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안동, 文 정부 ‘TK 진출’ 교두보로 거론되는 까닭
  • 경북 안동=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0 09:12
  • 호수 146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이어 여권 핵심인사들 발길 줄 잇는 경북 안동 ‘임청각’

 

“임청각예? 안동 사람 아이고 누가 겨(거기)를 알겠능교? 겨는 와 찾아가는데예? 겨는 내비(내비게이션) 키도 (찾기) 복잡할 긴데….” 경북 안동의 고택 임청각(臨淸閣)을 물어물어 찾아가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내비게이션 없이 말로만 설명 듣고는 더욱이 힘들다.

 

그런 임청각이 최근 정치권에서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때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난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의 생가다. 이 집은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3대에 걸쳐 9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된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과 같은 곳이다. 이상룡 선생은 조선이 일본에 강제 합병되자 가족들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갔다. 빼앗긴 조국에서는 잠시도 살 수 없다는 신념에 그는 모든 재산을 처분했고 그렇게 만든 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올 8·15 기념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느닷없이 임청각의 유래를 설명했다.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 (중략)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마당에서 바라본 임청각 군자정. 임청각을 찾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방에서 묵었다. © 시사저널 박정훈

 

문 대통령, 8·15 축사에서 임청각 처음 언급

 

그 전까지만 해도 임청각은 세간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현지에서 만난 안동 시민들조차 이구동성으로 “안동 사람 말고 누가 임청각에 관심이 있겠는가”란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임청각은 외부에 잘 보이지 않는 특이한 곳에 위치해 있다. 원래부터 그런 게 아니라 후대에 와서 그렇게 됐다. 우선 건물 바로 앞 중앙선을 타고 기차가 하루에도 수십 대씩 지나간다. 기차가 지나갈 때는 땅이 흔들릴 정도다. 때문에 안동시는 주민들을 위해 철로 변에 방음벽을 설치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지 않고 반대편에서 임청각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낙동강을 끼고 들어선 안동시 소수력발전소에서는 한옥 지붕만이 살짝 보일 뿐이다.

 

당초 임청각은 99칸의 대저택으로 지어졌다. 이상룡 선생이 만주로 건너가자 일제는 1941년 지맥(地脈)을 끊기 위해 30여 칸의 행랑채를 허물고 중앙선 선로를 깔면서 오늘날 모습이 됐다. 현재 임청각은 안채·사랑채·군자정·사당 등을 비롯해 60여 칸만 남아 있다. 문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그(이상룡 선생)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아 임청각은 지금 반 토막이 난 모습”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임청각을 찾아가는 길은 매우 복잡하다. 낙동강 변을 따라 들어선 안동체육관·안동소방서를 지나면 법흥교와 연결된 법흥육거리가 나온다. 법흥육거리 주변이 복잡한 이유는 중앙선 철도와 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법흥육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켜고 굴다리를 지나자 문화재를 뜻하는 갈색 표지판에 ‘임청각’이라고 써 있다. 그런데 표지판에 바로 우회전하라고 표시돼 있는데 거의 유턴에 가까운 수준으로 차를 160도 정도 돌려야 한다. 그러고 300~400m를 들어가니 고택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는 입구로 봐서 이곳에 문화재가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는 곳에 임청각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임청각을 찾는 관광객은 크게 늘었다. 8·15 광복절 이전까지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문 대통령 경축사 이후 주말에는 200~300명가량이 다녀간다. 이러자 안동시도 문화재 해설인력을 증편했다. 도산서원에서 근무하다 한 달 전 임청각에 배치됐다는 해설사 주경무씨는 “임청각이 어떤 곳인지 보려는 사람들로 주말에는 일대가 꽤 붐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찾느라 분주하다. 문 대통령이 임청각을 찾은 것은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해 5월27일. 이상룡 선생의 직계종손 이항증씨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당시 보좌관·대학교수 등 5명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묵고 가던 군자정(君子亭)에서 이항증씨로부터 임청각에 대해 설명을 들은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면 임청각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시키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5월27일 임청각을 찾아 이상룡 선생 직계 종손인 이항증씨(오른쪽)로부터 설명을 듣는 문재인 대통령.

 

“임청각에서 새 정부의 정통성을 찾아야”

 

문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임청각을 찾는 여권 관계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8월10일 현장을 찾았는가 하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월14일 임청각을 방문했다. 이외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민석(경기 오산), 박찬대(인천 연수갑), 이용득(비례대표) 의원과 정의당 소속 추혜선(비례대표) 의원 등이 최근 임청각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대 의원은 외가가, 이용득 의원은 이상룡 선생과 같은 고성 이씨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도 최근 경기도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현지를 찾았다. 여권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 시절 문 대통령에게 비선라인에서 ‘임청각에서 차기 정부의 정통성을 찾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쯤 현장을 방문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주장대로라면, 임청각 복원은 꽤 오래전부터 기획됐던 일이다. 안동 시민조차 잘 알지 못하는 곳을 유력 대권 후보였던 문 대통령이 소수의 보좌진만 이끌고 찾은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또 다른 여권 소식통은 “정부의 정통성을 상해 임시정부에 맞추고 있는 문 대통령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國務領)을 지낸 이상룡 선생의 생가 복원을 지시한 것은 문화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해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8·15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하다”고 말해 정부의 정통성을 임시정부와 맞추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임시정부는 1926년 대통령제를 없애고 국무령제를 채택했는데 초대 국무령이 바로 이상룡 선생이다.

