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1만 명 시대, 해마다 증가하는 성범죄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5 11:17
  • 호수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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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 여성 대상으로 한 범죄 4년간 3배 늘어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지난 5월, 여성 해군 A대위가 자신의 원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빈손으로 이렇게 가나보다, 내일이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등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 조사 결과 직속상관인 B대령이 A대위에게 성폭행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2월 A대위와 B대령은 진해로 함께 출장을 갔고, 이때 성폭행이 가해졌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B대령은 A대위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 주겠다’며 추가로 성폭행을 이어갔다. A대위는 원룸에서 목숨을 끊기 전 본인의 차량에서 이미 한 차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군 당국은 5월25일 B대령을 긴급체포해 구속 수사를 벌였다. 해군본부 군사법원은 10월16일 A대위를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치상, 군인 등 준강간, 군인 등 강제추행 등)를 인정해 B대령에게 징역 17년과 신상공개 10년을 선고했다.

 

9월6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7주년 여군 창설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군 내 성범죄, 전체 범죄의 절반 육박

 

현재 국군에서 여군의 수는 1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군대 내에서 여군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대 내 여군과 여성 공무원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건수는 최근 4년간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48건에서 2014년 83건, 2015년 106건, 2016년에는 127건으로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범죄의 절반 이상이 강간·강제추행·화장실 몰래 카메라 설치 등 성범죄라는 것이다. 2013년의 경우 성범죄가 32건으로 전체의 66.6%를 차지했고, 2014년 50건 60.2%, 2015년 51건 48.1%, 2016년 73건 57.4%를 기록했다.

 

성범죄뿐만 아니라 명예훼손·모욕에 해당하는 항명행위가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다. 명예훼손·모욕 역시 2013년 6건에 불과하던 것이 4년 사이 30건으로 5배 증가했다. 서 의원은 “성범죄뿐만 아니라 명예훼손 및 모욕에 해당하는 항명행위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군 내 기강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일벌백계 및 재발방지 대책을 철저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군대 내 성범죄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중로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군인인 군형법상 강간·추행 혐의 입건 수는 4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3년 103건에 그쳤던 것이 2014년 256건, 2015년 203건, 2016년에는 304건으로 치솟았다. 올해 상반기에도 197건이 입건됐다. 그러나 재판까지 넘어가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2016년 입건된 304명 중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202명(66.4%)에 그쳤다. 백군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5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여성군인에게 발생한 범죄 191건 중 124건(64.9%)이 성범죄였지만, 이 중 8건만이 실형을 받았다. 반면 사실상 죄를 묻지 않는 기소유예, 선고유예, 공소권 없음(기각), 무혐의 처분은 57건에 달했다. 영관급 이상 피의자 20명 중 단 3명만이 실형을 받았고, 이 중 벌금형 2명을 제외한 14명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영원히 저주할 겁니다. 이렇게 몰고 간 당신을 이렇게 만든 당신을. 그 하늘에 계신 분이 지켜주는지는 모르지만…. 제 이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 누구라도.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병사들, 우리 처부 간부들 타 처부 간부들 예하부대까지 짓밟힌 제 명예로서 저는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쉬이 넘어가지 않고 수명하지 않으려 내뺀 적 없고, 고민 안 한 적 없습니다. 2009년 임관부터 지금까지 제 임무를 가벼이 대한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

고(故) 오아무개 대위는 직속상관인 노아무개 소령의 지속적인 성관계 요구와 성추행,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2013년 10월16일 부대 근처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오 대위의 유서는 여군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심 재판을 맡은 보통군사법원은 노 소령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2014년 3월 배재정 당시 민주당 의원(왼쪽), 김상희 의원(왼쪽 두 번째)이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살한 여군 장교의 추모제에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정의가 있다면 내 명예를 지켜달라”

 

오 대위는 여군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대부분의 여군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12년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대다수의 여군이 군인이 된 것이 자랑스럽고 군 생활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면서 “그러나 차별 피해 경험이 있다고 보고한 여군들의 조직 만족도는 그렇지 않은 여군에 비해 유의하게 낮았고, 이직 의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전체 응답자의 43%가 개인적 차별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언어폭력과 인격모독은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 대위는 유서에서 “여군, 여군, 여군, 여군! 그놈의 여군 비하발언 듣기 싫고 거북했습니다”면서 “왜 전군의 여군을 싸잡아서 그러십니까”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노 소령은 병사들과 다른 간부들이 보는 앞에서 오 대위를 주먹으로 때리고 일상적으로 모욕했다. “정신지체장애인” “여자 소” “병고에 해가 될 뿐” “죽일 년, 무능·총기 잃은 년”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다.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처벌과 함께 여군을 군인이 아닌 여성으로 생각하는 그릇된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은 A대위가 자살한 후 ‘해군 대령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진상조사 및 대책 마련 촉구 공개 요구서’를 발표하며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은 군대 내 강력한 위계적·권위적 조직문화와 젠더화된 위계질서”라고 지적했다.

 

노 소령은 오 대위에게 “나랑 잘래?” “나랑 자야 알겠느냐”는 말을 했을 뿐 아니라 ‘I♡YOU’ 이모티콘을 보내고 “항상 참모가 사랑한다”는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회식 때 다리 사이에 손을 넣고 참모실로 불러서 성적인 얘기를 하며 몸을 비벼대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성추행은 여군 특정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2012년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860명 중 11.9%가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주변의 여군이 성희롱 피해를 겪는 것을 인지한 것은 41.3%에 달했다.

 

 

성희롱 당해도 대다수가 문제제기 못해

 

그러나 대다수의 여군들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및 성군기 위반 행위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이후에도 문제제기를 않았다’는 응답이 38.2%로 가장 많았다. 또한 인권위의 ‘2014년 군인 권리보호 및 구제체계에 대한 인권상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여군들의 15.4%가 ‘군대란 원래 그런 곳이다’라며 체념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설문조사에 기록되지 않은 실제 피해자들이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2014년 조사에서 성희롱과 관련한 질문에 무응답 비율은 50%에서 많게는 80%에 이르고 있다. 전기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고용센터장은 ‘군 조직의 양성평등 지표개발 및 측정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나로 인해’ 여군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참고 견디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성희롱 등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여성고충상담관이나 인권상담관에게 알렸다’는 응답은 5.2%에 그쳤다. 상담관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로는 ‘나의 고충문제에 대한 비밀보장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응답이 31.3%, ‘상담관이 군 지휘계통의 영향권 아래에 있어서 나의 고충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응답이 35.2%를 차지했다. 성희롱 등 인권침해 사건이 군 내에서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범죄에 대해 제도적 해결책을 찾기보다 개인의 일로 치부하는 군 내부 문화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군들은 성희롱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군대의 지휘, 통솔, 교육에 문제가 있다’(29.2%)고 답했다. 군 인권센터는 2015년 초 “1군 사령관인 장아무개 대장이 여군 성폭행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는 회의 자리에서 ‘여군들도 싫으면 명확하게 의사표시를 하지 왜 안 하냐’며 여군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했다”며 “이는 성폭력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인식이다. 군 당국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여군들을 비난하는 일을 당장 멈춰야 한다. 여군은 전력의 중요한 부분이다. 여군에 대한 의식 전환 없이 강군을 만들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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