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제’ 위험에 내몰린 고교 실습생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6 13:18
  • 호수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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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잔업과 특근 등 부당한 대우에 시달려 변질된 파견형 현장실습

 

현행 특성화고교(전문계고)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인 3학년 2학기 때 각 기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간다. 자기 전공분야를 살려 산업 현장에 가서 직접 실습을 해 보는 과정이다.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체와 협약을 맺고 학생들을 생산 현장에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현장실습’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이 기업체에서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사업주들이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고 미성년자인 학생들에게 잔업과 휴일근무, 2교대 야간근무를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실습제를 ‘현대판 노예제’라고 불러왔다. 학생들이 현장에서 죽고 다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 11월9일 제주의 한 생수 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생 이민호군(18)이 제품 적재기에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열흘 뒤인 19일 사망했다. 열여덟 번째 생일을 나흘 앞둔 날이었다. 이군이 일했던 상황을 보면 사고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11월2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특성화고 실습생 고 이민호군 추모문화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위험한 현장 예고된 사고

 

이군은 만 18세 미만으로 근로기준법상 연소자에 해당한다. 근무시간이 1일 7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추가 근무를 해야 할 때는 실습생 본인의 동의를 얻어 최대 1시간 더 연장할 수 있다. 학교와 업체가 맺은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도 1일 7시간, 1주 35시간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건 형식에 불과했다. 업체 측은 현장실습생들에게 매일 11~12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시켜왔다. 점심시간 1시간 중 30분은 회의시간으로 사용하면서 제대로 쉬지 못하게 했다.

 

이군의 경우 1일 7시간 이후에는 모두 연장 근로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업체는 성인과 동일하게 8시간 근무 이후를 연장근무로 계산해 수당을 적게 지급했다. ‘현장실습고등학생사망에 따른 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7월20일부터 사고 발생일인 11월9일까지 미 지급된 시간 외 근로 수당액은 207만8481원”이라고 밝혔다.

 

업체 측은 정규직 직원이 해야 할 일을 실습생에게 맡겼다. 이군이 다루던 기계는 사고 전부터 수차례 고장이 발생했다. 언제든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상태였다. 이군은 이번 사고가 나기 전에 일하다 갈비뼈를 다치는 등 두 차례나 업무상 재해를 당했는데도 업체는 이를 은폐했다.

 

이군이 친구들에게 보낸 카카오톡을 보면 “아직 고등학생인데 메인 기계를 만진다”거나 “기계 수리까지 해야 한다”는 등의 하소연 섞인 내용이 담겨 있다. 이군은 지난 8월 한여름에도 40도가 넘는 공장에서 12시간씩 앉지도 못하고 일했다고 한다.

 

싼 임금에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위험한 현장에서 보호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군이 처했던 실상은 대부분의 특성화고 실습생들이 처한 현실이다. 제2, 제3의 민호들은 지금도 위험한 현장에 내몰려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이군이 사망한 지 8일 후인 11월17일 인천 서구의 한 육류가공업체로 실습을 나갔던 박아무개군(19)이 육절기에 걸린 고기를 빼내려다 왼손 손가락 세 마디가 잘려 나가는 사고를 당했다. 박군은 축산물 절단기에서 잘린 고기가 나오면 이를 포장하는 일을 했다.

 

이에 앞서 올해 2월 울산 울주군의 단열재 제조업체에 실습을 나갔던 김아무개군(19)은 철판을 구부리는 절곡 작업을 배우다 오른손이 절곡기에 말려들어가 봉합수술을 받았다.

 

김군은 전공과 무관한 업무에 배치돼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군의 전공은 디지털콘텐츠학과였다. 처음에는 제품 도안 작업 등 안전한 업무에 배치됐다가 사고 하루 전부터 절곡 작업에 투입되면서 위험 업무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

 

실습생들은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월22일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인 LB휴넷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홍아무개양(19)이 저수지에 투신해 사망했다. 홍양은 숨지기 전 아버지에게 “콜수를 못 채웠다”는 문자를 보냈다. 평소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홍양 또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수습기간 중에도 콜수 실적 압박을 받아온 것이다. 원청인 LG유플러스도 책임을 인정했다.

