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줄 타는 ‘카풀’ 드라이버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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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용 아니면 못 쓰는 카풀앱… 법망 피해 한 달 200만원 벌기도

 

“카파라치세요? 잘못 말하면 큰 일 나는데….”

 

카풀앱 ‘풀러스’ 이용자 정아무개씨가 조심스레 말했다. 풀러스 드라이버로 돈을 벌기 시작한지 석 달 째라는 정씨는 기자를 태우기 위해 용산까지 차를 끌고 왔다. 정씨는 ‘어디 가는 중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퇴근길”이라고 답했다. 그러다 이내 “카파라치는 아니시죠?”라며 말을 바꿨다. 사실은 쉬는 날인데 기름 값을 벌기 위해 짬을 냈다는 것.

 

정씨를 경찰에 신고하면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적용되는 혐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이다. 자가용으로 유료 운송을 하는 행위는 우리나라에서 불법이다. 

 

그러나 ‘출퇴근 때’에 한해 허용된다. 정씨는 근무일이 아니라 쉬는 날에 운전을 하고 돈을 받았다. 출퇴근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불법으로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이런 경우에 대해 카풀앱 측도 “명백한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Pixabay

 

‘출퇴근 시간’ 기준 모호해 법망 빠져나가는 드라이버

 

지난해 5월 카풀앱 업체 ‘럭시’가 경찰에 의해 압수수색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경찰은 여객운수법 위반 혐의가 짙은 드라이버 80여 명을 입건했다. 수사를 맡은 노원경찰서 지능수사팀 관계자는 “운전의 목적이 출퇴근이었는지 확인했다”며 “운전자가 하루 세 차례 이상 동승자를 태웠거나 운전자의 출퇴근 목적지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혐의가 인정된 드라이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럭시 드라이버의 불법성을 경찰이 인지한 건 카파라치의 신고 덕분이었다. 이처럼 신고포상금을 노리고 동승자로 위장해 발언을 유도하는 카파라치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풀러스 드라이버 정씨는 “가끔 라이더(동승자)가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그저 퇴근하는 길이라고 둘러 댄다”고 말했다. 카파라치를 피하기 위해서다. 

 

럭시와 풀러스를 함께 쓴다는 드라이버 한아무개씨는 “카파라치가 대화를 녹음하기 때문에 돈을 번다든지 부업으로 여긴다는 등의 말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풀러스 측은 “드라이버가 출퇴근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어플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경고 조치를 한다”고 밝혔다. 3회 이상 동승자를 태운 경우 ‘여객운수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경고 문자를 보내며, 한 달 주기로 해당 드라이버를 감시하고 이용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풀러스 홍보팀 관계자는 “세부 건수를 밝힐 수는 없으나 어플 이용을 제한한 사례가 일부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한씨는 “혹시 모를 수사에 대비하려면 한 어플만 수차례 이용하는 것보다 번갈아 사용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에, 럭시와 풀러스를 돌려가며 사용한다”는 말도 남겼다.

 

 

택시업계 뿔내는 이유… “24시간 영업이 문제”

 

카풀 드라이버가 한 달에 버는 돈은 대개 30만~40만원이다. 한씨는 “매달 기름값의 80퍼센트 정도 버는 편”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카풀 사업이 등장한 초기엔 한 달에 200만원까지, 지금은 100만원 정도 번다는 지인도 있다“고 전했다.

 

카풀앱을 바라보는 택시업계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전국택시연합회(택시조합) 이용복 팀장은 “풀러스는 불법 운송을 알선하는 브로커에 지나지 않는다”며 “택시와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카풀앱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정책토론회를 국회에서 열고자 했다. 그러나 택시기사 60여명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택시기사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시청 앞에 모여 카풀 영업 근절을 촉구했다. 택시조합 측은 카풀의 24시간 영업은 불법에 해당한다며 택시 업계의 생존권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택시기사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시청 앞에 모여 카풀 영업 근절을 촉구했다. 택시조합 측은 카풀의 24시간 영업은 불법에 해당한다며 택시 업계의 생존권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규제 풀라는 의견도

 

카풀앱의 이용시간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원래 풀러스는 앱을 이용할 수 있는 출퇴근 시간을 오후 5시에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또 오전 5시에서 11시까지로 제한했었다. 그런데 최근 출퇴근 시간을 이용자의 자율에 맡기면서, 사실상 24시간 운영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서울시는 카풀앱의 24시간 영업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지난해 11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올 1월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카풀앱 문제에 관한 토론회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택시조합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용복 팀장은 “풀러스가 24시간 영업제를 바꾸지 않으면 토론회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풀러스 홍보관계자는 “카풀앱이 운송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이라며 “택시조합의 비협조적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출퇴근 시간대를 명확히 하자는 법안이 지난해 12월 발의되기도 했다. 일명 ‘카풀앱 금지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의 골자는 출퇴근 시간을 ‘오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풀러스 드라이버 강아무개씨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카풀 사업을 국회에서 규제하는 것이 우습다”며 “정부는 혁신을 외치면서 발목만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카풀앱 이용자는 증가하고 있다. 풀러스에 따르면, 2016년 5월 첫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지난해 9월까지 누적 이용 고객은 370만 명에 달한다. 등록된 드라이버는 75만 명이다. 지난해 10월 풀러스는 네이버와 SK 등으로부터 22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에 대해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라고 풀러스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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