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Wee)프로젝트 10년, 갈 길 먼 학생 상담
  • 박강수·정준기(성균관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9 17:27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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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언론상-장려상] 부족한 인력, 열악한 처우에 이중고…“관련법 제정 절실”

 

 

편집자주​

 

많은 청춘들이 언론인의 길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나돌 정도로 저널리즘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험난한 길을 택한 이유는 바로 ‘세상에 짱돌 하나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일 것이다. 시사저널은 9월15일 제6회 대학언론상을 시상식을 가졌다. 3단계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작에 선정된 작품들은 모두 취재력과 문장 구성, 기획력 등에서 기성 언론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6회에 걸쳐 수상작을 소개한다. 

 

위(Wee)프로젝트는 2008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해 올해로 10년째 시행 중인 교육부의 학생 상담 정책이다. 단위 학교에 설치된 위클래스는 상담으로 부적응 학생을 조기 발견해 학교폭력과 왕따 등을 예방한다. 각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위센터는 일선 학교의 위클래스에서 의뢰받은 학생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광역시·도에 설치된 위스쿨은 장기 치유가 필요한 학생을 위한 위탁교육서비스다.

 

위프로젝트가 시행 초기 내세운 원대한 목표와 달리, 현실은 누추하다. 상담사는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처우 등에 짓눌려 있다. 학생들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나 상담 내용 유출로 상처를 받기 일쑤다. 위프로젝트가 시행 초 내건 목표를 현실화하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학생과 상담사들의 증언, 교육 당국의 정책, 전문가의 조언 등을 토대로 짚어봤다.

 

학생 상담을 위한 위클래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인력 충원이나 처우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순회 상담을 하는 학교도 많다. © 사진=박강수·정준기 제공

 

상담사 1인당 학생 수 992명

 

상담사인 정은씨(가명·37)가 출근하자마자 울상이 된 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첫 학생을 달래서 보낸 뒤에도 위클래스 상담실에는 7명의 학생이 줄줄이 들어왔다. 공문이 쌓여 있었지만 상담을 미룰 수 없었다. 내일은 다른 학교 위클래스로 순회 상담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상담실을 찾은 학생이 비밀로 해 달라면서 자해 경험을 고백했다. 작년에 비슷한 학생이 있었다. 일단 학교에 보고했는데, 상담 내용을 알게 된 부모가 노발대발해 더는 상담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학교나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으면 책임은 오롯이 상담사의 몫이 된다. 머리가 복잡하다. 책상에는 전문상담사 2급 자격증이 있다. 상담 역량을 기르고자 작년에만 연수비로 100만원을 썼다. 이번 달 월급은 178만원. 그래도 학생들을 떠올리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출근한다. 아홉 번째 학생이 막 찾아왔다. 몸이 녹초가 돼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돌려보냈다. 두 학교, 1400명을 챙기려니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정은씨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아이들한테 너무나 미안하다.

 

“전교생이 900명인 고등학교에 주 3일, 750명인 초등학교에 주 2일 출근해요. 1학기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총괄하고 2학기엔 ‘관심군’ 학생만 관리하기도 벅차서…. 상담할 시간은 늘 모자라요.”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위클래스 전문상담사 K씨의 말이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기준 전국 위클래스와 위센터에 근무하는 전문상담인력은 각각 4772명과 1012명으로 총 5784명이다. 상담사 1명당 학생 수는 992명에 달한다. 2009년 기준 학생 457명당 학교상담사 1명을 배치한 미국, 3학급 이상 모든 공립 중학교에 상담사 1명을 배치한 일본에 비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인력이 부족한 탓에 경기도와 충청남도에서는 위클래스 전문상담사가 맡은 학교 외에 추가로 학교 한 곳에 순회 상담을 나간다.

