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KBO 출신 타자들이 몰락한 이유
  • 손윤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9 16:56
  • 호수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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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떠나는 마음으로는 ‘강자존’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명의 코리안리거를 볼 수 있었다. 박병호와 황재균, 최지만 등은 메이저리그보다 마이너리그에서 뛴 시간이 길었지만, 류현진을 비롯해 추신수, 오승환, 김현수 등이 붙박이 메이저리거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강정호는 여전히 비자 문제로 메이저리그에서 보기 어려운 상황이고, 김현수와 박병호, 황재균은 KBO리그로 ‘리턴’을 선택했다. 결국, 메이저리그에 남은 선수는 류현진과 추신수, 오승환, 그리고 최지만뿐이다. 지난해 최대 8명에서 올해는 4명으로 확 줄어든 것이다.

 

 

빠른 공에 대한 대비와 대처 능력 떨어져

 

게다가, 메이저리그에 잔류한 선수들의 위상도 예전과는 다르다. 지난해 어깨 부상에서 돌아온 류현진은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선발투수진이 막강한 팀 상황과 맞물려 트레이드설(說)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추신수 역시 마찬가지다. 팀 체질 개선을 위해 베테랑인 그를 트레이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그의 트레이드와 관련해 팀(텍사스 레인저스)은 부정하고 있지만, 윈터 미팅 전후로 트레이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새로운 팀을 찾는 오승환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때와 같이 마무리나 셋업맨(8회 담당)은 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셋업맨의 앞을 책임지는 미들맨(6회나 7회 담당)으로 시작해, 좋은 활약을 펼쳤을 때 보직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들 3명은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보장됐다는 점에서 최지만보다는 상황이 좋다. 지난해 가능성을 나타낸 최지만은 포지션(1루) 특성상 주전 자리를 꿰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강정호는 팀(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도 전력 외로 분류하고 있어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2018년도 코리안리거는 험난한 상황이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KBO리그 출신 타자들의 몰락이다. 김현수와 박병호, 황재균 등이 메이저리그에 안착하지 못했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에 KBO리그 출신 타자는 단 한 명도 없다(KBO리그를 거쳐간 에릭 테임즈는 제외). KBO리그 출신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 연합뉴스·AP 연합·AFP 연합


 

우선 빠른 공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점을 들 수 있다. KBO리그에서 시속 150km의 속구는 ‘특식’과도 같다. 지난해 KBO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투수는 LG 트윈스의 소사다. 평균 시속 149.5km를 던졌다. 이어 SK 와이번스의 메릴 켈리(147.7km), kt wiz의 더스틴 니퍼트(146.6km) 등이 그 뒤를 따른다. 국내 선수 가운데는 KIA 타이거즈의 양현종(143.9km)이 가장 빠른 평균 구속을 자랑했다. 즉, KBO리그에서 시속 150km의 속구는 어쩌다가 한 번 접하는 공이다. 그러다 보니, 빠른 공에 대한 대비와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시속 150km의 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에다 메이저리그의 빠른 공은 변화무쌍하다. 커터와 투심 등은 짧게 휘거나 떨어져 정확하게 배트로 때려내기 어렵다. 즉, KBO리그의 ‘특식’이 메이저리그에서는 ‘일반식’이 되다 보니, 이에 대처하지 못한 게 KBO리그 출신 타자들의 부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수비력도 우물 안 개구리였다. KBO리그에서 황재균은 타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최고 3루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김현수는 어깨는 약하지만 정확한 송구 능력을 뽐내며 수준급 좌익수로 꼽혔다. 그러나 이들의 수비는 메이저리그에서 평균 이하로 평가받았다. 특히 김현수는 수비 능력이 떨어져 백업 멤버로도 쓰임새가 제한적이었다.

 

외야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시절부터 외야 수비 연습에 힘을 쏟지 않은 데 있다. 외야 뜬공 수비 등은 경기 중이나 연습 때 하지만, 송구 연습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공을 잡은 뒤 송구 동작으로 들어가는 데 시간이 걸리며 송구 정확성도 떨어진다. KBO리그에도 강한 어깨를 자랑하는 외야수가 다수 있지만, 정확한 송구 능력을 뽐내는 선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한 우물만 판 수비 능력

 

여러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진다. 황재균의 경우 애초 유격수 출신이라서 3루 외에도 유격수를 볼 수 있지만, 수비 능력 자체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또 2루나 외야도 맡아본 적이 없어 벤치 멤버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기 어려웠다. 김현수도 마찬가지다. 우익수로 몇 경기 출장했지만, 수비력은 리그 평균 수준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좌익수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졌다. 이는 KBO와 메이저리그의 로스터 차이에 그 원인이 있다.

