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친위대’ 시자쥔, 중국 미래 짊어지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1 17:03
  • 호수 146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자쥔, 제19기 중앙위원회서 대약진…상무위원 3명, 정치국원 절반 이상 차지

 

“향후 15년 동안 중국은 ‘시자쥔(習家軍)’이 짊어지고 이끌어 갈 겁니다.” 필자가 최근 홍콩에서 만났던 한 출판사 편집인은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 이후 중국 정치를 이렇게 전망했다. 여기서 시자쥔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개인적 인연이 깊고, 시 주석에게 절대 충성하는 측근세력을 가리킨다. 그는 “전통과 관례를 중시하는 중국 특성상 시 주석은 20차 전당대회에서 3연임을 시도하진 않을 듯싶다”면서도 “중앙과 지방 요직에 모두 시자쥔을 배치해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처럼 상왕(上王)으로 계속 군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새로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5명은 60대다. 1990년대 초 덩샤오핑(鄧小平)이 확립해 50대의 후계자를 뽑아 공개하던 ‘격대지정(隔代指定)’이 무너졌다. 격대지정은 한 세대를 건너뛰어 차차기 리더를 미리 지정하던 관례였다. 1992년 덩샤오핑은 장쩌민을 이을 후계자로 후진타오(胡錦濤)를 낙점해 상무위원에 앉혔다. 2007년 퇴임했던 장쩌민의 의중에 따라 시 주석이 상무위원이 됐다. 2012년 후진타오는 후춘화(胡春華·54) 전 광둥(廣東)성 서기와 쑨정차이(孫政才·54) 전 충칭(重慶)시 서기를 정치국원으로 뽑아 후계구도를 정립했다.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가 10월18일 개막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현직 공산당 간부들이 당대회에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풍부한 행정 경험 쌓은 관료 선호

 

그러나 장쩌민이 밀었던 쑨 전 서기는 부패 혐의로 낙마했다. 상무위원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던 후 전 서기는 정치국원만 연임했다. 시 주석의 후계자로 부상했던 천민얼(陳敏爾·57) 충칭시 서기도 정치국원으로 승진하는 데 그쳤다. 이는 2012년에 설정됐던 차차기 후계구도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실제 전당대회 직후 개최된 19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선 시자쥔의 대약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시자쥔은 상무위원은 3명이었지만, 15명이 바뀐 정치국원 25명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시자쥔은 크게 시 주석의 고향 인맥, 푸젠방(福建幇), 즈장신쥔(之江新軍)으로 나뉜다. 시 주석은 태자당(太子黨·공산혁명 지도자의 자녀) 출신이다.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은 공산당 8대 원로 중 한 명으로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했다. 그러나 1962년 실각해 10여 년 동안 유배됐다. 시 주석도 부친 고향인 산시(陝西)성으로 하방(下放)됐다. 이 시기 시 주석은 어렵게 말단 공무원이 돼 촌서기까지 올랐다. 문화대혁명 말기 명문 칭화(淸華)대에 입학해 1979년 졸업했다. 향촌조직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권력 정점까지 올라선 태자당 인사는 아주 드물다.

 

자오러지(趙樂際·60)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와 리시(李希·61) 광둥성 서기는 대표적인 고향 인맥이다. 자오 서기는 칭하이(靑海)에서 줄곧 일했다. 본적과 고향은 시 주석과 같은 산시다. 또한 부친은 시중쉰 밑에서 일했던 부하다. 리 서기는 간쑤(甘肅)에서 태어났는데, 고향은 시중쉰이 혁명 활동을 시작했던 량당(兩當)현이다. 또한 시중쉰과 친한 리쯔치(李子奇) 전 간쑤성 서기의 비서로 일했다. 2006년부터 5년간 옌안(延安)시 서기로 재직할 때는 시 주석이 일했던 량자허(梁家河)촌을 관광지로 조성했다.

