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 세계 식물학도의 ‘성지순례’ 코스 영국 큐식물원을 가다
  • 미국 펜실베이니아·런던 에든버러=김형운 탐사보도전문기자 (sisa211@sisajournal.com)
  • 승인 2017.10.31 18:33
  • 호수 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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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겨레 자생식물(3)] 1759년 개원 이래 광범위한 식물 자료 수집, 2003년 영국의 25번째 세계문화유산 등재되기도
[편집자 주]
우리 금수강산에서 조상과 숨결을 같이해 온 겨레 자생식물이 최근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이미 다가온 종자 및 식물유전자 전쟁에 대비해 겨레 자생식물을 보전하고, 농산물 개방과 물질특허 등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필자는 지난 20여 년간 취재하고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자생식물 보호 및 육성의 당위성,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외국의 밀반출 실태, 외국의 자생식물 보호 사례 등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제대로 보전하고 키워나가는 대안과 방향 제시의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국립식물원이 전무한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대부분의 나라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식물원이 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국립·왕립 식물원과 대학식물원, 자치단체별 식물원이 미래 종자 전쟁을 위한 식물자원의 보고(寶庫)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 식물원은 식물의 보전과 육성이라는 고유의 기능 외에 교육과 연구, 공공서비스,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지구촌의 식물자원을 결집한 생태공원과 즐기면서 배우는 자연학습장, 희귀식물이 살아 있는 연구 및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시민과 자연의 공유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4회에 걸쳐 미국과 유럽 현지의 식물원을 답사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케닛스퀘어 자치구에 있는 롱우드식물원이다. 미국이 몰래 가져간 우리 식물들이 어떻게 보전되고, 활용되는지가 우선 궁금했다. 현장에 가 보니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식물을 가져가 전 세계에 대박을 터뜨린 구상나무와 미스킴 라일락, 미선나무, 홍도(잉거) 비비추가 한눈에 들어왔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관심도 없는 식물을 가져다 ‘신데렐라’로 만든 미국 식물학자들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영국 런던 남서부의 교외에 위치한 큐식물원 온실 © 시사저널 김형운




자국은 물론 타국 식물도 유전자원화 열중

1906년에 세워진 롱우드식물원은 실외 정원 20개와 실내 정원 20개, 숲, 목초지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1만1000여 종의 식물이 있다. 온실에만 5500여 식물종이 자란다. 미국에서 분수대가 가장 많은 식물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며 연간 400여 개가 넘는 공연을 주최하고 있다. 1906년, 퍼스 가족이 가꾸던 유명 식목원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세계적인 제약회사 대표인 피어 듀폰(Pierre Samuel du Pont·1870~1954)이 사들여 식물원으로 바꿨다.

롱우드식물원을 안내한 원예사 제이미 클락은 “식물원의 기능은 무척 다양한데, 생물 다양성 확보와 연구 및 식물 육성이 기본적인 역할”이라며 “선진국의 식물원은 살아 있는 연구실과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코스는 영국. 1670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왕립식물원 에든버러식물원을 찾았다. 에든버러식물원은 9만 평 규모로, 식물원이 잘 가꿔진 데다, 식물 다양성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연간 입장객이 80만 명에 달하는데, 무료로 입장시켜 식물원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고 있었다. 

350년 역사를 지닌 에든버러식물원은 식물학이나 식물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꼭 가 보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다. 규모가 세계 최대인 데다, 연구 및 유지관리를 위한 인력도 세계 제일이다. 한국의 원추리와 나리 등 전 세계 희귀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의 보전과 육종을 위해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비치해 놓은 자료 또한 방대하다. 신청 즉시 인편이나 우편 등으로 자료를 전달하는 등 연구기능이나 고객 서비스 또한 수준급이어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어 영국 런던 남서부의 교외에 자리 잡고 있는 큐식물원을 찾았다. 1759년 개원한 이곳은 식물학도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수 세기에 걸쳐 수집한 식물과 광범위한 관련 자료들을 보유해 식물 다양성과 실용식물학 연구에 공헌해 온 곳이다.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7차 세계유산위원회(WBC)에서 영국의 25번째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됐다. 등재 유산의 면적은 132ha, 완충지역(buffer zone) 면적은 350ha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케닛스퀘어 자치구에 위치한 롱우드식물원. 실내의 정원만 40개를 보유한 탓에 연구나 식물 육성 등 기본 역할 외에 지역민들의 문화행사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 시사저널 김형운



