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림길 STX조선해양…RG 발급 지연에 전전긍긍
  • 이상욱 영남취재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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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동안 산업은행과 ‘줄다리기’…수주해놓고도 선박 건조 착수 못해

 

STX조선해양이 어렵게 수주를 따냈지만 산업은행으로부터 선수금 환급보증(RG)을 받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에만 16척을 수주해 경영정상화를 기대했던 이 회사는 2014년 상장폐지 이후 또 다시 사업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계약 기간에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이다. RG 발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주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STX조선해양의 텅빈 야드 © 이상욱 기자


STX조선 “11월 23~24일까지 7척 RG 발급 돼야”

 

지난 7월 회생절차를 종결한 STX조선해양은 그달과 9월 그리스 선주(船主)와 삼봉해운으로부터 연이어 탱크선(50K PC) 등 7척을 수주했지만 여태 넉 달 째 RG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이 회사와 자금관리계약을 맺은 산업은행이 저가수주 선박에 대해 본격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RG 발급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STX조선해양은 지난 7월 그리스 오션골드사(社)와 삼봉해운으로부터 탱크선 3척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지난 9월 그리스 판테온사로부터 5만톤급 탱크선 4척을 1억4000만달러에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STX조선해양은 선수금을 빨리 받기 위해 7척에 대한 RG 발급을 산업은행에 신청했지만 넉 달 가까이 심사가 진행되면서 선박 수주에 제동이 걸릴까 고심하고 있다. 특히 오션골드사 등과는 11월 23일까지, 판테온사에 대해 11월 24일까지 RG를 발급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에 RG가 발급되지 않으면 현재 2개 선사로부터 추진 중인 옵션 계약 분 탱크선 4척의 계약도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은 지난 7월부터 STX조선해양의 실사를 진행 중인데 결과를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독자생존이냐 합병이냐 등 구조조정 방안이 이 실사결과에 따라 확정된다. 산업은행은 실사결과를 확정하기 전에 STX조선해양에 RG를 내주는 것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STX조선해양의 정상화 가능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자구책 등 선결 조건 검토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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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조선해양은 2016년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부채 5조원을 출자전환했다. 이런 탓에 산업은행은 추가 부실을 우려해 신규 수주 타당성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 관계자는 “STX조선해양은 그간 수조원의 손실이 난 기업이다. 회사가 낸 자구책 등 선결 조건을 토대로 11월 23일까지 RG 발급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며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한 비용 감축과 생산성 향상, 부동산 처분 등 자금소요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STX조선해양은 1년 이상 장기간 수주 공백으로 조만간 일감 부족사태에 허덕였다. 지난 4월부터 수주를 재개했지만 내년 초에 야드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어려울 정도다. ​사정이 이러하자 지역사회는 어려운 여건에서 겨우 수주에 성공했는데도 산업은행이 리스크 축소를 이유로 RG 발급을 늦추는 행태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창원상공회의소는 11월 13일 STX조선해양이 최근 수주한 탱크선 7척과 현재 계약 진행 중인 4척에 대해 11월 23일까지 RG를 발급해 줄 것을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와 산업은행 등 은행권에 서면으로 건의했다. 

 

이 건의서에서 산업은행이 조선업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단지 수익성을 기준으로 RG 발급을 심사한다면 결국 RG 발급이 이뤄지지 않아 STX조선해양은 경영위기에 빠진다고 우려했다. STX조선해양이 또 다시 경영위기로 빠지면 대량 실업과 협력업체가 도산하는 등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이번에 RG가 발급되지 않으면 선박 계약 취소로 이어져 중국과 일본의 경쟁 업체에 글로벌 신규 선박 발주량의 60%인 중형선박시장을 빼앗길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지역사회, STX조선해양 생존 자체 불투명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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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와 시민사회도 대책위를 구성하고 STX조선해양 등 중형조선소를 살려내는 정부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연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지난 10월부터 ‘산업은행의 STX조선해양에 대한 RG 즉시 발급’과 ‘정부여당의 노동자생존권이 보장되는 중형조선소 회생방안’ 등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역 한 노동계 인사는 “정부가 단계별 정책으로 조선사의 구조 조정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계획이 안보여 큰 문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남도 또한 산업은행을 상대로 STX조선해양 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은 11월 14일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장을 만나 STX조선해양에 대한 RG 발급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한 권한대행은 RG가 발급되지 않을 경우 STX조선해양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질 뿐만 아니라 국내 중형조선소들의 존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감을 표시했다. 

 

지역사회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수주가격 적정성 평가제도’를 도입해 조선사 RG 발급 기준을 보다 강화한 탓에 이번 STX조선해양의 RG 발급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온다. RG 발급에 대한 위험 부담을 은행권이 결손으로 다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STX조선해양은 지난 4월에도 탱크선 4척을 수주하고도 산업은행의 까다로운 RG 발급 심사로 두 달 가까이 마음을 졸였다. 당시 산업은행은 이례적으로 STX조선해양의 예금을 담보로 잡고 4척 중 3척에 대해 RG를 발급했다. 

 

가동 중단된 STX조선해양의 선행공정 작업장 © 이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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