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던 플린은 왜 러시아 게이트에 협조하기로 했을까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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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바게닝 힘 보여준 뮬러 특검팀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줄곧 러시아와 자신에 쏟아지는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로버트 뮬러 특검 팀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가 내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12월1일 기소하는데 성공했다. 특검팀은 플린이 당시 주미 러시아 대사와 접촉하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의 인수팀 의견을 구했다고 전했다.

 

플린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하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NSC 보좌관에 임명된 지 2개월만인 2월13일, 러시아와의 접촉 사실을 숨긴 것이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갑작스런 사임은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와의 유착 관계에 강한 의심을 제공했다. 미국 언론들은 플린이 특검 측에 밝힌 내용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플린은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을 접촉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이 지시를 내린 사람이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라는 거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로 대통령의 친인척이 특검 시야에 정면으로 들어온 셈이 된다.

 

로버트 뮬러 특검 팀은 ‘러시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12월1일 기소했다. 플린은 증언을 대가로 특검과 형량 거래를 한 걸로 보인다. © 사진=AP연합

 

“50년 받을 지도...” 특검이 건넨 플린의 혐의 리스트

 

플린은 특검팀이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죄를 인정한 첫 사례가 됐다. 특검은 트럼프 대선 캠프에 몸 담았던 인물들을 돈세탁 혐의 등으로 기소했지만 주변부를 두드렸을 뿐이다. 플린이라는 트럼프의 최측근을 기소하면서 이제는 총구를 백악관 핵심을 향해 겨눌 수 있게 됐다. 

 

플린은 증언에 협조할 뜻을 밝혔다. 한때 ABC는 “플린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에 러시아 측과 접촉하도록 지시했다는 증언을 할 의향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ABC뉴스의 보도대로라면 대통령 자신이 직접적으로 지시한 게 되기 때문에 현 정부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보도가 나온 직후 다우지수와 달러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급락했고 미국 채권 수익률도 하락했다. 다만 ABC는 12월1일 보도가 나간 뒤 12시간 만에 오보인 걸 인정하고 정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뮬러 특검은 난관에 봉착해 있던 러시아 게이트 수사의 막힌 부분을 뚫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까지 플린은 의회 증언 등을 거부하며 버티기 작전을 써왔다. 그런 플린이 요지부동의 자세를 푼 건 11월 초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뮬러 특검은 플린 측 변호사에게 위증과 탈세, 무등록 로비 활동 등 플린의 죄목을 적은 리스트를 건넸다. 죄목 외에 기소 대상도 적시했는데 플린 뿐만 아니라 플린의 아들인 마이클 G. 플린이 포함돼 있었다. 그 역시 지난 대선 트럼프 캠프에서 일했다. 플린의 아들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측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망명한 터키 이슬람 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붙잡아 터키 측에 넘기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1월 “플린이 터키 정부 관계자로부터 재미 이슬람 학자 귈렌의 강제송환을 제안 받았으며, 성공 대가로 1500만달러를 제안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부분에 그의 아들이 관여한 셈이었다. CNN은 “(특검의 리스트대로라면) 플린은 최대 5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최대 50년형이라는 공포에 더해 경제적 이유도 플린을 압박했다. 플린의 한 측근은 변호사 비용의 증가 때문에 플린이 자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뮬러가 풀어놓은 리스트의 죄목대로 재판에 들어가게 되면 엄청난 변호사 비용이 필요했다. 이런 약점을 뮬러 특검팀은 비집고 들어갔다. 철저한 수사로 혐의를 입증하고 플린을 몰아붙인 뒤 사법 거래를 제안해 항복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피의자나 참고인은 특검팀의 수사 내용을 외부에 알릴 수 없지만 플린 측과 트럼프 대통령 법률팀은 특검팀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서로 공조해왔다. 그런데 11월22일 플린의 변호사는 대통령 법률팀에게 앞으로 수사 내용을 공유하지 않겠다고 통지했다. 이 통지 시점이 플린과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게이트에서 서로 다른 배를 탄 때로 보고 있다. 

 

12월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로부터 플린 관련 질문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 © 사진=DPA연합

 

다음 타깃은 트럼프의 실세 사위

 

플린이 기소된 위증죄의 경우 6개월 미만의 형기로 끝날 수 있다. 결국 특검 수사에 협조하며 플리바게닝(피의자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이 형을 낮춰주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기소하는 거래)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플리바게닝은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선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대륙법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기 때문에 플리바게닝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처럼 중요 사건의 몸통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플리바게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플린을 기소한 뮬러 특검팀의 다음 타깃은 쿠슈너가 될 가능성이 높다. 플린이 “지시를 받았다”고 지목한 고위 인물로 추정되는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의 남편으로 정권 인수기부터 실세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미 쿠슈너를 조사했다. CNN에 따르면 11월 초 특검은 플린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90분 정도 쿠슈너의 대답을 들었다. 당시 청취한 쿠슈너의 대답과 이번에 진술한 플린의 대답이 얼마나 일치하는 지가 진상을 밝힐 수 있는 키포인트다.

 

플린 전 보좌관의 기소는 특검과 백악관의 역학관계를 크게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잠잠했던 탄핵 역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백악관에서는 기소된 선거캠프 관계자들과 트럼프 대통령의 연결고리가 미미하다고 주장하며 그동안 혐의를 강력 부인해왔다. 하지만 플린은 대통령과 통하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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