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서양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미스터리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0 09:52
  • 호수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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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10개월째 실종 선원 22명 생사 불투명…구명벌 발견되지 않는 한 살아 있을 가능성 남아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지 10개월째 접어들었지만 지금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실종 선원들의 생사는 불투명하다. 새 정부가 들어섰어도 절망스러운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수색작업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침몰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면서 실종 선원 가족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봤다.

 

지난해 3월31일 오후 11시20분쯤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을 지나던 스텔라데이지호에서 한국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에 긴급 메시지가 들어왔다. 카카오톡으로 “긴급 상황입니다. 왼쪽 2번 탱크에 물이 새고, 긴급하게 기울고 있습니다”라며 다급한 상황임을 알렸다. 이 배는 선박 침수 상황을 전달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약 5분 만에 배가 침몰한 것이다. 스텔라데이지호에는 선장·기관사·항해사 등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6명이 타고 있었다. 침몰 당시 브라질에서 철광석 약 26만 톤을 싣고 중국 칭다오(靑島)로 가던 중이었다.

 

2017년 3월3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 해역에서 연락이 두절된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 © 사진=연합뉴스

배가 침몰한 후 우루과이 해경과 미군 등이 수색작업을 벌였다. 사고 24시간 만인 4월1일 구명벌에 타고 있던 필리핀 선원 2명은 인근을 지나던 그리스 선박 엘피다호에 구조됐다. 나머지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한 22명의 선원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살아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에는 자동으로 펴지는 탈출용 고무보트인 ‘구명벌’ 2개가 있었다. 이 중 하나는 필리핀 선원들이 타고 있다가 발견됐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실종 선원들이 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 사고 발생 10일째 미 해군 초계기가 바다 위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에 구명벌로 보이는 물체가 찍힌 것이다.

 

4월10일 미 해군은 우루과이 해경을 통해 우리 정부에 공문을 보낸다. “1차 수색으로 오렌지색 구명벌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는데, 기름띠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현재 확인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외교부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 “오늘 밤 사진을 확보할 예정이다. 내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외교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미군의 공문 내용을 접수한 폴라리스쉬핑은 다음 날인 4월10일 해당 사진에 대해 “구명벌이 아닌 기름띠로 확인됐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자 대다수 언론은 선사의 말을 단정적으로 보도하면서 ‘구멍벌’은 기름띠 사진이 돼 버렸다. 이것이 실종자 수색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 탑재 구명벌과 실제 기름띠 사진을 공개하며 선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1월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스텔라데이지호 10만인 국민서명 전달 기자회견’이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선원 가족들 “살아 있을 가능성 있다”

 

가족들의 뜻과는 반대로 수색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해양수산부의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색작업에 앞서 실종 선원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류 분석이 필수적이다. 구출된 필리핀 선원 두 명이 탄 구명벌이 발견된 곳은 사고 지역과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다.

 

바다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해류의 흐름과 시간 등을 가정해 선원들의 위치를 찾아야만 수색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가족들이 사고 초기 정부에 해류 분석을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해수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우루과이 해역 해류 분석은 거리가 멀기 때문에 1년은 걸린다”며 해류 분석에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에서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1년이 걸린다’던 해류 분석은 단 3일 만에 끝났다. 당시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4월9일 해류 좌표와 미 해군 초계기가 구명벌로 추정한 물체를 발견한 지점이 거의 일치했다. 해수부가 실종 선원들을 찾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고 발생 한 달 후 선사는 수색 축소와 가족들이 머물고 있던 상황실 폐쇄를 통보했다. 대통령 선거날인 지난해 5월9일 외교부도 선사의 요청이라며 수색 종료를 통보했다. 선사가 계약한 구조선 2척이 철수했고, 외교부는 ‘집중 수색’을 중단하고 침몰 해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이 실종 선원과 물체를 찾아보는 ‘장기 수색’ 체제로 전환했다. 사실상 수색에서 손을 뗀 것이다. 가족들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선사와 외교부가 서둘러 수색을 끝내려 한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5월10일 청와대에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1호 서한문’을 전달했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와 수색 연장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명단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1호 민원’이다. 청와대는 관계 부처에 수색과 구조에 필요한 종합적 조치를 지시했다. 정부는 이 조치에 따라 6월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있던 싱가포르 국적 2400톤 선박을 사고 해역으로 출발시켰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실시한 표류예측시스템 시뮬레이션 결과, 선원의 표류 가능성이 있다고 설정된 수색구역은 배가 침몰한 남대서양 해역 내의 가로 300km, 세로 220km, 총 2만8600㎢ 정도의 해상이다. 대략 세 척의 배를 활용해 약 22일에 걸쳐 수색할 수 있는 구역이다.