 

KBO리그는 1군 로스터에 27명을 등록해 25명이 출장한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25인 로스터다. 여기에 KBO리그에서는 퓨처스리그와 같은 팜에서 마음껏 선수를 올려 쓴다. 1군 로스터만 27명일 뿐, 실질적으로는 퓨처스의 1.5군급을 포함해 40명 로스터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와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강등하는 데도 여러 제약이 있어 쉽지가 않다. 부상이나 트레이드, 큰 부진이 없는 한 시즌 시작 때의 25인 로스터가 시즌 끝까지 쭉 유지된다.

 

KBO리그가 폭넓게 선수단을 운영할 수 있는 만큼, 유틸리티 플레이어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어느 포지션에 선수가 필요하면 큰 제약 없이 쓸 수 있다. 그 결과, 지도자들도 여러 포지션을 볼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를 키우기보다 한 포지션을 맡아 적응력을 높여주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얄궂게도 한 우물만 파게 했지만, 수비 능력은 향상되지 않은 것이 현주소다. 그런 점에서 수비와 관련한 지금까지의 연습 방식 등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종열 SBS 해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요즘 야구는 빠르다. 공과, 배팅 스피드는 물론이고, 과거와 비교해 발 빠른 선수가 많다. 그런 만큼 내야 수비를 할 때 전진해서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아마 야구에서는 실수를 두려워해 전진하지 않고 공을 기다려서 처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실수라는 나쁜 결과를 보기보다 전진해서 처리하려고 했다는 좋은 과정을 평가하는 야구계 풍토가 중요하다.”

 

빠른 공 대처 능력과 수비. 이 두 가지는 KBO리그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 안착하지 못한, 눈에 보이는 원인이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요인일 때도 있다. 한 야구 관계자의 생각이 그렇다. 그는 준비 부족을 지적했다.

 

“KBO리그와 메이저리그는 많은 것이 다르다. 투수의 경우 구종(球種)이나 구속은 물론이고, 변화구 자체의 수준도 다르다. 또 경기 일정도 매주 월요일 쉬는 KBO리그가 단축 마라톤이라면, 우천과 휴식일이 적은 메이저리그는 마라톤이다. 그에 따른 체력 소모도 다르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를 준 선수는 아무도 없다. 그 점이 강정호를 제외하면 KBO리그 출신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 안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왼쪽부터 류현진, 추신수, 오승환 © 사진=AP연합

왼쪽부터 류현진, 추신수, 오승환 © 사진=AP연합

 

 

메이저리그 준비보다 성적에 열중

 

한때 배트를 거꾸로 잡아도 한 시즌 200안타를 칠 것 같았던 스즈키 이치로. 올해 나이 만 44세다. 과거와 같은 스타가 아닌 벤치 멤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녹록지 않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그와 관련해 항상 언급되는 것이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이다. 이 부분이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오랫동안 성공한 요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부터 메이저리그에 대비해 준비를 해 왔다. 오릭스 시절인 1999년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자기 기량과 능력을 가늠했다. 이에 맞춰 타격폼은 물론이고 플레이 스타일과 루틴 등을 철저하게 개선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빠른 발을 살린 내야 안타와 단타가 많아 이른바 ‘똑딱이 타자’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일본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1995년에는 개인최다인 25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등 7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그의 말처럼 “홈런을 노린다면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낼 힘이 있는 타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장점은 파워가 아닌 빠른 발과 공을 맞히는 능력이라고 봤다. 1999년 21홈런을 때려냈던 그는 일본에서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0년에는 홈런 12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 대신에 나쁜 공을 골라내는 등 출루율에 신경을 썼다. 이는 개인 최고 타율(0.387)과 출루율(0.460)로 나타났다.

 

마쓰이 히데키 역시 다르지 않다. 일본 시절의 마쓰이는 ‘고질라’라는 별명처럼 홈런포를 앞세운 거포였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는 타격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파워 면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콘택트에 더 비중을 둔 간결한 스윙과 타격폼으로 바꿨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에서는 2할 후반대의 타율과 2루타를 곧잘 때려내는 중거리 타자로 변신했다.

 

이치로와 마쓰이 등은 일본 시절의 성공, 즉 과거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변화를 줬으며, 이는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일본 최고의 타자라는 두 선수도 그런 변화가 필요했고, 변화하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없었다. 그와 달리 KBO리그 타자들은 어땠는가.

 

대부분이 메이저리그에 대한 준비보다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데 열중했다. 홈런을 펑펑 치며 메이저리그 구단에 보여줄 숫자에 신경을 썼다. 자신의 현재 타격폼과 타격 스타일 등이 메이저리그에서 통용될지 여부보다 눈앞의 성적에 집중한 것이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에도, 그 후에도 변화는 크게 없었다. 빠른 공에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등 약점이 드러난 뒤에야 변화를 주려고 했지만 뜻대로 안 됐다. 작은 성공에 만족해 드러난 문제점을 간과한 측면도 있었다. 결국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는 KBO리그에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 누군가의 말처럼 ‘수학여행’을 떠나는 듯한 마음으로는 ‘강자존’(强者存·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의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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