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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한 고레에다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가 던지는 질문

영화가 묻는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입니까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3(Sat) 13:30:00 | 1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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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 1월4일 재개봉한 《원더풀 라이프》가 던지는 질문이다.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세 번째 살인》(2017) 등을 연출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1998년 선보인 영화다. 감독의 두 번째 극영화 연출작으로, 그가 직접 오리지널 각본을 쓴 첫 번째 작품이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문법이 뒤섞인 이 영화는 기억과 상실이라는 테마를 꾸준히 이야기해 온 고레에다 감독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를 향한 창작자의 애정 어린 시선과 고민이 담긴 ,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극영화와 다큐의 중간 지점이기에 가능했던 것들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과 함께-죄와 벌》 속의 저승이 이승에서 지은 죄를 심판받는 곳이라면, 《원더풀 라이프》의 세계관은 다르다. 죽은 이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 일주일간 머무르는 중간 세계. 죽음을 맞이한 모두는 이곳에서 저승에 가지고 갈 하나의 기억을 골라야 한다. 선택한 기억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기억은 지워지는 게 이곳의 규칙. 질문을 받은 망자(亡者)들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고민에 빠져든다. 3일간 주어진 고민의 시간이 끝나면, 직원들은 이들이 고른 추억을 재연해 짧은 영화로 만든다. 망자들은 상영관에 함께 모여 영상을 보고, 저마다의 추억을 안은 채 저승으로 향한다.

 

원래 고레에다 감독은 한 TV 시나리오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원더풀 라이프》의 초안을 썼다. 이후 장려상을 받은 이 글을 다시 두 시간짜리 영화 각본으로 수정한 것이 지금의 버전이다. 잘 알려졌듯 감독은 다큐멘터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가 작업했던 다큐멘터리 중 《그가 없는 8월이》(1994)와 《기억을 잃어버린 때》(1996)는 《원더풀 라이프》의 직접적인 모태다. 전자는 에이즈 환자가 죽음을 앞두고 생애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복기하는 작품이며, 후자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와 그 가족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여기에 편집실 책상에 가득 쌓인 비디오테이프를 바라보며 ‘이것이 내 지나온 삶의 기록이라면’이라고 문득 떠올려보았다던 감독의 기억도 각본을 쓰는 데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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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은 유려한 영상과 완벽에 가까운 구도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에 콘티 그대로를 화면에 옮겨놓은 것뿐이라는 감독의 자기반성을 자아냈다. 이와는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바람은 《원더풀 라이프》를 만드는 과정에 반영됐다. 감독은 죽은 이들이 어떤 추억을 고를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집하기 위해 인터뷰에 나섰다.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수집한 영상은 총 600명분.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각본을 위한 조사 차원이었지만, 영상을 검토한 고레에다 감독은 비전문 배우를 인터뷰하는 과정을 그대로 찍는 편이 작품의 취지에 더 알맞겠다고 판단했다. 다큐멘터리 전문가에게 촬영을 맡기고, 콘티 없이 비전문 배우가 추억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그 장면을 찍는다는 방침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실제로 《원더풀 라이프》에서 죽은 자를 연기한 이들 중에는 비전문 배우가 섞여 있다.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털어놓은 기억은 ‘진짜’다. 영화 스스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 지점을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극 중에는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순간과 실제 기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당사자가 느끼는 혼란 역시 그대로 드러난다. 촬영장에서 발생한 느닷없는 해프닝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꼽은 할머니는, 그것을 재연해 보이는 소녀 앞에서 자신의 기억대로 동작을 수정해 준다. 이 즉흥적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카메라는 황급히 움직인다. 촬영 구도에 있어서라면 좋은 장면이라 할 수 없지만, 영화와 실제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에는 완벽하게 부합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움직인 촬영감독의 직관과 이를 편집에 그대로 반영한 감독의 판단이 만들어낸 극적인 장면인 것이다. 《원더풀 라이프》에는 이런 근사한 우연의 순간이 꽤 여럿 녹아 있다.

 

 

관객의 추억을 따뜻하게 불러내는 영화

 

망자들이 떠올리는 기억은 아주 개인적인 것들이다. 뜻밖에도 거창한 것보다 사소한 순간의 체험에 대한 것들이 많다. 학창 시절 전차 안에서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던 바람을 느끼던 순간을 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 비행훈련 때 본 구름의 모양을 이야기하는 파일럿도 있다. 별스럽지 않게 놀이공원에 놀러 갔던 기억을 꼽은 소녀에게 직원 시오리(오다 레이카)는 “이번 달에만 그 기억을 꼽은 이들이 30명은 된다”고 조언한다. 놀란 소녀는 찬찬히 삶을 더듬어 새로운 기억을 고른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무릎을 내어주며 자신의 귀를 청소해 주던 순간의 기억이다. 소녀는 어머니의 살결과 냄새를 기억해 낸다. 이 기억들은 관객 한 명 한 명의 개인적 체험과 추억을 불러내는 따뜻한 연결고리를 자처한다.

 

물론 모든 이의 기억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승에 아무 기억도 가지고 가고 싶지 않을 만큼 삶이 고통스러웠으므로, 어린 시절 캄캄한 벽장 속에 들어가 있던 순간을 고르는 남자도 있다. 지금껏 망자들의 인터뷰 샷으로 화면을 구성하던 영화는 이때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직원들에게 시선을 옮긴다. 이후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곳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재연해 주는 이들의 사연이 주가 된다. 직원 모치즈키(이우라 아라타)의 사연을 통해, 직원들이 어떻게 해서 이곳에 남게 된 자들인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망자의 기억을 재연해 촬영하는 장면들은 단연 영화 촬영 작업에 대한 은유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가 사람의 인생과 추억을 다루는 매체임을 말하고 있다. 더불어 그것을 대하는, 즉 타인의 삶과 추억을 다루고 재연하는 자신의 태도 역시 점검해 보고 있는 듯하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기에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재연으로 완성된 영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계속 묻는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기억은 당신에게 왜 중요한가. 마지막 장면, 카메라가 비추는 텅 빈 의자는 당연히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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