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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 성범죄, 끊어지지 않는 ‘권력형 성범죄’의 고리

피해자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로 성폭행 피해 신고해야 했다”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8(Wed)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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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국립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김아무개씨는 지도교수를 자처했던 L 교수와 ‘그 일’이 일어난 직후, 음악과 모든 인연을 끊었다. 클래식 작곡가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 한 길만 달려왔던 그였다. 장래를 촉망받던 음대 학생이었던 그에게 일어난 ‘그 일’. 지도교수의 성폭행이었다. 

 

김씨가 다니던 대학의 초빙교수였던 L교수는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으며 클래식계에서 촉망받는 유명인사다. 김씨와 L교수는 한 공연 뒷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L교수와의 만남이 잦아졌다. L교수는 학교와 관계없는 술자리에도 김씨를 데리고 다녔고, 김씨 표현에 따르면 ‘마치  개인 비서처럼’ 부렸다. 

 

사건이 발생한 건 어느 날 밤이었다. L교수가 김씨에게 전화해 연구실에 두고 온 중요한 서류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 오라했다. 김씨는 “그때까지 아무 의심이 없었다”며 “그저 빨리 서류를 갖다주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L교수는 김씨에게 집으로 들어오라 한 뒤 미리 준비해둔 와인과 음식을 권했다. 그리고 그날, 김씨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불행을 당했다. 김씨는 “L교수가 뒤에서 강제로 끌어안고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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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현재 음악계와의 인연을 모두 끊고 전혀 다른 업종으로 전향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날의 사건 이후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걸린 그는 ‘잠수’를 탔다. 누군가에게 얘기도, 신고도 하지 못했다. 김씨는 “이유야 어떻든 간에 제 발로 찾아간 L교수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며 “CCTV에 찍힌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땐 용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어렸다. 성폭행을 당한 뒤엔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부끄러움, 수치심이 모든 감정을 압도했다. 부모는 물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다시는, 누구에게도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국내에서 처음 제기된 성희롱 소송인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대학교수의 성추행 및 성범죄 사건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4월엔 서울대 공과대 A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달엔 인천 지역의 한 대학교 교수가 여성 조교를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해엔 자신이 지도했던 여성 대학원생을 수개월간 성추행한 이모 전 고려대 교수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앞선 2014년엔 여학생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강모 서울대 교수가 구속됐다. 

 

국립대 교수들의 성범죄 실태는 숫자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국립대 교수 법률위반 적발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국립대 교수는 3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5명, 2015년 11명, 2016년 11명, 올해만 8명이다.  성범죄 징계 교수가 가장 많았던 국립대는 서울대로 4명의 교수가 성범죄로 인해 징계를 받았다. 그 뒤로 전남대와 경상대에서 각각 3명의 교수가 성범죄로 징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 대구교대 등 교육대 교수도 5명이 있었다.

 

 

꾸준히 증가하는 권력형 성범죄

 

대학교수의 제자 성추행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대표적 ‘권력형 성범죄’다. 한국 사회에 권력형 성범죄, 특히 대학 내 성범죄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그 건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 통계(2015년 기준)에 따르면 이같은 권력형 성폭력이 2000년 140건에서 2014년 283건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 수를 감안하면 실제 피해사례는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 내 권력형 대학교수-제자 성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 인권센터 관계자는 그 원인으로 지도교수가 지도학생의 진로에 거의 절대적인 수준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지목한다. 졸업 학점이 걸린 학부생도 그렇지만, 교수의 말 한마디에 학위가 걸린 석․박사과정생의 경우, 교수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더라도 진로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까 신고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 지도교수-조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조교는 교수에게 학습지도권을 오롯이 맡긴 동시에 경제적으로 종속돼있다. 

 

계속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권력형 성범죄의 수가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3년 전 지도교수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하다 결국 학위를 포기했다는 송아무개씨는 “신고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신고 후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며 “미치는 줄 알았다. 안 해서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문제 교수에 대한 학교측의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도 한 몫 한다. 최근 들어 대학내 성범죄 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며 강력한 사법 조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학측 대응은 여전히 안이한 수준이다. 학내에서 발생하는 학생에 대한 부당한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제도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신고가 들어와도 학교의 명예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피해자 합의를 통해 조용히 넘어가려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수업 중 학생들을 성추행한 교수에게 강의를 그대로 맡기는 사례도 있었다. 

 

김병욱 의원실에 따르면 성범죄 교수 중 파면이나 해임으로 교수직을 상실한 교수는 11명으로, 전체 성범죄 교수의 31.4%에 불과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교수 가운데 68.6%가 그대로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김병욱 의원은 “모범이 돼야 할 대학교수들의 범법행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의 경우 더욱 엄중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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