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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장이 완성되기까지

이현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30(Sat) 17:00:00 |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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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 2017년도 김장김치의 깊은 맛을 겨우내 즐기고 싶지만 집사람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2017년 초부터 팔목 터널증후군이 생기면서 설거지조차 버거워하는 아내에게 언제 김장을 할 것인지 묻기에 눈치가 보인다. 얼마 전 부부 동반 모임이 있었는데 김장을 포기한 지 몇 해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배추 값이 비싸다는 말도 김장무용론에 힘을 보탠다. 김장을 하는 것이 유별난 것이란 분위기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김장김치의 독특한 맛에 집착하는 나 자신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는 그 유혹을 겨울 내내 참을 수는 없다. 개성 출신 시어머니로부터 보쌈김치 담그는 법을 물려받아 고맙게도 그동안 한 해도 빼지 않고 김장을 담갔는데 2017년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팔목 통증과 갱년기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아내에게 섣불리 김장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김장을 건너뛰려는 눈치가 역력한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선 전략이 필요하다. 일단 성급하게 밀어붙여선 안 된다. 12월에 들어서도 김장 날을 묻지 않았다. 부부 사이에 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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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고 했다. 날짜가 지나면서 다급해지는 것은 나다. 김장배추가 끝물로 가고 있다. 첫 단계로 호소와 타협 전략을 택한다. 당신의 남편이 얼마나 보쌈김치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당신 덕분에 김장을 담가왔던 우리 집 전통이 자랑스럽다는 입에 발린 소리로 아내의 경계심을 허물어본다. 아내는 예상외로 강한 방어로 맞선다. 그동안의 공헌을 고려해 이젠 주부의 역할을 줄여주는 배려를 기대한단다. 허를 찔린 기분이다. 온정에 기대어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2단계 작전으로 실리적인 거래를 제안한다. 김장 비용을 내가 댈 것이며,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면 수월할 것이란 솔깃한 제안을 해 본다. 보쌈김치는 겉을 싸기 위해 커다란 푸른 잎이 필수적인데 절임배추는 예쁘게 다듬어 그런 푸른 겉잎사귀가 없는 게 문제다. 나름 큰 양보인 셈이다.

 

나의 집요한 요구에 아내는 한숨을 내쉬며 자기 팔목만 주무르고 있다. 이젠 마지막 카드를 던져야 한다. 김장에 동참하겠음을 제안한다. 김장 재료를 다듬고 무거운 것들을 옮기는 것은 물론 보쌈을 싸는 모든 과정에 보조로 돕겠노라 선언한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아내는 내가 가능한 날을 묻는다. 드디어 성공이다. 2017년도 맛난 보쌈김장김치를 만날 수 있다.

 

배달된 절임배추에서 물기를 빼기 위해 큰 대야에 걸쳐놓는 데 족히 한 시간이 걸린다. 쭈그려 앉아서 한 첫 작업에 벌써 허리가 뻐근하다. 무와 배추를 썰면서 왜 주부들이 좋은 칼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다. 오후 3시쯤 드디어 속 재료가 준비되고 보쌈을 싸기 시작한다. 예상과 달리 나름 즐겁다. 아내와 마주 앉아 지난 시절 이야기를 회상하는 즐거움은 카페에서 커피 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것보다 훨씬 정겹다. 우아한 시나 소설이 아니라 인기 TV 드라마 줄거리가 이야기 소재로 딱이다. 보쌈을 싸는 나의 솜씨가 영 늘지 않는다는 아내의 구박도 애정으로 느껴진다. 나의 열등함이 아내의 우월함과 비교돼 더 좋다.

 

아침 7시에 시작한 김장은 12시간 만에 끝이 났다. 김치통을 세어보니 8통이다. 자신 있게 눈대중으로 고춧가루 양을 조절하고 옹골차게 보쌈 잎을 덮어가는 아내의 손길에 전문가 포스가 느껴진다. 제법 무거운 배추 소쿠리를 드는 남편에게 조심하라면서도 든든해하는 눈길이 등 뒤로 느껴진다. 아마 2018년에도 김장을 하게 된다면 보쌈김치 맛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둘이 함께한 공감기억 때문일 것이다. 정치에서만 공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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