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숨’ 돌린 포항, ‘한숨’ 여전한 이재민
  • 포항=윤민화 시사저널e. 기자 (minflo1@sisajournal-e.com)
  • 승인 2017.12.08 18:23
  • 호수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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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강진 그 후 한 달…떠돌이 생활 이재민들의 호소

 

한반도에서 유례없는 규모 5.4 강진이 발생한 지 한 달여가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지진 피해의 직격탄을 맞은 경북 포항은 다시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포항역은 평소처럼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한때 지진 공포에 휩싸였던 사람들도 차츰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간 듯 보였다. 하지만 포항 시내를 벗어나 지진 최대 피해지인 북구 흥해읍에 가까워질수록 지진의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적은 드물었고, 지진으로 금이 가고 내려앉은 건물들은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날 선 겨울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더했다.

 

기자는 지진 발생(11월15일) 후 일주일쯤 뒤인 23일 흥해읍 일대를 처음 취재했다. 이어 지난 12월5일 강진 피해를 입은 흥해읍 일대를 다시 찾았다. 포항 지진 발생 이후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임시대피소는 아직도 정부 당국의 이주 대책을 학수고대하는 이재민들로 붐볐다. 현재까지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가장 많이 생활하고 있는 흥해실내체육관. 이곳에 자원봉사를 나온 단체 수와 지원 물품의 종류는 더 늘었다. 세탁실과 만남의 광장 등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는 것은 지난 11월23일 방문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12월5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영일어린이집 앞에는 지난 포항 지진 피해로 떨어진 외부 벽에 의해 파손된 어린이집 차량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 시사저널 윤민화

 

지진으로 폐쇄된 어린이집 지원금은 ‘0원’

 

시간이 제법 흐른 뒤여서인지 피해 지역민들의 목소리는 지진 발생 직후보다는 다소 차분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재민들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는 점은 앞선 취재 때완 또 달랐다. 만남의 광장에서 만난 이재민 조연옥씨(61·여)는 기자에게 돌아갈 집 걱정부터 털어놨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는 게 걱정이다. 이주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같이 여유 없는 서민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재산가치보다 더 큰돈을 들여 집을 수리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의 하소연은 ‘세금 축내는 이재민’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에 대한 원망으로도 이어졌다. 조씨는 “누구는 ‘내가 낸 세금을 왜 포항 이재민에게 줘야 하냐’는 말을 하는 것도 알고, 그 심정도 이해는 한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외의 못사는 빈민국도 돕는다. 자연재해로 억울하게 피해 입은 자국민을 도와 달라는 것뿐”이라고 토로했다.

 

포항 지진이 발생하자 당국 차원의 지원 대책이 마련됐다. 하지만 지원의 온기를 받지 못하는 곳도 여전히 있었다. 피해 복구가 장기화되면서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보육 대란’ 사태가 불거지기도 했다. 포항 지진으로 인해 흥해읍 소재 영일어린이집은 큰 피해를 입었다. 외벽 파손으로 어린이집 차량 두 대는 완전히 파손됐고, 영일어린이집이 있던 3층짜리 건물은 폐쇄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번 지진으로 어린이집은 최소 2억원 정도의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현재 영일어린이집 측은 원생 60여 명을 임시로 마련한 시설에서 보육 중이다.

 

그런데 김인정 영일어린이집 원장(58)은 지진 피해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요청했지만 단 1원도 못 받았다고 했다. 지원 요청을 받은 당국은 어린이집이 개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장이기 때문에 지원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국민 성금도 어린이집 복구비로 활용할 수 없었다. 김 원장이 여러 정부 부처와 신문고에 사정을 호소했지만, 정부 부처들은 ‘지원 규정이 없다’는 답만 했다고 한다.

 

지자체인 포항시 역시 피해 어린이집 안전과 관련해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는 게 김 원장의 주장이다. 포항시는 지진 이후 영일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안전검사를 두 번 진행했다. 이후 ‘안전’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육안으로만 내린 판정이라는 게 김 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당국의 태도는) 정말 무책임하다”며 “어린이집을 다시 운영하기 위해서는 건물 보수는 필수다. 교육자 양심상 아이들을 그 어떤 위험에도 방치할 수 없다. 만약 지진이 다시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 또한 오로지 내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도 이재민이다. 이번 포항 지진으로 인한 개인 피해 규모는 내가 가장 클 것”이라며 “공공 목적성을 띠는 어린이집을 개인 사업장으로 취급하니 장사꾼이 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주택 피해자에게만 재난 지원금을 줄 수 있다”며 “정부 지원은 보상 개념이 아니다. 금액도 얼마 되지 않는다. 어린이집의 경우 개인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보험으로 위기관리를 해야 한다. 만약 소상공인일 경우 재난구호기금 100만원은 지급된다”고 답했다.

 

포항시 흥해읍의 철거가 결정된 한 아파트 외부 모습 © 시사저널 윤민화

 

‘지진 공포’에도 지진 연구 예산은 뒷전

 

지진 예방 및 피해 관련 정부 예산 문제도 여전하다. 포항 지진이 발생하기 이전 정부가 당초 내놓은 내년도 지진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14%가량 줄어든 규모였다. 포항 지진 발생 후인  12월6일 국회에서 처리된  2018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행안부 소관 지진 관련 예산은 122억1800만원으로 집계됐다. 포항 지진 발생으로 인해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4개 사업 예산 36억8700만원이 증액(2017년 대비 22.7%) 편성된 것이다.

 

문제는 지진 대비를 위해 가장 중요한 R&D(연구·개발) 예산 증액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증액 내용 중 R&D 예산은 빠져 있었고, 증액분은 재난관리 전문대학원 설립(10억원)에 가장 많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강태섭 부경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현 단계에서 정부의 최우선 대책은 지진에 대한 연구 지원 확대”라며 “이번 포항 지진처럼 지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단층 운동으로 발생한 지진들에 대한 연구 지원을 늘려야 한다. 또 낙후된 건물들에 대한 보완 체계도 서둘러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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