이곳은 원래 캐플가(Capel family)의 소유로, 16세기 중반에 이미 훌륭한 정원이 조성돼 있었다. 1731년 웨일스 공 프레더릭(Frederick, Prince of Wales)이 이곳을 양도받았다. 1751년 프레더릭이 사망한 뒤 1750년대 말과 1760년대에 걸쳐 그의 미망인이자 조지 3세의 어머니인 아우구스타 공주가 뷰트 경과 윌리엄 체임버스의 도움을 받아 정원을 확장했다. 이 식물원의 공식 설립연도가 1759년인 것도 이 때문이다. 1761년에는 오렌지 온실(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사용)이 지어졌다. 1773년 조지프 뱅크스가 식물원의 체계를 세워 나감으로써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802년에는 이웃한 또 다른 왕립식물원 리치먼드정원과 경계를 이루는 담장을 허물어 통합됐다.

식물원 안에는 한국 식물을 포함해 35만 분류군, 700만 점이 넘는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 식물표본실과 고산식물온실, 진달래온실, 수련온실, 암석정원, 철쭉정원, 겨울정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75만 권 이상의 장서와 17만5000개 이상의 식물 그림 및 판화를 소장한 도서관, 18m 높이에서 식물원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치한 약 200m 길이의 리조트론 엑스트라다 트리톱 워크웨이 등이 있다. 주변의 완충지역에는 왕실 재산인 올드디어파크나 템스강 건너편의 숀파크 등이 위치해 있다.

이 식물원은 18세기 이래 세계 식물학 분야에 확립된 과학적·경제적 교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러 과학 분야, 그중에서도 특히 식물학과 생태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경·건축 면에서도 유럽 대륙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더 먼 지역의 예술적인 영향을 받았다. 린네(Linné) 이후부터 기재된 전 세계 모든 고등식물 종들을 수록한 큐 식물목록을 5년마다 발간하고 있다. 2000년부터는 멸종 위기 식물종을 보호하기 위한 ‘밀레니엄 종자은행’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영국 환경식품농촌부(DEFRA)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일본은 국립 및 대학, 개인 식물원이 수백 개에 달하고 있다. 도쿄의 진다이식물원과 도쿄대 부속식물원인 나리타식물원, 세계 유일의 어린이 식 물원인 요코하마어린이식물원 등이 꼽힌다. 일본 식물원은 유전자원 육성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이미 생활화된 식물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 역시 국립 및 대학, 지역별 식물원이 21개나 있으며 식물의 다양성을 구비하고 있는 베이징식물원은 식물의 보전과 육성의 전진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탐사에 함께 나선 이택주 한택식물원장은 “선진 외국의 경우 자국의 식물 보호에 이어 식물 다양성을 키우기 위해 식물 유전자원 전쟁에 이미 들어간 상황”이라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자생식물의 유출을 막기 위한 연구와 육종에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리 자생식물은 일제 강점기부터 알게 모르게 외국으로 유출되며 귀중한 유전자원의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 등 선진 구미국가와 일본이 자생식물의 가치와 효용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채집과 육종에 이은 상품화를 통해 유전자원의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우리 자생식물을 반출하기 위한 탐사반을 편성해 일제 강점기부터 최근까지 각각 우리나라 전역을 돌며 채취에 열을 올렸다.

우리가 경제성장과 식량증산에만 몰두하며 자생식물의 가치와 활용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사이에 미국과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지로 우리의 귀중한 자생식물들이 반출돼 새롭게 육종돼서 역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미선나무와 함께 지구상에 1속1종인 구상나무는 1917년 미국으로 반출됐다. 이후 구상나무는 신품종으로 개량돼 세계적인 정원수와 크리스마스 트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자생하는 원추리 역시 미국과 유럽 등지로 수십 종이 유출된 후 새로운 품종으로 역수입되고 있다.

멸종 위기 식물인 구상나무, 미스킴 라일락, 홍도 비비추, 미선나무(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 시사저널 김형운​




라일락의 원종 알고 보니 한국산 털개회나무

특히 우리나라의 정원수 중 인기를 끌고있는 털개회나무가 라일락의 원종으로,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개량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봄철 라일락이 피면 온 동네에 향기가 퍼진다. 이 라일락은 우리나라의 털개회나무를 미국에서 개량한 후, ‘미스킴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우리나라에 역수출하고 있다. 우리 능소화를 미국에서 개량한 모닝캄과 비비추 등 200여 종의 자생수목과 자생화들 역시 미국 등으로 반출된 후 현지에서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산딸나무와 때죽나무를 비롯한 수십 종의 우리나라 자생수목들이 유출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1급 정원수로 속속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같은 우리의 귀중한 자원인 자생식물 유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자생식물의 보호와 육성에 이은 유전자원의 활용이 초보적인 단계여서 식물학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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