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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위기의 국정원, 빨간불 켜진 對北 정보망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원장 4명 구속·사법처리 위기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3(Thu) 11:30:01 | 1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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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가 술렁인다. 적폐청산이란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칼바람이 매섭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처럼 치러온 과거 정부 손보기는 익숙한 일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반응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인사들 중 두 명이 구속되고, 다른 한 명도 기소를 피해 갈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심리전 단장 등 실무 간부들이 댓글 문제 등으로 잇달아 구속된 데 이은 움직임이라 충격은 더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검찰은 이병기 전 원장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뇌물공여, 업무상 횡령 등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남재준 전 원장과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해선 특수공작용 특수활동비 등 40억여원을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상납해 국고를 손실했다고 본다. 특수활동비는 ‘뇌물’로 규정됐고, 청와대에 이를 전달한 것은 ‘상납’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중벌이 예상되는 혐의다. 원세훈 전 원장까지 포함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원장이 한 명(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김성호)을 제외하고 모두 구속되거나 사법처리 위기에 처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문제는 이 같은 국면에서 국가 정보기관으로서의 국정원 위상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점이다. 나름대로 국가안보와 국익수호의 첨병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모두 망가졌다는 자탄이 나온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불법 공작이나 하고 국민세금을 권력기관에 ‘상납’이나 하는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참담함이다.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선 “이러다간 구치소에 국정원을 차려야 할 판”이란 말이 나온다. 자신들이 모시던 원장이나 간부가 하루아침에 적폐세력으로 낙인찍힌 데 따른 자괴감도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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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간 구치소에 국정원 차려야 할 판”

 

무엇보다 심각한 건 정보기관 전통의 상명하복 문화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면 불합리한 점이 있어도 일단 실행하는 게 정보맨들에겐 기본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이젠 옛일이 됐다는 얘기다. 상부의 지시라 해도 조금만 낌새가 이상하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는 전언이다. 부하 직원들로부터 존경받던 베테랑 간부들이 개인비리나 사욕을 채우려는 공작이 아니라 지휘 계통상의 업무수행 때문에 무너지는 걸 보며 직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핵심 업무 중 하나인 대북정보 분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우선 비합법적 공작이 상당 부분인 업무 특성상 현장 정보요원들의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된 국정원 댓글공작의 경우도 시작은 북한의 사이버 선전·선동 공세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민감한 정치현안이나 선거개입까지 이뤄지면서 문제가 됐지만 북한의 대남 선동이 우리 사회에 파고드는 걸 차단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비중이 쏠렸다는 게 한 관계자의 주장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국내외 공작도 이젠 실행 전에 생각해 봐야 할 일이 많아졌다. 혹시 정권이 뒤바뀐 후에 적폐로 낙인찍힐 일이 없는가 하는 문제다.

 

새 정부의 취향에 맞는 대북정보 수집과 분석도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협력에 무게를 싣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정권을 자극하거나 대북 접근에 장애물이 될 정보를 꺼릴 수밖에 없다. 눈치 없이 있는 그대로 부정적 대북정보를 드러내거나 비판적 분석만 내놓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국정원이 대북정보의 수위를 맞추고 북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해외 정보기관과의 정보 교류나 협력 채널이 망가지게 된 것도 큰 손실이다. 이전 정부 국정원에서 벌어진 일이 정권교체에 따라 낱낱이 공개되고 검찰과 언론을 통해 실시간 중계되는 상황에 대해 우방국 정보 당국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이 공작금 용처를 수사기관으로부터 추궁받고 사법적 판단을 받는다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는 얘기다. 대북파트 관계자는 “정보기관의 신경망에 해당하는 서버를 들여다보겠다고 나서고, 이를 정치권과 일부 세력이 압박하는 상황에 우려를 보내온 해외 파트너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한국 정보기관과 주고받은 은밀한 정보사항과 출처 등이 노출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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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략 파트 요원들 ‘이중고’

 

국정원 대북전략 파트 요원들은 향후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를 놓고도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단계에서 북한과의 비밀접촉을 국정원이 맡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자금이나 편의 제공, 논의 내용 등이 훗날 정권교체 등에 따라 드러날 경우 문제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김대중 정부 시기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특대형 적폐’를 드러냈다. 정상회담 대가 성격을 띤 4억5000만 달러의 대북 비밀 송금 과정에 당시 국정원이 개입해 불법 환전소 역할을 한 것이다. 국정원 직원을 동원해 개인 차명계좌를 만들었고 쪼개기 수법까지 동원했다. 노무현 정부가 특검을 통해 불법성과 대가성을 일부 밝혀내 사법 처리했지만 아직 전모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정원 고위 간부는 특검에서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증언을 해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국민을 기만하거나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문제는 서훈 국정원장이 이런 국정원의 부끄러운 과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에서 28년간 잔뼈가 굵은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핵심 북한 정보를 다뤘고, 크고 작은 대북 접촉에 빠지지 않았다. 이런 경륜을 바탕으로 국가 정보기관으로서의 국정원 위상을 지키고 대북정보 수집에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까진 적폐청산이라는 큰 흐름에 몸을 사리고 있는 모습이다. 불합리한 관행은 고쳐야 하고, 불법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권교체에 따라 국가 정보기관이 휘청거리고 적폐청산이 또 다른 적폐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서훈 원장의 국정원이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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