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따라 구조했지만 비극 못 막았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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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동선과 작전 절차 비교해보니…참사 원인은 결국 ‘인력 부족’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 특히 비극적이었던 곳은 2층 여자 목욕탕이다. 여기서 목숨을 잃은 시민은 20명이다. 이번 사고의 총 사망자(29명) 가운데 가장 많다. 이에 대해 유가족 측은 “소방관이 먼저 여탕 바깥의 유리벽을 깨고 들어갔으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을 소방 매뉴얼은 반영하지 못했다. 

 

사고 당일인 12월21일, 구조대원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10분이었다. 당시 대원들은 건물 2~3층 외벽에 매달렸던 시민들을 먼저 구조했다. 유리벽을 깨고 여탕에 진입한 건 4시38분이다. 제천소방서 예방안전팀 관계자는 12월26일 “눈에 보이는 구조가 필요한 사람을 먼저 구하는 게 매뉴얼상 맞다”고 말했다. 

 

12월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불이 난 가운데 한 119 소방대원이 구조 작업을 위해 건물에 들어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매뉴얼 따르면 “눈에 보이는 구조자 먼저”

 

올 2월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재난현장 표준작전절차에 따르면, 소방력을 가장 먼저 투입해야 하는 곳은 ‘드러난 요(要)구조자가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거나 예상되는 지점’이다. 그 다음은 ‘보이지 않는 요구조자가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거나 예상되는 지점’이고, ‘요구조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은 세 번째다. 여탕의 시민들은 유리벽에 가려 건물 밖에선 보이지 않았다. 

 

일각에선 “구조대원이 ‘백드래프트(backdraft·실내에 산소가 갑자기 들어가면 순간 폭발이 일어나는 현상)’를 우려해 유리벽을 깨는 데 주저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매뉴얼을 어긴 셈이 된다. 재난 작전절차엔 ‘백드래프트가 예상되니 구조를 미뤄도 된다’는 취지의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매뉴얼에 나온 ‘백드래프트 대응법’…하지만 “인력 없었다”   

 

재난 작전절차는 백드래프트를 화재 진압 시 특히 주의해야 할 현상으로 꼽고 있다. 그러면서 ‘백드래프트 발생요인 차단’과 ‘화염과 연소 확대에 대피방안 강구’ 등을 화재 대응절차로 언급했다. 또 2006년 소방방재청이 발간한 특수화재 대응매뉴얼은 “백드래프트를 고려해 서서히 문을 열고 내부상태를 확인하며 천천히 진입하라”고 지시했다. 

 

소방당국은 백드래프트를 둘러싼 의혹을 일축했다.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은 12월25일 언론에 “당시 백드래프트는 전혀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며 “투입할 인력이 없어 건물 진입 등을 시도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사고 당시 제천소방서가 현장에 투입한 구조대원은 4명이 전부였다. 반면 화재로 인한 사상자는 60명이 넘는다. 

 

한편 이 본부장은 앞서 12월22일 “인근 LPG 탱크 폭발 방지를 위해 그쪽 먼저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했다. 재난 작전절차에 따르면, 구조대원은 위험물 탱크에서 발생할 수 있는 ‘풀 파이어(Pool fire)’에 대비해 대피방안을 준비하게 돼 있다. 

 

화재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 12월26일 오전 높이 2m의 철제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스프링클러 활용법’도 있지만 사고 당시 폐쇄돼

 

한편 스프링클러가 제때 물을 뿌리지 않아 화재가 커졌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스프링클러 활용 방안은 재난 작전절차에도 나온다. “무전기를 가진 구조대원을 스프링클러 밸브에 배치시켜 적극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용지물이 됐다. 사고 당일 건물 1층에 있는 스프링클러의 알람밸브가 잠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경찰에 의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건물 전체의 스프링클러 356개 가운데 일부가 침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와 관련, 건물주 이아무개(53)씨에 대해 소방시설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유족들 사이에선 매뉴얼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유족 윤창희(54)씨는 12월26일 언론에 “이제 와서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겠냐”며 “이번 일로 매뉴얼을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 대표 류건덕(59)씨는 “초기 ‘골든타임’을 놓친 이유가 소방 장비와 인력 부족 때문이었던 만큼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좋은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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