 

위센터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센터당 근무하는 전문상담인력은 평균 4.77명꼴이다. 다섯 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교육지원청 산하 수많은 학교를 전부 담당한다. 위센터가 목표로 하는 ‘고(高)위기군 학생에 대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전라북도 소재의 한 위센터가 맡은 초등학교는 60개교에 이른다. 센터 근무 인원은 5명. 1명당 하루에 여덟 번씩 상담을 해도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전문상담인력이 없는 위클래스는 ‘땜빵’으로 운영된다. ‘땜빵’ 방식은 지역별로 각양각색이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8곳은 외부 봉사자와 시간강사를 통해 전문상담인력 공백을 메운다. 5곳은 학교의 일반 교과 교사를 상담에 동원한다. 상담 전문성을 두고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전문’ 상담사라면서 월급은 176만원

 

인력 부족과 전문성 논란은 예정된 일이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명확한 채용 지침과 체계적인 관리 방식이 확립되지 못한 탓이다. 애초 전문상담교사를 중심으로 위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교육부는 예산과 법제 문제를 이유로 교사 정원을 늘려 전문상담인력을 충원하는 정공법 대신 비정규직 전문상담사를 채용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그러던 중 2013년 정부 차원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인력에 대한 신분 전환을 촉구하자, 교육부는 무기계약직 전환과 함께 재계약 요건을 강화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격 미달을 이유로 대량 해직 사태가 벌어졌지만, 대부분 시·도 교육청은 기존 전문상담사 가운데 기준 미달 인원을 상대로 자격을 갖추는 데 필요한 1~3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전문상담사 집단의 자격 수준은 전보다 높아졌으나, 높아진 전문성에 걸맞은 처우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른바 ‘중규직’(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형태라는 뜻)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점을 빼면 이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에 따르면, 현재 각종 수당을 제외한 전문상담사 평균 월지급액은 위클래스가 176만원, 위센터가 186만원 선이다. 법정 최저임금 수준을 간신히 넘는 정도로 ‘전문적 상담 역량’을 요구하기엔 턱없이 낮다.

 

시·도 교육청은 점차 전문상담사 채용을 줄이고 전문상담교사 위주로 인력을 충원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연도별 전문상담교사 증가율은 위클래스 증가율에 한참 못 미친다. 실제로 전북교육청은 2013년 위클래스 전문상담사 전원에게 계약 중단을 통보한 이후 ‘상담 인력 미배치 위클래스 비율’이 전국 최고치(68%)를 기록했다. 그 빈자리는 교과 교사와 위센터 순회상담으로 채우고 있다. 전문상담교사만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상담사가 전체 인력의 약 60%를 차지하는 만큼 연수 및 교육을 통한 지속적인 역량 관리와 그에 걸맞은 처우 개선이 절실한 실정이다.

 

위프로젝트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관련 법령 제정이 필요하다고 정책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교내 ‘4대 비교과 영역’이라 불리는 네 분과(사서, 영양, 보건, 상담) 가운데 관련법이 없는 영역은 상담이 유일하다. 학교상담법은 물론, 상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도 없다. 법규가 없으니 체계적 지원과 관리는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과 다를 게 없다.

 

© 시사저널 미술팀

 

4대 비교과 영역 중 상담 영역만 관련법 없어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을 사온 ‘비밀 유지’ 문제 역시 학교상담법이 없는 탓이 크다. 학교폭력예방법 제20조는 학교폭력을 인지한 자의 즉각적인 신고 조치를 의무 조항으로 규정한다. 반면 상담 내용의 비밀 유지와 관련해 그 조건을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상담사가 보호받지 못하니 상담 내용에서 드러난 조그마한 징후도 학교나 학부모에게 보고되기 십상이다. 이는 곧 학생들의 학교 상담에 대한 실망과 불신으로 이어진다.

 

전국대학상담학과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인규 전주대 교수는 “학교상담법에는 전문상담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 채용 및 자격 기준, 정책을 지원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역할에 대한 규정, 상담 업무와 상담 윤리에 대한 지침 등의 내용이 들어가야 할 것”이라며 “윤리에 관한 지침은 포괄적인 사례 연구 등을 바탕으로 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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