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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기업 떠난 자리 재벌기업이 급속 잠식

BYC·현대중·넥솔론 등 공장 철수하거나 가동 중단…지역 경제 생태계 붕괴 위기

정성환 기자 ㅣ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7(Fri) 13:01:02 | 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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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 입장에선 굉장히 아픈 부분입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향토기업의 ‘탈(脫) 전북’ 현상에 대한 전북도 ‘싱크탱크(Think Tank)’ 전북연구원 이강진 연구부장의 답이다. 이 짤막한 두 문장에 최근 전북 지역 경제의 현실이 모두 들어 있다. 전자는 전북 경제에 대한 현실 진단이고, 후자는 뾰족한 대책이 없음에 대한 자괴감의 표현인 것이다.

 

지난 38년간 전라북도 경제를 이끌었던 BYC 전주공장이 최근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전주 서신지구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고 있던 대한방직 전주공장도 최근 수도권 건설업체에 매각됐다. 동일 업종의 생산공장이, 그것도 불과 사흘 간격으로 철수하거나 매각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수십 년간 지역 경제를 지탱해 온 토착기업들이 자금과 경쟁력에서 뒤처지면서 안방을 내주고 있는 전북 경제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BYC그룹의 창업주는 한영대 회장이다. 그는 1946년 고향인 전주에 한흥메리야스 공장을 세우고 속옷 사업을 시작했다. 1955년 한흥산업으로 사명을 바꿨고, 2년 뒤 현재 BYC의 시초인 브랜드 백양을 출시했다. 1979년에는 전주시 팔복동에 지금의 봉제공장을 설립했다. 당시 한흥산업은 전북 기업인 쌍방울, 태창 등과 함께 ‘내의 토로이카’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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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내주고 ‘종이호랑이’ 전락한 토종기업

 

이런 BYC가 전주공장 폐쇄를 추진 중이다. 전주공장을 인도네시아 공장과 통합하기 위해서다. 전주공장 폐쇄는 이르면 내년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섬유업계의 과당 경쟁과 해외제품의 저가공세에 밀려 국내에서는 공장 운영이 어렵고 그나마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YC 전주공장 직원은 120여 명으로 한 해 6000만 벌의 내의를 생산하고 있다. 올 상반기 전주공장 가동률은 40% 선에 그쳤다.

 

앞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선박 수주난을 이유로 6월30일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여파는 컸다. 협력업체 60여 곳이 도산했고, 49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태양광 웨이퍼 생산업체인 익산의 넥솔론도 태양광업체 난립으로 경영난을 겪다 이달 초 가동을 중단했다. 400여 명의 직원들 역시 길거리로 나앉아야 했다. 현대조선소와 함께 군산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오던 한국GM은 수년째 철수설에 휘말리고 있다. GM은 2002년 대우차를 인수하며 15년간 경영권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매출 부진 등으로 올해 군산공장 폐쇄를 타진 중이다. 산업은행은 최근 ‘한국GM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를 통해 “한국GM이 조만간 국내시장 철수를 현실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밖에도 완주군 용진읍 하이트진로 전주공장이 현재 매각설에 휩싸였다. 대한방직 전주공장은 최근 수도권 건설업체와 부지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철수작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방직업체인 전방㈜과 완주에 위치한 ㈜TSPS, 창해에탄올(옛 전라주정) 등도 폐업했거나 가동중지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섬유나 의류 등 제조업체들도 여건만 된다면 언제든 고향을 등질 각오가 돼 있다. 이제는 향토기업이라고 내세울 만한 기업조차 없을 정도다. 그나마 전북은행과 ㈜하림 등 일부 향토은행과 기업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북은행과 ㈜하림이 지역서 고군분투

 

향토기업의 몰락은 1997년 쌍방울 부도를 시작으로 거성건설과 기아특수강, 서호건설 등 도내에서 내로라하는 중견업체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그해 말 IMF가 터지면서 더 가속화됐다. 도내 제과업을 석권했던 풍년제과가 외지 대형 제과유통업체들에 자리를 내주고 도산했다.

 

전북 도내 유통 서비스 시장도 외지 업체에 초토화됐다. 전북의 대표적 토종 서점인 전주시 경원동 민중서관 본점(경원점)이 경영난을 견뎌내지 못하고 2011년 2월말 문을 닫았다. 1970년 문을 연 이래 40년 넘게 전북도민의 사랑을 받아온 이 서점은 2006년 인근인 고사동에 교보문고 전주점이 도내 최대 규모로 들어서면서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도서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경영난이 가중됐다.

 

도내 유일의 향토백화점인 전주코아백화점은 최근 수도권 유통업체인 E사에 매각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북의 대표적 향토백화점으로 승승장구했던 이 백화점은 2004년 롯데백화점 전주점이 들어서면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오다 문을 닫은 것이다. 이후 재벌기업의 무차별 공습이 시작됐다. 2006년 홈에버, 2008년 삼성홈플러스와 롯데마트 전주점, 2009년 롯데마트 송천점이 각각 전주에 진출하는 등 대형 백화점과 할인점 50여 개가 도내 상권을 파고들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롯데슈퍼와 GS슈퍼, 킴스클럽 등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동네상권까지 점령했다. 서민들의 금융기관으로 불리는 전일상호신용금고와 고려저축은행은 2009년 말 외지 업체에 넘어가거나 영업정지로 사라져 외지 저축은행인 솔로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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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의 ‘생색내기식’ 외지 기업 유치가 원인

 

지역 경제계에서는 “급변하는 시대 변화와 시장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토종기업의 몰락 원인 중 하나다”고 진단했다. 요컨대 BYC의 경우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싸게 사서 짧게 소비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고급화 전략을 고집했다. 결국 중국과 유럽 제품에 추격을 허용했다. 도내 유통업체와 건설업체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국화, 규모화하는 수도권 대형 업체들의 두터운 벽을 넘어서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조선산업 불황 등 산업계 전반에 닥친 구조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편으로 지방정부의 생색내기식 외지 투자기업 유치경쟁 때문에 정작 토종기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온다. 외지 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지역에 기반을 둔 토종기업의 육성과 지원이 더욱 중요한데도 ‘서자(庶子)’ 취급하며 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산토끼 쫓다 집토끼는 잃는 정책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강진 전북연구원 부장은 “토종기업은 지역민의 직접적인 생계수단으로 삶의 질을 높여주는 파수꾼 역할을 해 왔다”면서 “향토기업이 사라지면 지역 경제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고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지역사회 수준도 내려가기 때문에 외지 기업 유치 못지않게 토종기업 육성을 위한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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