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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혁신의 연속입니다”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일본의 오래된 가게 ‘시니세’들이 살아남는 법 ​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2(Fri) 11:45:00 |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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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일본 도호쿠(東北)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이인자 교수는 재일교포·묘제(墓制) 연구의 권위자이며 동일본대지진의 재난인류학 연구에서 세계 일인자로 평가받는 석학(碩學)이다. 이 교수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후 피해지역을 답사하며 재난에서 살아남은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의 정서적 피해와 복구에 대해 연구해 왔다.

 

“500년 이어졌다는 역사로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전통이란 혁신의 연속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기자클럽 기획으로 이루어진 회견에서 양갱으로 유명한 화과자점 도라야(虎屋)의 17대 당주 구로카와 미쓰히로(川光博)씨는 그렇게 말합니다. ‘전통’이란 옛것을 잘 지키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전 효과를 불러일으켜 귀 기울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창업이 1520년경으로 5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창업주가 역사로는 내일의 기업 안녕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면 긴장감까지 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장인정신과 오래된 가게, 기업 등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은 화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일본의 오래된 가업(家業)의 변화와 우여곡절에 관해 전하려 합니다. 일본에서 오래된 전통 가게를 시니세(老鋪)라고 합니다. 한자 의미로도 오래된 점포란 것을 알겠지만 한자보다 음이 먼저 있던 말이라 합니다. 시니스(仕似)라는 말에서 시고토(仕事·일)가 나와 니세루(似せる·흉내 내다, 배우다)가 됐다고 합니다. 즉, 하는 일을 배워 바르게 계승해 전승하는 가게를 시니세라 부르게 됐다는 겁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전통을 이어온 오래된 가게라고 할 수 있지요.

 

500년 가깝게 기업을 이끌어 온 성공 원인에 관해 묻자 구로카와씨의 말은 이어집니다. “먼 미래보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그때그때에 해야 할 일을 해 왔을 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시대의 변화를 적절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춰 도전하는 것을 쉬지 않는 정신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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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最古)의 기업

 

가업으로 1428년의 역사를 갖고 최장수 기업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건축회사 곤고구미(金剛組)는 2006년에 일가족이 이어가던 경영권을 다른 건설회사에 넘겨주고 도산했다고 합니다. 절과 신사, 성 등을 짓거나 수리할 수 있는 특수기술을 자랑하는 미야다이쿠(宮大工) 일을 맡아 하는 게 본업이었고, 그 기술은 곤고구미공법이라는 이름이 있을 만큼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곤고구미가 도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980년대의 부동산 버블경제 시기에 과도하게 은행 융자를 받아 개발에 참여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는 기술 경쟁이 아닌 가격 경쟁으로 곤고구미에게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을 초래한 듯합니다. 1400년의 역사 안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37대 사장은 중일전쟁으로 공사가 중지되고 일감이 없어 도산하게 돼 회사를 정리하고 조상 묘 앞에서 할복자살합니다. 그 후 부인이 뒤를 이어 사천왕사 일을 얻게 돼 다시 명맥을 이어갑니다. 그로부터 3대를 이어오고 40대 사장을 마지막으로 곤고구미 곤고 집안의 명맥은 끊어지지만 대형 건설업체의 자회사로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약육강식 경제정책이 시니세 죽여”

 

시니세 조사에 협조해 주신 도쿄의 스키야키 시니세 징야(ちんや)의 스미요시 다다오(住吉忠男) 사장은 “곤고구미만이 아니라 버블경제 때 많은 시니세가 없어졌습니다. 금융, 부동산 등의 투자를 목적으로 엄청난 액수의 돈이 움직이고 본업 외의 일로 수입을 얻게 되자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 허망하고 하찮게 여겨져 가게를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버블이 꺼지면서 도산하는 기업이 많았는데 그 안에는 몇 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던 시니세들도 많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같은 시절 도라야의 행적은 흥미롭습니다. 일본의 버블시대는 보통 1986년부터 1991년까지라 합니다. 버블기를 맞이하기 전, 국제화 시대의 도래를 느낀 도라야의 16대 사장은 1980년 파리에 지점을 냅니다. “토끼장 같은 좁은 곳에서 살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파는 일본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에(즉 비문화적이라는 이미지) 일본의 문화를 전달하겠다는 포부로 파리점을 냈습니다.”

 

일본 국내가 버블기로 흔들리던 시절 도라야는 도쿄 천도 시절처럼 신천지인 파리에 점포를 내 문화가 다른 소비자를 통해 화과자의 새로운 맛과 모양을 개발하고 현지인을 고용해 직원의 복지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글로벌화 시대에 도라야의 변화는 이어집니다. 팥을 이용한 팥소 화과자를 멀리하는 젊은 층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만한 화과자 카페를 롯폰기 중심지에 세워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일본 젊은 층에게까지 인상적인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절기에 따라 고급 화과자를 답례품으로 보내는 풍습이 줄어든 현대에는 500년 역사가 있는 도라야라 해도 모르는 젊은 사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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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로 유명한 시니세 니시무라(西村)는 이불은 별로 보이지 않고 여러 종류의 침대와 잠을 편하게 잘 수 있게 도와주는 각종 제품으로 넓은 점내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도라야도 마찬가지였지만, 화과자 시니세는 화과자와 양과의 경계선이 없는 과자를 개발해 내놓고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 시절 국경 없이 밀어닥친 현대의 약육강식 경쟁을 헤쳐 나가는 풍조가 아닌지 싶습니다. 징야의 스미요시 사장이 “2000년대에 들어선 고이즈미·다케나카의 약육강식을 강조한 경제정책이 종래 있던 일본의 시니세를 많이 죽였어”라고 하자 같이 있던 시니세 협회 사무국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섬나라인 일본의 시니세는 약육강식적인 경쟁보다 스스로 갖고 있는 고유의 특징을 높여가는 방식으로 발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종의 다른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기술을 얼마나 연마할 수 있는지, 소비자(발주자)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지에 더 중점을 두는 습관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 충실한 곳은 큰 시대적 파도(도쿄 천도, 메이지유신, 태평양전쟁 패전 후 버블경제 붕괴, 글로벌 시대 도래)에도 살아남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또한 1000년 혹은 몇 백 년이라는 시니세의 역사는 현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경위와 내용으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끊어졌다 해도 다시 살리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변신해 명맥을 잇는 시니세의 모습에서 독자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고정된 전통과 장인정신으로 대를 이어왔을 것으로 알고 있던 시니세가 시대, 시대의 사람과 상품(유형과 무형)의 조합으로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저만인지요. 시대의 파도를 잘 타고 있는 듯이 보이는 도라야의 100년 후를 누가 점칠 수 있겠습니까. 도산으로 명맥을 잃었다는 보도자료가 검색되는 곤고구미는 어떤 스토리텔링으로 미래에 부활할지 그 점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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