 

푸젠방은 1985년부터 2002년까지 시 주석이 일했던 푸젠성 출신을 가리킨다. 시 주석은 샤먼(廈門) 부시장부터 단계를 밟아 성장까지 오르며 풍부한 행정 경험을 쌓았다. 이번에 정치국원이 된 차이치(蔡奇·62) 베이징시 서기와 황쿤밍(黃坤明·61) 중앙선전부장은 시 주석 밑에서 일했다.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도 푸젠방이다. 다만 이들은 시 주석의 직속 측근은 아니었기에 즈장신쥔보다 친밀도는 낮다. 시 주석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저장(浙江)성 성장 및 서기를 역임했다. 이 시기 시 주석의 측근과 부하가 즈장신쥔이다.

 

2003년 3월부터 5년간 시 주석은 ‘저장일보’에 칼럼 ‘즈장신어(之江新語)’를 232편 실었다. 즈장신어 내용은 현재 시진핑 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당시 즈장신어를 기획했고 초고를 썼던 이가 천민얼 서기다. 천 서기는 시 주석의 후광을 받아 저장성 선전부장에서 부성장을 거쳐 구이저우(貴州)성 부서기, 성장, 서기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쑨 전 서기 실각 후 충칭시 서기까지 됐다. 충칭은 최근 수년간 중국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다만 19차 전당대회 직전에는 중앙위원이었기에 두 계단을 뛰어넘어 상무위원이 되는 건 무리가 따랐다.

 

상하이시 서기에 내정된 리창(李强·58)은 새롭게 떠오르는 신데렐라다. 리 서기는 시 주석이 저장성 서기로 재직할 때 비서 역할을 했다. 그 뒤에는 관운이 따르지 못했다. 2013년에 저장성 성장이 됐고, 2016년에야 장쑤(江蘇)성 서기로 승진했다. 또한 18차 전당대회에선 정치국 중앙위원 후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 직전에 중앙위원이 됐고, 직후엔 정치국원으로 선임됐다. 불과 2주 동안 두 단계를 건너뛴 파격 승진이었다.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상하이시 서기로 영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상하이는 베이징, 톈진(天津), 충칭 등 4대 직할시 중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가장 크다. 또한 상하이시 서기는 장쩌민과 시 주석이 최고지도자로 오르기 직전 거쳤던 자리다. 결국 리 서기의 고속 승진은 시 주석의 입김 없이는 불가능하다. 리 서기는 10년 뒤 68세가 된다. 만약 5년 뒤 최고지도자가 될 경우 10년 뒤엔 ‘7상8하(七上八下)’의 불문율에 걸린다. 다만 68세 이상을 은퇴시키는 관례를 리 서기에게 적용하는 건 애매하다. 과거 리 서기처럼 전당대회가 개최됐던 해에 68세인 상무위원은 없었다.

 

중국 공산당 19차 전당대회를 다룬 중국 신문 © 사진=연합뉴스

 

눈여겨봐야 할 ‘다크호스’ 딩쉐샹

 

3대 인맥에 들진 않지만,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승진한 딩쉐샹(丁薛祥·56)을 눈여겨봐야 한다. 중앙판공청은 우리의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한다. 이번에 리잔수(栗戰書) 전 주임이 상무위원에 선출되고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 내정되면서 그 위상이 높아졌다. 딩 주임은 본래 장쩌민의 푸단(復旦)대학 후배인 상하이방이었다. 시 주석이 상하이시 서기로 8개월간 재임할 때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그게 인연이 돼 2013년 시 주석이 중앙판공청으로 불러들였다. 시 주석이 측근으로 삼는 충성심, 성실성, 업무능력 등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시자쥔에 비해 후춘화 전 서기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후 전 서기는 고등학생, 대학생, 청년노동자 등을 관장하는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이다. 과거 공청단파는 명문대 출신이 많았고 승진이 빨랐다. 베이징대 출신으로, 40대에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서기가 됐던 후 전 서기가 그러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출신 학교를 따지지 않는다. 풀뿌리 조직부터 풍부한 행정 경험을 쌓은 관료를 선호한다. 현재 후 전 서기가 갈 수 있는 자리는 공석인 국가 부주석과 부총리다. 국가 부주석은 보통 차기 후계자가 맡았다. 만약 국가 부주석이 되지 못하면, 후 전 서기에겐 더 기회가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