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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아이 캔 스피크

페미니즘은 공감이다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7(Tue) 14:30:00 | 14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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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왔다. 이 영화는 미덕이 많은 영화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위안부를 바라보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가 하나로 겹치는 대목이 가장 큰 미덕이다.

 

199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한 이래 사반세기가 흘렀지만 우리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충분히 성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가운데도 ‘위안부’ 문제를 불러내는 영화가 거듭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진일보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 영화가 위안부 서사를 취급하는 방식은 강력한 피해자 서사였다. 폭력적인 강간 장면, 잔혹한 전쟁 상황과 끌려가는 소녀들이라는 전형적 장면들이 반복됐다. 주인공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 시절의 악몽에 사로잡힌 존재로 묘사되기 일쑤다. 관객은 복수와 해원의 의무를 지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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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물’에 머무른 여성

 

이런 방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민족감정을 격발시켜 일본의 전쟁책임을 환기하고, 위안부 문제에 사회가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당위를 일깨운다. 그러나, 그 당위는 ‘민족의 딸, 우리의 소녀들이 외세에 능욕당했다’는 생각에 머무르기 일쑤고, 피해자들 개인의 독자성을 뭉갠다. 위안부 문제의 중요한 본질인 성폭력은 민족 대 민족의 착취라는 ‘보다 거대한’ 문제에 가려지고 여성은 민족의 소유물 신세를 못 벗어난다. 강간행위 중심의 피해서사가 야기하는 문제 또한 매우 크다. 위안부들이 겪은 폭력을 ‘성행위’로 바라보는 무지가 아직 우리 사회에 횡행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 무지는 빠른 속도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화냥년’ 서사로 편입시킨다. 민족적 분노를 약화시키려는 세력들이 위안부 문제를 ‘제 발로 돈 받고 간 성매매 여성’ 서사로 밀고 갈 때, ‘순결한 딸’ 서사는 얼마나 무력한가. 물컵에 떨어진 한 방울 잉크처럼 쉽게 오염된다. 최근 파면조치가 내려진 순천대학교 모 교수의 발언은 그 작은 예에 불과하다. 성폭력에 대한 무지야말로, 위안부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방해요소다.

 

《아이 캔 스피크》가 보여주는 남다른 미덕은 옥분 할머니의 과거를 알고 오열하는 진주댁이 등장하는 점이다. ‘민족적’ 상처가 아니라 한 여성의 몸과 마음이 입은 상처를, “얼마나 아팠을까”라며 함께 우는 공감의 능력이 등장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발전이다. 또한 《아이 캔 스피크》는 주인공 옥분 할머니를 위안부라는 기억의 표지로 소환하지 않는다. ‘험한 꼴’을 당하고 가족에게도 외면당한 여자사람이 등장하지만, 그 여자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살고 있다. 그 여자사람이 집단의 종속물이 아닌 한 개인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앞에 섰을 때, 그로써 스스로를 바라볼 때 말이 등장한다. 주인공 옥분은 남동생이 보고 싶고 친구를 대신하고 싶어서 영어를 배우고, 이 동기는 사소하다. 그러나 강력하다. 아이 캔 스피크, 이 외침이 모든 페미니즘 발화의 시작점인 이유다.

 

‘성 평등 교육’으로 비난받은 초등학교 ‘페미니즘 교사 동호회’가 결국 해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0월10일 현재 《아이 캔 스피크》가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샷 더 마우스’ 하라는 소식을 들은 날의 ‘아이 캔 스피크’.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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