 

2014년 2월20일 오전 CJ 진천공장 옥상에서 김아무개군(19)이 투신해 사망했다. 김군은 고등학교 재학 중 실습을 나와 졸업을 3개월 앞두고 취업했다. 입사일부터 3개월인 ‘2월11일까지를 현장실습 기간으로 한다’는 내용의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협약서에 표기된 ‘1일 7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투신하기 약 한 달 전에는 공장 분임조 회식 당시 폭행 등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 김군은 “너무 무섭다.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남기기도 했다. 결국 투신 당일 오전 7시에 출근해 40분 뒤 옥상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2월17일에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김아무개군(19)이 근로기준법상 규정된 업무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기아차는 학교와 근로기준법이 정한 시간 내에서 학생들이 근무토록 하겠다는 내용의 협약서를 작성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교육부에 보고된 실습생 산업재해 신청은 모두 26건이며 이 가운데 21건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취업률에 급급해 침묵하는 학교

 

현장실습생들은 위험하고 과도한 업무, 업무 스트레스, 임금 착취 외에도 기숙사 내 선배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타 학교 학생들과의 갈등도 적지 않다고 한다. 회사 선임이나 상사의 폭력에도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이른바 ‘군기잡기’로 인해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던 최아무개씨(22)는 2014년 8월 수도권 한 가전업체의 협력업체에 실습을 나갔다. 같은 학교 3명의 친구들과 함께였다. 이 업체는 최군이 다니던 특성화학교와 오래전부터 협약을 맺은 터라 선배들 상당수가 근무하고 있었다.

 

회사 한편에 숙소를 마련해 10명이 생활했다. 그런데 실습을 나간 지 얼마 후 선배들의 ‘군기잡기’가 시작되면서 모든 생활을 군대식으로 해야 했다. 집단 얼차려뿐만 아니라 폭행도 동반됐다. 주말 외출·외박도 통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또 “선배들이 타 학교에서 온 실습생들과 갈등을 조장해 이중 삼중 고통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최씨는 졸업 후 정규직으로 채용됐으나 곧바로 사표를 냈고, 다른 업체에 취업했다고 한다. 선배나 타 학교 출신 실습생 사이에 갈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 11월16일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한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특성화고 실습생 박아무개군(18)이 회사 4층 옥상에서 투신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주차된 화물차 위로 떨어지면서 다리와 머리 등을 크게 다쳤다. 박군은 투신 직전 회사 선임한테 욕설이 섞인 지적을 받고 괴로워하다 투신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특성화고 현장실습 중 실습생들의 크고 작은 사고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최근 실시한 청소년 노동단체인 ‘청소년유니온’의 특성화고 실태조사에서도 실습생들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이 단체는 10월23일부터 11월4일까지 특성화고 재학생·졸업생 202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에 나섰다.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80.7%(163명)가 현장실습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답했다. 부당대우(중복 응답)는 임금체불(34.7%), 과도한 야근(33.7%)이 68%를 차지했다. 이것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나간 실습장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욕설 등 언어폭력(26.7%), 계약과 다른 근로조건(19.8%), 식사·휴식시간 부족(17.8%), 성희롱·성폭력(11.4%) 등이 뒤를 이었다.

 

특성화고 학생과 현장실습생들이 10월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권리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차별과 무시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발 늦은 정부와 교육 당국

 

학생들 대부분은 어디에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응답자 중 71.8%가 부당대우를 인지하고 있으나 문제를 제기할 경우 당할 불이익으로 인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장실습을 중단한 19명 중 17명이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청년유니온은 “특성화고 현장실습 업체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는지 정부가 감독하고, 현장실습을 중단한 학생에 대한 학교 징계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성화고의 파견형 현장실습은 이미 취지를 벗어나 크게 변질된 지 오래다. 일종의 현장파견 대체수업을 염두에 두고 시행한 것이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저임금, 단순 노동력 공급 수단으로 악용됐다.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에도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학생들의 보호막이 돼야 할 학교는 ‘취업률’에 급급해 오히려 학생들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모른 체하거나 눈을 감았다. 취업률을 높여 학교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데만 치중했던 것이다. 교육 당국이나 노동청의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습생들은 외딴섬에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현장실습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과 학생들의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현장실습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도 지난 8월 개선안을 내놓았다. 올해 시범·준비기와 2018〜19년 단계적 확대기를 거쳐 2020년 개선안을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개선안의 골자는 현장실습의 중심을 근로(조기취업)에서 학습(취업준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고교실습생들의 사망사고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정부는 12월1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주재로 사회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고교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한 끝에 내년부터 조기 취업 형태의 실습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해진 현장실습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실습지도와 안전관리 등을 하는 학습 중심 현장실습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아울러 직업계고(高) 현장에 만연한 취업률 성과주의를 없애기로 했다. 이를 위해 취업률 중심의 학교평가와 예산지원 체제를 개선하고, 직업계고 취업률 조사방식도 국가승인통계로 바꾼다. 사람이 죽어야만 움직이는 정부와 교육 당국은 언제나 한 발 늦다. 이제 더 이상 제2, 제3의 민호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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