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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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정교과서 516일: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백승우 감독 인터뷰

 

516일. 2015년 10월12일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부터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의 기간이다. 박근혜 정부 몰락과 문재인 정부의 국정교과서 폐지 발표로 국정교과서 사태가 마무리됐다고 생각하는 이 때, 아직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말하는 영화 한 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13년《천안함 프로젝트》를 연출한 백승우 감독은 “왜 그들은 지금 국정교과서를 강요하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2016년 여름, 국정교과서를 영화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전 정권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 두 개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세월호’, 두 번째는 ‘국정 교과서’다. 세월호는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카메라를 들고 나가 꾸준히 현장을 담았다. ‘기록이 되고 있구나’ 내심 안심이 됐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국정교과서는 누구도 기록하고 있지 않았다. 국정교과서 문제를 기록 해야겠다 결심한 이유다“ 

 

영화 개봉을 일주일 앞둔 11월16일 시사저널과 만난 백승우 감독은 국정교과서를 소재로 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국정화 문제는 끝났지만 역사전쟁은 결코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교과서 폐지 후에도 계속 역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어떻게 영화 제작이 시작됐나.

 

“작년 여름, 영화《부러진 화살》로 처음 인연을 맺은 정지영 감독께 찾아가 ‘우리 이런 영화해야 하지 않나요?’ 물었다. 정 감독님이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하시더라. 제작 당시 우리 제작사 자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제작비를 원활하게 구할 수 없었다. 그 때 정 감독님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해보자 제안했고, 다행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다.”

 

 

영화를 찍으며 검토한 국정교과서는 어떤 느낌이었나.

 

“국정교과서 이전 교학사 교과서를 먼저 접해봤다. 그걸 본 순간, 이게 잘못됐다는 설득은 10분이면 되겠구나 싶었다. 굳이 영화나 매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조금만 들여다봐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엉터리였다. 오히려 이 정도 수준에 우리가 당해야 하나 화가 났을 정도다. 그래서 교과서 내용 하나하나의 문제보단 ‘저들이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려 했는가’를 더욱 비중 있게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정교과서를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화 제목에 ‘끝나지 않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뭔가.

 

“애초에 그들이 국정교과서를 만든 자체가 단순히 교과서를 바꾸자는 게 아니지 않았나. 극우세력들의 친일 미화와 역사 왜곡하려는 노력은 국정교과서를 넘어 여전히 살아있고 진행 중이다. 따라서 국정교과서 하나 폐지했다고 싸움이 끝난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싸워나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끝나지 않았다’고 봤다.” 

 

 

역사전쟁이라는 게 끝날 수 있을까.

 

“끝나지 않으리라 본다. 역사가 기록된 이후 항상 그 싸움은 있었다. 독일도 여전히 ‘신(新)나치’ 세력이 있듯, 우리나라도 극우세력들은 또 등장할 거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다. 다만 지난 정권 때처럼 그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집단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다. 독일이 수십 년에 걸쳐 싸워 나갔듯 우리도 얼마가 될 진 모르지만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반드시 봤으면 좋겠다 생각한 사람이 있나.

 

“지금 우리 사회를 반성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지 않나. 이 영화들의 특성이 뭐냐면, 굳이 안 봐도 되는 사람들만 찾아본다는 거다. 꼭 봐야 하는 사람들은 절대 찾아보지 않는다. 처음엔 이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 어쩌면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지난 겨울 광화문과 서울역에서 봤던 극우세력들을 보면서 ‘저들은 이성으로 결코 설득되지 않겠구나’ 싶었다. 어떤 생각이 사회에서 다수가 되고 주류가 되느냐가 중요한 거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는 것 자체는 내 오만일 수 있겠구나 느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정치적인 감독 꼬리표에 두려움 없어”

 

영화《천안함 프로젝트》당시 정부로부터 ‘블랙리스트 감독’으로 찍힌 바 있다. 당시엔 여러 불이익을 몸소 체감했을 텐데. (2013년 8월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중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하는 영화관엔 불이익이 취해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이후 특검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영화가 개봉 첫날 바로 다양성 영화 부문 1위를 했다. 그럼 곧 저들 기준으로 ‘돈 되는 영화’ 아닌가. 그런데 이튿날 상영관에서 다 내려갔다. 화가 나기보다 상황 자체를 그저 이해할 수 없었다. 답답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답답한 상황이었다. 같이 답답해했다.”

 

 

이번 영화 제작할 땐 좀 여건이 수월했나.

 

“과거나 지금이나 영화 만들 때 항상 가장 어려운 점은 제작비다. 이 문제를 제외하면 난 늘 재미있게 제작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한 그림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또《천안함 프로젝트》때 워낙 이런저런 경험을 했었고, 많이들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 괜찮았다.”

 

 

정치적 편향성을 띤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때로 부담스럽진 않나.

 

“사실《천안함 프로젝트》를 만들고 처음 선보이기 직전까진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예상대로 정말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 공격들을 받으면서 오히려 두려움이 치유됐다. ‘이 정도였어?’, ‘이 정도 논리와 이성을 갖고 그동안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고 했던 거야?’ 싶었다. 이런 공격이라면 괜찮다, 얼마든지 공격 받을 수 있다 생각했다.” 

 

 

올해《공범자들》과 같은 고발성 영화들이 다수 개봉됐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나.

 

“보수 정권에서 그간 영화계와 방송계를 끊임없이 공격해오지 않았나. 방송인들이 설 자리를 잃었을 때 영화계가 이들의 얘기를 담을 수 있는 터전이 돼 줬다는 데, 영화인으로서 자부심이 들었다. 다만 원래 독립영화를 해왔던 감독들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않고, 건너오신 분들의 센 이야기만 관심 받는 게 어느 순간 아쉽기도 했다. ‘우리 영화계가 잘 버텨줘 뿌듯하다’는 감정과, ‘너무 저쪽 영화만 트는 거 아냐’ 하는 감정이 오랫동안 공존했다. 누구의 문제라기 보단 그저 자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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