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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영방송 카메라엔 ‘필터’가 없다

‘채널 2’ 프로그램의 성역 없는 탐사보도 노동 착취 등 자본주의 권력 치부 파헤쳐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5(Fri) 08:00:02 | 1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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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h Investigation(현금수사)’. 미국 할리우드 영화 제목이 아니다. 방송 5년 차를 맞고 있는 프랑스 공영방송의 간판 탐사보도 프로그램 제목이다. 이 프로그램은 늘 “환상적인 비즈니스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마케팅 뒤에 가려진 공금횡령, 조세피난처, 노동 착취 등 자본주의 경제 권력의 치부를 낱낱이 파헤친다.

 

프랑스 공영방송 채널 2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은 같은 공영방송에서 뉴스 앵커로 활약했던 엘리즈 뤼세 기자가 진행한다. 프로그램 출범 당시 뤼세는 한 인터뷰에서 “경제 권력은 너무나 잘 무장돼 있다. 이미지 마케팅에 상당한 공을 들이며, 문제가 있는 지점에선 미리 반격의 카드까지 준비해 놓는다. 다국적기업 대표들의 경우 최소 4명 이상의 언론 담당관들에 둘러싸여 있다. 최고경영자에게 접근하려면 이들을 뚫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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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가장 건방진 방송”

 

막강한 권력의 치부를 겨눈 만큼 인터뷰 거절이나 갖가지 협박은 다반사다. 그러나 방송은 인터뷰 대상의 회피나 거부반응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내 사건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취재내용을 방송 전까지 철저히 함구하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통상 홍보용으로 제작하는 DVD조차 사전에 배포하지 않는다. 법적 소송의 빌미를 미리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때문에 논평을 내야 하는 방송 평론가들이 애를 먹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들이 질문을 던지는 곳은 비단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윤 추구 이면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방송에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제 교역을 논의한 유럽연합 본부를 찾았다. 우즈베키스탄의 목화 산업 현장의 강제노동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분쟁 광물(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채굴되는 광물로, 노동 착취가 가장 극심한 사례로 꼽힌다)’인 콩고의 텅스텐과 IT 산업의 유착관계에 대해 이들은 빌 게이츠를 찾아가 “콩고의 광산에서 한 달에 5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돌직구를 던지기도 했다. 살충제의 폐해를 취재하기 위해 직접 독일의 화학 기업 ‘바이엘’의 주주가 돼 주주총회 자리에서 따져 묻기도 했다. 이 장면들은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프랑스의 TV 전문잡지 ‘텔레 7주르’는 “프랑스 방송 중 가장 건방진 방송”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도발적인 방송의 중심으로 간판 진행자 엘리즈 뤼세의 호전적인 취재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방송 초기 “얌전한 저널리즘의 시대는 갔다. 우리는 논쟁적이고 도발적이며 저돌적인 저널리즘을 지향한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녀는 방송의 독립성을 생명으로 여겼다. 그 때문에 정치인 혹은 기업인과의 식사 제안이 물밀듯이 쏟아지지만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최근 찬사를 받은 우즈베키스탄의 노동 착취 현장 보도의 경우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쳤다. 그 결과, 완벽히 기계화돼 있다고 알려져온 우즈베키스탄의 목화 산업이 사실 국가 단위의 착취 속에서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실상을 밝혀냈다. 유럽 대부분의 의류 브랜드들이 우즈베키스탄산 목화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그동안 공언해 왔으나 이들이 파헤친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기도 했다.

 

방송은 우즈베키스탄 노동 현장의 실태와 수확된 목화의 유통경로를 파악하고 물증을 잡아내기 위해 직접 의류회사를 만들었다. 명함과 전단을 만들고 사이트까지 띄운 후 목화 구매자인 척 접근했고, 마침내 공장을 취재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대형 유통업체의 노동 착취 현장을 취재할 땐 기자를 아예 그곳에 취직시키기도 했다. 한 달간의 견습기간 동안 물류창고 노동자가 하루 평균 8톤 분량의 상품을 옮긴다는 사실을 밝혀내 프랑스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방송은 8톤이 소형자동차 6대, 인도코끼리 2마리 무게와 같다고 덧붙였다. 잠입취재를 한 해당 기자는 3주 만에 체중이 5㎏이나 줄었다. 이 방송분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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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견제에도 버티는 공영방송

 

프랑스 공영방송의 탐사보도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지금과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는 데까지 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앙보에 스페셜(Envoyé spécial·특파원이라는 뜻)’과 같은 프로그램이 초석을 깔았다. 1990년 방송을 시작한 ‘앙보에 스페셜’은 평균 시청자 수가 400만 명이며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저녁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 오락 프로그램들에 맞서 세운 기록이다.

 

이토록 공영방송 보도에 프랑스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울 수 있었던 건 늘 선명한 주제와 성역 없는 취재 때문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권력의 견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대표적 사례가 2008년 대권을 잡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때였다. 취임 직후 프랑스 공영방송 개혁의지를 천명한 그는 영국 BBC를 모델로, 광고 없는 ‘양질의 문화방송’을 추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프랑스 정가에선 방송국의 돈줄인 광고를 금지시켜 결국 방송을 ‘이빨 빠진 호랑이’로 만들려는 의도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집권 초 사르코지는 방송개혁자문위원장으로 자신의 정치적 앙숙인 장 프랑수아 코페를 파격 임명하며 개혁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사르코지는 자문위원회가 한 달여 공들여 제출한 개혁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프랑스 공영방송을 관할하는 ‘최고 시청각 자문위원회(CSA)’ 수장은 기존 자문위 자체 선출 방식이 아닌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언론은 즉각 반발했지만 대통령의 결정을 되돌리진 못했다. 시청각 자문위원회 수장 임명권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은 건 정권이 바뀐 2013년, 후임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때였다.

 

사르코지의 우려가 맞았던 걸까. 2016년 다시 대선에 도전한 사르코지의 발목을 잡은 주인공은, 그가 그토록 힘을 빼려 애쓴 공영방송의 탐사보도였다. 과거 그가 대선 선거운동을 할 당시 자금을 부당하게 초과 지출한 의혹을 보도한 것이다. 그 때문에 사르코지 당시 후보는 당내 경선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재선의 꿈을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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