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조희팔 사건’ 공범에게 검찰, 왜 구형 안 했나
  • 주재한 시사저널e. 기자 (jjh@sisajournal-e.com)
  • 승인 2017.12.29 13:12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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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8일 결심공판에서 어이없는 일 벌어져

 

검사가 재판 마무리 절차인 결심 공판에서 구형을 준비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검사가 소송 활동을 게을리했다는 점에서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찰 측은 공판검사가 재판 일정이 남은 것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었다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2월18일 서울동부지검 소속 이세진 검사(사법연수원 31기)는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조성필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유아무개씨의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구형하지 않았다. 유씨는 1조원대 금융 피라미드 사기 범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이 확정된 김성훈 IDS홀딩스 대표의 공범으로, IDS홀딩스 산하 조직인 도무스그룹 그룹장이다.

 

서울동부지검 소속 검사가 IDS홀딩스 사기 사건의 공범 재판에서 구형조차 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피의자 유씨, 피라미드 ‘IDS홀딩스 사건’ 공범

 

이날 재판부는 앞선 공판기일에 예고했던 대로 이 검사에게 최후 논고와 구형 의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검사는 재판부의 요청에 “잊었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방청한 한 피해자는 “이 검사는 당황한 듯 웃으며 ‘판사님 오늘 결심인 줄 몰랐는데요. 준비를 안 해 왔는데요’라고 말했다”면서 “‘잊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검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약 15분간 휴정했으나, 이 검사는 이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면서 결국 구형 의견을 내지 못했다.

 

공판검사의 불성실한 태도에 방청 중이던 피해자 100여 명은 고성을 질렀고 한동안 소동이 벌어졌다. 일부 피해자는 이 검사를 향해 “법복을 입은 게 부끄럽지도 않으냐”며 모욕적인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을 지켜본 또 다른 피해자는 “이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하품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면서 “재판이 끝나자 피해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리를 꼬고 피고인의 변호사와 사담을 나누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IDS홀딩스 사건은 1만200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3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지병이 악화돼 숨진 엄중한 사건”이라면서 “이 검사는 피해자들을 무시하고 기만했다”라고 꼬집었다. 재판 이후 피해자들은 이 검사를 처벌해 달라며 그가 소속된 서울동부지검에 진정서까지 접수했다. 이 검사의 사례는 공판검사가 소송 활동을 게을리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구형은 법원 판단에 구속력이 없지만, 검사의 최종 의견을 밝힌다는 점에서 이번 행위가 사실상 검사의 권한을 포기했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이라고 혹평했다. 백 회장은 “재판부가 앞선 기일에 결심을 예고했다면, 검사는 사건을 종합 검토하고 당연히 구형했어야 한다”면서 “형법상 직무유기, 검찰징계법상 징계사유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 회장은 나아가 “검사의 구형이 없었다면 재판 절차가 마무리됐다고 볼 수 없고 재판부는 한 기일을 더 준비해 결심 공판을 진행했어야 한다”면서 “서면으로 구형하겠다는 검사의 의견을 받아준 재판부도 비판에 직면할 여지가 상당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서울동부지검 관계자는 “재판 당일 추가 증인 12명에 대한 증인신문, 추가로 제출한 증거의 인부(認否) 등 공판검사가 재판 일정이 더 남은 것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었다”면서 “검사로서는 한 기일이 더 남았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채택된 12명 중 출석한 증인은 3명에 불과했고 예상보다 재판이 일찍 끝났다. 새로 제출한 증거 역시 피고인 측에서 전부 동의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범인 김성훈 대표의 확정 판결 등으로 유씨의 구형량을 대폭 상향시킬 사정이 있었고, 이는 재판정에 나온 공판검사 혼자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라면서 “이 검사가 휴정을 신청한 이유는 이미 선고된 공범들의 판결과 관련해 수사검사, 공판부장검사와 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2017년 12월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이 끝난 뒤 IDS홀딩스 피해자들이 사건 배후를 철저히 밝혀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피해자들 진정서 제출…검찰 “착각했다”

 

하지만 공범들의 판결이 한 달 또는 일주일 전에 선고됐다는 점에서 검찰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정범인 김성훈 대표의 상고심 판결은 12월13일에, 공범인 지점장 15명에 대한 1심 판결은 11월20일에 있었다. 이 검사가 사전에 공판부장검사, 수사검사와 협의할 시간이 충분했던 것이다. 이 검사의 부적절한 발언과 관련해서도 동부지검 관계자는 “공판장에서 검사가 ‘구형을 잊었다’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은 맞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진정서가 접수됐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씨는 2011년 1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김성훈 대표를 도와 총 8841회에 걸쳐 피해자들에게 합계 2162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서면으로 유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유씨의 1심 선고일은 오는 1월19일로 예정돼 있다. 김성훈 대표의 금융사기 범죄는 ‘제2의 조희팔 사건’으로 불린다. 그는 FX마진거래 사업 등에 투자하면 매달 1~10%의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원금도 보장된다고 속여 피해자 1만2076명으로부터 1조96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15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김 대표는 투자받은 돈으로 수익을 창출해 이자를 상환한 것이 아니라, 기존 투자자나 새로 가입한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원금 및 이익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자금 돌려막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대표의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IDS홀딩스와 관련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변제되지 않은 피해 추정액이 6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 대한 파산신청 사건도 진행 중이다. 앞서 피해자 29명은 김 대표에게 파산을 선고해 달라고 서울회생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파산을 찬성하면서도 ‘면책’ 의사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검찰이 IDS홀딩스와 유착 의심을 받고 있는 경찰, 정치권까지 수사를 확대하면서 이번 사건이 단순 다단계 범죄가 아닌 정·관계까지 확대되는 ‘게이트’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개인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우현 자유한국당 의원, 구은수 경찰공제회 이사장(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IDS홀딩스와 유착 의혹을 받고 있으며, 경대수 자유한국당 의원도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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