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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큰 리더를 잃은 일본인들의 독특한 대응방식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이타루氏가 죽은 덕분에…”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7(Sun) 17:00:00 | 1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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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하나로 단결해서 마을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은 산조 이타루(三條至)씨가 죽은 덕이라 생각해.” 

“자기도 그런 마음이었어? 몰랐는데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나도 이타루씨를 생각하면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유족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왔지.”

 

2017년 12월23일 토요일은 일본의 공휴일이었습니다. 자칫 이타루라는 사람이 죽어 좋아졌다고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1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인 송년회 자리였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두 흥겹게 한마음임을 확인하면서 이타루씨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마을은 2011년 쓰나미로 가옥 전체를 잃고 인명 피해도 많았던 곳으로, 제가 7년째 현지조사를 하고 있는 다섯 마을 중 한 마을입니다. 송년회 자리라지만 쓰나미 이후 집단이주를 하고 난 뒤에 이들이 아지트로 삼고 있던 산조공무점(三條工務店) 작업실의 ‘스스오로시(煤下し)’를 하는 날입니다. 스스오로시란, ‘스스’가 그을음을 뜻하고 ‘오로시’가 ‘내린다’는 뜻이기에 그을음을 내리는 일, 즉 대청소를 가리킵니다. 1년 동안 낀 그을음을 닦아내는 날이라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술자리를 하루 더 늘린다는 데 있습니다. 오후 1시에 모여 1시간 정도 청소를 한 뒤 밤 9시가 넘도록 술자리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쓰나미 피해 지역을 오래 조사하고 있는 저는 몇 마을을 깊이 조사해 비교연구를 시도하고 있는데, 나가쓰라(長面)라는 이 마을은 여러 면으로 흥미롭습니다. 오늘은 ‘리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들이 언급하는 이타루씨는 쓰나미 때 사망한 분으로 마을의 리더였던 사람입니다. 제가 이 마을 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중요한 장면마다 그의 이름을 듣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자동차정비공장과 판매점을 동시에 운영하던 그는 마을 유지면서 인품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마을 일이면 물심양면으로 응원했고 특히 후배양성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1980년대 현대화와 더불어 마을 축제가 사양길로 가고 있을 때 북과 피리 전승회를 만들어 계승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마을을 지극히 생각하던 그를 떠올리면 힘을 낼 수밖에 없다. 난 무엇인가 할 때 항상 그를 떠올린다.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쓰나미로 죽었지만 살아 있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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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 마음 통하는 사람들 모여서 하면 돼”

 

그런데 이번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서 제가 새롭게 듣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타루씨가 죽은 덕분에’라는 말입니다. 보통은 ‘그를 기리면서’ ‘그를 대신해서’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등의 말이 이어졌는데 ‘죽은 덕분에’라는 말을 듣고 그들의 상황이 재해 후 7년이 지나 약간 바뀌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리더의 죽음에 대한 심경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까운 사람의 죽음을 애석해하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를 떠올리면서 그리워하고, 또한 그를 대신할 새로운 리더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게 보편적으로 큰 리더를 상실했을 때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사한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여다보면 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대지진 직후 피난소 생활을 할 때 나가쓰라에서는 선뜻 리더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 행정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의견 수렴이 안 되는 마을로 낙인찍히기까지 했습니다. 뚜렷하게 리더로 나서지도 않고 추천하는 사람도 없던 탓에 개인적인 욕심으로 구장(區長)이 되겠다고 손을 든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됐다는 게 이 마을 사람들의 설명입니다.

 

 “난리가 난 거나 마찬가지인데 모두 자기를 중히 여기지. 그는 구장이 된 후 자기 일만 했어.” 역할상 그를 구장으로 임명한 사람이 조사자인 저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주더군요. 흥미로운 점은 구장이 된 그가 구장 역할을 하지 않고 자기 생업과 이득을 위해 움직인다고 느끼면서도 두 번이나 구장을 하게 내버려 둔 점입니다. 또 하나는 그가 마을 일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 있어도 마을 사람들은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행사를 뜻있는 사람끼리 모여 꾸준히 해 나갔다는 점입니다.

 

“대신 리더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앉아 있는 사람을 끌어내릴 필요는 없지요. 또한 리더가 하든 안 하든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마음 통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면 되지요. 마쓰리는 누가 시켜서 해 왔던 것도 아닌데, 방해하는 리더가 아니니 다행 아니겠어요?”

 

이 마을은 재해 첫해부터 1년에 세 번이나 굵직한 마을 축제를 해 오고 있습니다. 3년간 계속 공동위령제를 올리고 유가족이 힘을 모아 위령비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사에 그 구장은 앞장서지도 않았고 참석을 하지 않는 때도 많았습니다. 구장에 대한 속내는 공공연한 것이 되고 구장 자신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구장의 존재는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존재였고 마을 사람들도 그가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지 않는 점에 불만은 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자기들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이타루씨 잃었지만 그 덕에 서로 뭉칠 수 있어”

 

그런데 마을의 중요 행사를 준비할 때 어려움이 있거나 무사히 마치고 흥겨워지면 약속이나 한 듯 이타루씨 말이 나옵니다. 뜻깊은 행사 전에 그의 묘지 앞에서 북과 피리로 넋을 기리며 그에게 행사에 대해 보고한 후 시작할 때도 있습니다. 아직 그를 대신할 마을 리더가 없지만 모두 힘을 합해 그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생각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타루씨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우리가 그를 의지해 지금처럼 단결해서 마을을 가꾸려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또 이타루씨가 있었어도 파벌이 아직 있었기에 이렇게 서로 다른 그룹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궁리하는 것은 없었을 거야”라며 서로 얼싸안기도 하고 등을 쳐가면서 술자리가 깊어갑니다.

 

항상 모여 역할을 하는 10여 명은 재해 전에는 돈독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삼삼오오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놀던 친구를 재해로 잃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외로움과 미래를 그려내기 어려운 두려움에 이들이 함께 모이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반목했던 작은 그룹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하고 싶을 때 실제 살아 있는 리더보다 현실에는 없지만 공통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리더가 큰 역할을 한다는 예를 보는 듯합니다. 각자 그룹으로 나뉘어 자기 틀 안에서 안주하던 그들이 그 틀에서 벗어나 좋은 리더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재해 전보다 큰 집단으로 뭉친 것입니다.

 

“우린 이타루씨를 잃었지만 그 덕에 서로 뭉칠 수 있었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지금도 나가쓰라를 움직이는 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타루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시간 그를 존경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리더가 그처럼 되리라 기대하지도 않고 그처럼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그처럼은 못하지만 그가 있으면 했을 법한 일 중 하나는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0여 명은 앞으로도 마을을 위해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리더가 살아 있을 땐 편안하게 의지하고 각자 헐렁하지만 파벌을 세워 작은 테두리 안에서 안주하던 그들이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이 하던 역할을 집단으로 대체해서 해 보겠다고 일어선 것처럼 보입니다. 집단적인 일본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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