 

해수부는 이를 토대로 침몰 지점 인근 해역 3만㎢에 대한 수색을 벌였다. 하지만 ‘2차 수색’에서도 구명뗏목 등 실종자 흔적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7월11일 해수부는 침몰 해역 인근에서 실종자 수색을 벌이던 정부 수색선박과 선사 수색선박의 수색 종료를 선언했다. 정부가 사고 해역에 투입한 2400톤급 수색선박의 계약 기간이 이날 종료되면서 내린 조치다.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이 투입한 수색선박도 이날 함께 철수했다. 사고 당시부터 5월10일(1차),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인 6월26일부터 7월11일(2차)까지 수색에 나섰지만, 구명조끼 2개 등 배에서 나온 물품 몇 개 외에는 건진 것이 없었다.

 

가족들은 줄곧 ‘부유물 식별’을 강조해 왔다. 배 안에는 구명조끼, 방수복, 구명튜브 등 물에 뜨는 물품이 100여 개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가라앉아도 구명조끼와 안전모 등 부유물이 발견돼야 하는데도 수색작업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구역 설정을 제대로 못했거나, 수색을 제대로 안 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나머지 구명벌이 발견되지 않는 한 선원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구명벌에는 비상식량과 낚시도구, 응급의료장비 등 생존장비가 탑재돼 있는 데다, 현지에 종종 비가 내려 식수가 보급되기 때문에 장기간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침몰한 철광석 운반선 스텔라데이지호 필리핀 선원이 구조 당시 착용한 방수복, 구명조끼 등의 장비 © 사진=연합뉴스

 

국회, 침몰 원인 밝혀줄 예산 전액 삭감

 

스텔라데이지호의 정확한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선박의 블랙박스를 확보해야 한다. 국회는 이를 위해 여야 의원들이 합의해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추가 수색, 사건 규명을 위한 ‘심해 수색장비 구입’ 예산으로 50억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여야가 극적 합의한 2018년 예산안에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됐다. 침몰 원인을 밝히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2018년 새해가 시작되자 가족들은 첫 서한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들은 “사고 원인과 실종자들의 생사 확인을 위해 정부가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10만1492명의 서명을 받은 ‘국민 서명’도 함께 전달했다. 현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과 관련해 여러 가지 원인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선박 노후다. 이 배는 1993년 건조된 길이 311.89m, 선폭 58m, 적재 중량 26만6141톤 규모로 축구장 약 3배 크기의 광석 운반선이다.

 

지난해 10월3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조된 필리핀 선원 2명의 증언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필리핀 선원들은 “(출항 전부터) 일등항해사는 우리 배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배 상태가 정말 나쁘다고 이야기했다. 배가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배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항해 중)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며 “배 중간에서 마치 분수처럼 물이 솟구치는 것을 봤다. 배가 쪼개졌다. 배 밑 부분이 이렇게(V자) 됐다”고 말했다.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는 “스텔라데이지호는 기상 상태가 좋은 대낮 1시(현지 시각)에 갑자기 배가 V자로 두 동강 나서 침몰했다. 누가 생각해도 왜 침몰했는지 의아한 사고다. 물론 사고 원인에 대한 추측은 가능하다. 개조한 노후 선박을 제대로 된 안전 관리 없이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하게 운항했기 때문에 선체가 견디지 못했으리라고 추측한다”고 밝혔다.

 

스텔라데이지호는 1993년 일본에서 건조한 유조선이다. 폐선 위기에 있던 것을 중국에서 싼값에 사들여 화물선으로 개조한 25년 된 노후 선박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배가 오래된 데다 개조까지 하면서 평소에도 고장이 잦았다”고 주장했다.

 

폴라리스쉬핑 소유 선박의 결함 신고는 전 세계 초대형 광석 운반선 중 독보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대책위는 “2017년 5월 ‘로이드해사일보’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초대형 광석 운반선의 최근 5년간 결함 신고 중 무려 43% 이상이 폴라리스쉬핑의 선박에서 발생한 결함이었다”며 “추가 사고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또 다른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을 통해 선체에 장착된 블랙박스를 수거하고 침몰한 선체의 현재 상황을 촬영해 분석하는 것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침몰 원인을 밝힐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군이 찍었다는 사진에 실제 뭐가 찍혔는지 외교부는 지금까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스텔라데이지호 수색과 사고 원인 규명을 ‘민원 1호’로 공약한 바 있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선원들은 지금 망망대해를 떠돌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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