 

© 시사저널 포토·pixabay

 

기관을 동원하며 대응법에 변화 보인 정부

 

가상화폐의 전염성은 엄청났다.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하면서 여러 커뮤니티는 ‘인증’이 넘쳐났다. 소액으로 수억, 많게는 수십억을 번 사람들은 자신의 계좌를 공개했다. 상대적 박탈감도 줬겠지만 가상화폐 시장에 참여하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팍팍한 삶과 높은 사다리, 그리고 부각되는 수저론. 삭막한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가상화폐의 비정상적인 거래량, 높은 가격의 이면에는 흙수저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자산 증식의 기회가 대물림 외에 사라진 ‘흙수저 세대’에게 가상화폐는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최후의 기회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의식 구조가 20~30대, 그 위로도 확대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그날 교육장을 가득 메운 투자자들은 원금의 수배,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을 꿈꿨을 터다. 반면 그들의 희망을 가로막는 장벽은 가격을 조종하려는 ‘세력’도, 밤만 되면 비트코인을 던진다(매도물량을 내놓는 표현)는 미국 투자자들도 아니다. ‘규제’를 계속 언급하는 정부다. 정부는 과열된 시장을 냉각시키겠다고 했지만 그 규제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투자자들은 가늠하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13일 미성년자, 외국인, 금융사의 투자를 금지하는 대책을 내놓았고 투자 수익에 대해 과세도 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12월28일에는 처음으로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렇게 정부가 시그널을 주면 가상화폐 가격은 하락했다. 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승해 제자리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과거 여러 차례 급락장을 경험한 국내 투자자들은 ‘버티면 회복한다’는 걸 학습했고 정부의 규제 엄포에도 매번 버텼다. 그러다 보니 이런 간접적인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땜질식 처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분위기는 2018년 들어 바뀌었다. 정부가 기관을 동원해 행동에 나서면서부터다.

 

1월10일 국세청은 국내 최대 가상통화 거래소인 빗썸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에 조사관들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였다. 당장 ‘압박’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과세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평가도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탈세 등의 혐의를 잡고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가상화폐 과세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사전에 국세청의 과세 권한이 어디까지인지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세무조사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인 거래는 국세청에도 생소한 부분이다. 먼저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이번에 움직였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는 일종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가상화폐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업계 전반으로 세무조사를 확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 중시하는 정부의 코인 시장 딜레마

 

국세청이 빗썸을 방문한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강당에서는 80여 명의 검사와 수사관이 모여 교육을 받았다. 이날 강의 주제는 ‘비트코인 기술 개요와 활용 현황’이었다. 코인의 세계가 새로운 분야라 이해도가 높지 않기에 실시한 교육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위법성이 확연하게 드러난 코인원 마진거래 등에 대해서는 수사가 가능해도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는 아직 검경의 수사권이 미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투자’라고 생각하지만 정부는 같은 걸 ‘투기’라고 생각한다. 국세청과 검찰도 투기라고 판단하며 움직이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신중했다. 정부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아무런 법적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이슈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 가상화폐 문제에 대응해야 할지 쉽게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설프게 규제에 나섰다가는 피해자만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가상화폐가 장려책과 규제책이 공존하는 복잡한 물건이란 점도 신중론의 배경이었다. 다만 청와대의 시각은 장려보다 규제로 쏠린다.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현 정부 혁신성장의 한 축이 다름 아닌 코스닥 활성화다. 그런데 코스닥과 코인 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란 게 증명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를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가상화폐 투자가 증가하면 증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책을 내놓으면 코스닥이 오르지 않았냐”라고 말했다. 2017년 연말까지 700대에 머물던 코스닥 지수는 정부가 새해 들어 가상화폐 신규진입을 막는 조치를 시행하자 800대에 안착했다.

 

2017년 가상화폐를 사겠다는 사람들의 힘은 꽤 무섭다. 은행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대출이 주축인 은행권 ‘기타대출’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월별 기타대출 증가 추이를 보면 △2017년 7월 1조9000억원 △8월 3조4000억원 △9월 1조7000억원 △10월 3조5000억원 △11월 3조7000억원이다. 특히 지난해 8월 기타대출 증가액이 3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불과 두 달 만인 지난해 10월에는 3조5000억원으로 신기록을 썼다. 특히 11월 은행 가계대출잔액 증가액은 6조6000억원으로 10월의 6조8000억원보다 줄어들었는데 기타대출은 오히려 3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1월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언급이 나온 뒤 대략 5시간 사이에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약 113조원 줄었다. © 사진=연합뉴스

 

“코인 투자용 은행 대출 늘었다”

 

은행권은 기타대출 증가가 코인 투자와 관련 있다는 공식적인 언급을 꺼린다. 금융위는 “추석 연휴 결제자금 수요 증가 등 계절적 요인”이라고 했고, 은행권에서는 “저금리를 앞세운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을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코인에 투자하기 위한 대출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으로 저금리나 손쉬운 대출이 가능해지면서 마이너스 통장 사용이 일부 늘어날 수는 있지만 기타대출 증가액이 최고치를 경신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주택입주·추석 등 계절적 요인도 마찬가지다. 매년 이 시즌에 대출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봐야지, 기타대출 최고치 경신의 배경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사려는 사람의 행렬을 정부는 막으려고 나섰다. 두 진영의 대결은 1월11일 절정을 맞았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말한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추진’이라는 초강수 카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에 영향을 줄 정도로 과도하게 투기화된 가상화폐 시장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이다. ‘도박’이란 단어까지 끄집어내며 강경한 정부와 ‘규제 반대’ 국민청원을 내며 저항하는 투자자들의 충돌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과연 둘 사이의 대립은 어떻게 해소될까. 법무부의 거래소 폐쇄 방침에 투자자의 반발이 거세자 청와대는 “정부 공식 방침이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 때문에 정부의 스텝이 꼬였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내부에서는 의도된 엇박자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사전 협의에 따른 협동플레이 아니겠나. 법무부가 나서서 초강수를 둔 뒤 청와대가 막아서고 다른 부처들이 협의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점점 처음 청와대가 원했던 규제 수위에 접근하는 그림이 그려질 거다”고 말했다. 한쪽 끝에 ‘거래소 폐쇄’가 있다면 한쪽 끝에는 ‘자유 투자’가 있다. 결국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수렴할 거라는 얘기다. 원하는 값을 받기 위해 보다 센 가격을 부른 정부의 대응에 이제는 투자자가 원하는 값을 부를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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