 

문 대통령 발언 후, 임청각 복원 사업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임청각을 과거 99칸의 대저택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집 앞을 지나가는 중앙선 철로를 옮겨야 한다. 1941년 일제는 임청각 앞으로 철로를 내기 위해 7㎞나 돌려 중앙선을 개설했다. 때문에 현재의 중앙선은 노선 재정비가 관건이다. 현재 정부는 중앙선 복선 전철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의 안동역은 시 외곽인 송현동으로 옮겨간다. 당초 이 사업은 내년 완공이 목표였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 줄줄이 연기되면서 2020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중앙선이 복선으로 전철화되면 서울 청량리와 경북 안동은 80분대로 연결된다. 안동시 입장에서 중앙선 복선화 사업은 시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올 초나 중반까지만 해도 사업이 2022년으로 늦춰지는 분위기였는데, 대통령 경축사로 임청각 복원이 확정된 만큼 2020년경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재 안동시는 올 11월 임청각 종합정비계획을 발표하면서 중앙선 철도 이전을 핵심 사업으로 채택했다. 중앙선이 복선 전철화되면서 안동시는 현재의 안동역사 부지 52만㎡(15만7300평)를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지역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주거단지·문화시설·근린생활시설 개발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안동시 입장에선 중앙선이 복선 전철화되면 안동역 주변 원도심의 도시재생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데, 그 시발점이 임청각 복원인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임청각 복원 사업을 문재인 정부의 TK(대구·경북지역)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TK 정서를 달래기 위해 ‘동진(東進)정책’을 편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안동을 ‘독립운동의 성지’로 만들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를 빠져나와 안동 시내로 향하다 보면 ‘한국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이라는 글귀를 쉽게 볼 수 있다. 안동 시내와 병산서원을 잇는 46번 버스 광고판은 아예 ‘한국독립운동의 성지’로 디자인돼 있다. 지역에서 만난 안동 시민 김지광씨는 “한일합방(경술국치) 이후 안동에서 자정순국(단식 순결)한 사람만 10명에 이를 정도로 안동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중심”이라면서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으로 대표되는 전통문화·유교문화와 함께 독립운동을 지역의 3대 문화 상품으로 키울 만하다”고 자랑했다. 현재 안동은 공식 인정받은 독립운동가만 357명으로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다. 올해는 독립운동기념관까지 문을 열었다.

 

1941년 지맥을 끊고자 일제가 행랑채 30여 칸을 허물고 철로를 놓으면서 임청각은 예전의 절반만 남았다. © 사진=안동시청 제공

 

反민주 정서 강한 경북 북부권 공략 시각도

 

지역 정가에서는 올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하회마을을 방문한 것조차 안동을 중심으로 한 TK 공략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임청각을 비롯해 독립운동이라는 테마로 안동 일대를 개발해 TK에서 교두보를 마련할 거라는 분석이다. 임청각에서 만난 안동 시민 채서환씨도 “안동 시민 상당수가 ‘우리 동네에 저런 곳이 있었냐’며 깜짝 놀랐다”면서 “복원 사업이 시작돼 봐야 알겠지만, 안동 시민 입장에서 일련의 개발사업이 싫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TK에서 안동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경북도청사가 안동과 예천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안동을 비롯해 상주·예천·문경·영양·봉화 등 경북 북부권은 TK 지역에서도 ‘반(反)민주’ 정서가 강한 곳이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안동에서 21.63%의 득표에 그쳐 경북 평균치(21.73%)를 밑돌았다. 공교롭게도 북부권으로 분류되는 상주(18.36%)·예천(16.52%)·문경(17.65%)·영양(19.08%)·봉화(18.47%)에서 모두 문 대통령의 득표율은 경북 평균치를 밑돌았다. 때문에 여권에 있어 TK 북부권 표심을 잡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와 2020년 차기 총선, 더 나아가 2022년 차기 대선을 앞두고 중요한 과제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경북도는 남북권 간 경제력 격차가 크기 때문에 안동을 중심으로 한 북부권의 경제상황이 조금만 나아져도 지역 정서는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최근 30~40대 청장년층 사이에 ‘혁신유림’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것도 여권으로선 긍정적인 신호다. 조선 말기 서양의 신문화와 신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혁신유림’(革新儒林)의 중심지가 경북 안동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사회주의자로 활동한 권오설 선생의 고향도 안동이다. 한 지역주민은 “지금은 보수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박정희 정권 때만 해도 경북 안동은 야당세가 강한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여권이 정치적으로 임청각 문제를 다룰 경우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수동 안동시민연대 국장은 “임청각 복원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지 과거 김대중 정부의 동진정책처럼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반드시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