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잉글랜드를 피해라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11.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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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속하면 ‘죽음의 조’…포트2의 강자를 피해라

 

월드컵 조추첨식이 끝나면 으레 '죽음의 조'를 따지게 된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추첨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죽음의 조 예상이 쏟아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모든 관심은 죽음의 조를 만들어낼 포트X에 누가 들어가느냐에 쏠렸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FIFA는 조추첨 방식을 정한다. 브라질 월드컵 조추첨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포트X의 존재다. 한 조에 고른 전력을 갖춘 팀들을 배치하기 위해, 그리고 서로 다른 대륙 팀끼리 붙도록 하기 위해 추첨 방식을 정했는데, 그러다보니 매번 축구 강국이 즐비한 유럽팀의 배분이 문제였다. 그래서 일단 FIFA 랭킹과 대륙을 기준으로 포트1~포트4로 참가국을 나눴다. 2013년 12월4일 FIFA가 발표한 포트를 보면 포트1은 개최국 브라질을 비롯해 강팀들이 모였다. FIFA 랭킹 1∼7위인 스페인·독일·아르헨티나·콜롬비아·벨기에·우루과이·스위스에 개최국 브라질이 포트1에 포함돼 8개 조의 시드 1번을 차지했다.

 

대륙별 분배를 위해 포트2는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이, 포트3는 아시아와 북중미 국가들이 포함됐다. 문제는 유럽9개 팀이 모여 있는 포트4였다. 8개 조로 운영되니 한 팀이 남는다. 이 남는 한 팀은 포트2로 들어가야 하는데 자칫 추첨결과에 따라 포트1, 포트2, 포트4가 모두 유럽팀이 되는 조가 나올 수 있는 상황. FIFA는 포트1의 우루과이와 함께 패키지로 이 한 팀을 조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FIFA는 포트4에 속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우루과이와 함께 움직일 포트 X 추첨을 하기로 했다. 

 

포트X에 포함되면 포트1 우루과이, 포트4 유럽팀과 함께 죽음의 조에 속할 가능성이 높았다. 추첨 결과 포트X에는 이탈리아가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우루과이, 잉글랜드, 코스타리카와 D조에 편성됐다. 체사레 프란델리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은 조 추첨 결과 뒤 "오히려 약팀에 속했다면 걱정했을 거다. 그런데 이번처럼 어려운 조라면 오히려 잘 준비할 것이다"고 말했지만, 이탈리아는 16강 진출에 실패하며 먼저 퇴장해야 했다.

 

출전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월드컵 조추첨식. 월드컵 조추첨식이 끝나면 으레 '죽음의 조'를 따지게 된다. © 사진=AP연합

 

죽음의 조 통과해도 토너먼트에서 힘 빠진다?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죽음의 조에 속했는데, 이때는 이탈리아 TV '채널 스카이 이탈리아'가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조추첨 결과 체코(당시 FIFA랭킹 2위), 미국(당시 FIFA랭킹 8위), 그리고 첼시의 핵심 선수인 미카엘 에시앙이 속한 가나와 한 조가 됐고 이들의 조는 죽음의 조로 평가받았다. 채널 스카이 이탈리아는 "추첨을 했던 독일 축구 영웅 마테우스가 조작으로 이탈리아를 죽음의 조에 밀어넣었다"고 주장했다. 

 

조작의 방법은 추첨볼의 온도였다. 방송은 "차가운 공과 뜨거운 공이 추첨함에 들어있었고 마테우스는 추첨 도중 공 하나를 집어들었다가 급히 다른 공으로 바꿨다. 온도 차이를 이용해 미국을 뽑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혹의 당사자 마테우스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갖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미친 짓이다"고 잘라 말했다.

 

죽음의 조는 혼전양상을 보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절대적 강자가 있는 조에서 3승 팀이 나오는 그림보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되면 최종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의 E조는 막상 경기를 해보고 나니 역대급 죽음의 조로 평가받았다. 이탈리아, 노르웨이, 아일랜드, 멕시코가 한 조였는데 서로 물고 물리며 4팀이 모두 1승1무1패를 기록할 정도로 처절했다. 승점도 같았고 골득실마저 모두 0으로 같았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역대급 죽음의 조가 나왔다. F조는 매번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아르헨티나와 축구 종가 잉글랜드, 잉글랜드보다 전력이 더 낫다고 평가받던 스웨덴, 그리고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가 묶였다. F조 6경기 동안 9골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됐는데, 결국 가장 전력이 강하다는 아르헨티나가 나이지리아와 함께 16강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맛봤다. 잉글랜드는 스웨덴과 함께 1승2무를 거둬 죽음의 조를 통과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죽음의 조 희생양은 북한이었다. 매 대회 우승후보인 브라질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를 앞세운 포르투갈, '아프리카의 강호' 코트디부아르라는 세 팀과 함께 북한이 편성됐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이 16강에 진출하며 비록 이변은 없었다. 하지만 세 팀 중 누가 통과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의외로 죽음의 조를 통과한 팀들은 우승과는 인연이 적었다. 흔히들 강팀은 조별리그보다 토너먼트에 최상의 컨디션을 맞추는데 비해 죽음의 조에 속하면 초반부터 전력을 쏟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2006년 이탈리아만큼은 달랐다. 음모론까지 펼치며 죽음의 조를 탓했지만 막상 조별 예선을 통과한 뒤 우승까지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다만 이탈리아는 죽음의 조 단골손님이기에 추첨운이 박복한 편이었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에는 나오지 못하니 그런 불운을 증명할 기회도 사라졌다. 반면 독일이나 브라질은 상대적으로 추첨운이 좋은 강팀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죽음의 조에 속했던 이탈리아는 16강 진출에 실패하며 먼저 짐을 싸야했다. © 사진=AP연합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죽음의 조는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다. 러시아 월드컵은 포트 배정부터가 달랐다. 대륙별 분배 원칙을 없애고 철저하게 FIFA랭킹 순서대로 잘랐다. 예선을 통과한 32개 팀은 포트1~포트4로 분류됐는데, 톱시드인 포트1에는 독일(1위), 브라질(2위), 포르투갈(3위), 아르헨티나(4위), 벨기에(5위), 폴란드(6위), 프랑스(7위)와 개최국 러시아가 포진했다. 문제는 포트2에 위치한 국가다. 왜 포트2에 있는지 이해하기 힘든 스페인(8위), 그리고 축구종주국인 잉글랜드(12위)는 랭킹에서 밀려 포트2로 왔지만 사실상 우승 가능국이고 우루과이도 강력하다. 이들이 들어가는 조는 죽음의 조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포트3에서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 이집트 등이 포함된다면 죽음의 조가 탄생한다. 

 

포트4에 위치한 한국 입장에서 본다면? 포트1에서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포트2에서 스페인, 잉글랜드, 우루과이, 포트3에서 스웨덴이나 덴마크를 만난다면 바로 ‘죽음의 조’로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따지고보 면 개최국 러시아를 제외한 31개 참가국 중 30번째 랭킹을 기록하고 있으니, 어딜 가더라도 죽음의 조에 호출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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