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여성 정치인, 돌격대가 되지 말라!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9 11:08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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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인 정치판에서 열연하시는 분들 중에 특히 여성 정치인이 두드러지는 이유가 뭘까. 늘 그것이 궁금하고 안타깝다.

 

성 할당제를 선거에 도입한 첫 번째 이유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대등하게 가져가자는 것이었다. 한두 명의 대표를 보낸다고 소수자들의 권익이 보호될 리 없다. 그래서 성 할당제는 일단 남녀 두 성 중 어느 한 성도 40% 이하가 되지 않게 하자는 것이 목표다. 수가 그 정도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 ‘학생’이라고 말할 때 남학생만을 떠올리지 않는다. 성별을 특정해야 한다면 오히려 남학생, 여학생이라고 한다. ‘간호사’라고 할 때 여성을 떠올리거나, ‘군인’이라고 할 때 남성을 떠올리는 것과 비교해 보면 수가 늘어난다는 것이 지닌 효과를 알 수 있다. 특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가 늘어날수록 여성의 처우도 개선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어떤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성’에 기대는 경우가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온 세라 페일린.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할당제가 아직 미미한 현재, 그 얼마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가는 여성들이 모두 페미니즘을 숙지하거나 스스로 여성 대표성을 지녔음을 늘 명심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남성 중심사회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익혀 그 기술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여성들이기 쉽다. 그때 그 여성은 남성 위계사회의 윗단일까, 아랫단일까.

 

할당제의 혜택을 입어 외적으론 지도적 위치에 가더라도, 내적인 심리는 여전히 남성 지도부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일 때, 과잉행동과 두드러져 보이고자 하는 난폭함이 그의 행동방식이 되기란 쉽다. 악착같아야 남자들 틈에서 살아남는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여장부란 말이 가리키는 여성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팜므파탈 아니면 여장부.

 

다행히 여장부가 되기까지, 그가 아니 그녀가 충분히 여성 대표성을 인지하지 못할 때, 기동타격대 또는 돌격졸개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반드시 그녀의 인성 탓이기만 하랴. 물론,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 고정관념이 그대로 통용되는 한, 할당제를 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한 10년간은, 심지어 20년도 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 지도부에 잘 보이거나, 남성 중심적으로 짜인 지지자 세력에 잘 보이지 않고 여성 정체성을 그대로 지닌 채 성공하는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사태는 달라진다.

 

생물학적 성이 ‘여성 정치’에 결정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증거가 바로 저 여성들의 사례다. 여성주의적인 정치사상, 다른 말로 페미니즘 정치사상이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데 핵심적인 가치임을 이해하는 정치인이라면 그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트랜스성이든 무슨 상관이랴. 다만 이런 폭넓은 판단이 받아들여지기 위해 생물학적 여성 정치인의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양질전환의 법칙은 정치에도 유효하다. 여성 할당제가 일상이 될 때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할당도 좀 더 수월해진다.

 

그런 뜻에서, 적어도 비례대표 여성 의원을 공천할 때는 전문가 대표성 못지않게 여성 대표성을 고려해야 하고, 여성을 기동타격대로 쓰려는 유혹에서 각 당 지도부는 벗어나야 한다. 당사자 여성 정치인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과연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에 어떻게 작용할까를 계산하는 예민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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