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족속’의 주변인 윤동주
  •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9 17:11
  • 호수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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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스러운 시대’에 필요한 윤동주 詩 세계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경제적으로 억압받는 계층을 프롤레타리아라고 했고, 조르조 아감벤은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생명”을 호모사케르(Homosacre)라고 했고, 가야트리 스피박은 스스로의 상처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을 서벌턴(Subaltern)이라 했다. 이런 용어들은 연구자 자신의 시각에서 보이는 인간군상에 대한 정의일 뿐이다.

 

주변인(周邊人·The Marginal)이란 용어는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신체적이거나 지역적이거나 정신적인 모든 문제를 포괄해, 한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해 공동체의 중심에 있지 않고 테두리에 있어 소속감이 아니라 소외돼 살아가는 인물들을 말한다.

 

윤동주가 사랑하는 대상은 대단히 넓다. 그가 말한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는 다짐은 너무도 넓은 대상을 포괄하고 있다. 그 시대에 죽어가는 것은 너무도 많았다. 윤동주는 죽어가는 한글을 사랑했다. 그는 여성 노동자(《해바라기 얼굴》)와 복선철도 노동자(《종시》)라는 주변인뿐만 아니라, 하늘과 바람과 별 같은 생태계도 사랑한다. 이렇듯 주변인에 대한 그의 관심은 《슬픈 족속》에서도 볼 수 있다.

 

힌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힌 고무신이 거츤발에 걸리우다

힌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힌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윤동주, 《슬픈 족속》(1938년 9월)

이 시는 당시 남성(1연)과 여성(2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1학년 때 이 시를 지었다. 이제까지 주로 오줌싸개 아이들(《오줌싸개 지도》), 주머니에 넣을 것이 없는 사람들(《호주머니》) 등 개별적인 이웃의 모습을 그렸던 윤동주는 ‘족속(族屬)’이라는 민족공동체를 시 언어로 끌어들인다. 그 규모는 그 시대의 조선인 전체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윤동주는 조선인을 상징하는 흰색을 동질성으로 포착해, 흰 수건, 흰 고무신, 흰 저고리, 흰 띠를 통해 슬픈 조선인을 호명한다.

아낙네가 구르마를 끌고 가면 뒤에서 밀어주고, 일하다가 지쳐 있는 농부 아저씨와 자주 대화했던 그였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해바라기 얼굴》 《슬픈 족속》에서도 이미 그는 슬픔 곁에 있다.

 

윤동주의 시는 자기성찰 및 모든 이와 함께 슬퍼하려는 연대를 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팔복》)는 구절은 이미 온갖 슬픔을 명랑하게 노래해 온 그에게는 자연스럽다. 《팔복》과 같은 시기에 발표된 《병원》을 보면 윤동주가 주변인의 슬픔을 함께하며 ‘영원히 슬플 것’이라는 태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 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윤동주, 《병원》(1940년 12월) 2, 3연

이 시에서 ‘병원’은 그가 찾아갔던 공간일 수도 있으나 식민지 조선으로 읽힌다. 식민지의 젊은 청년은 자신의 병을 모른다. ‘성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식민지 통치에 대해 분노하거나 저항해선 안 되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강요된 침묵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탄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시대의 극복 방식을 윤동주는 넌지시 밝힌다.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사라지는 모습은 절망과 질병의 상황에서 작은 회복을 암시하는 희망으로 읽힌다. 이어서 시적 화자는 여자와 자신의 건강이 속히 회복되길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고통받는 주변인과 병을 모르는 또 다른 주변인이 회복하는 방식은 다른 곳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이 주변인 ‘곁으로’ 다가가는 실천에 있음을 암시하면서 시는 마무리된다. 작은 행동이지만 ‘곁으로’ 가는 실천은 ‘고통의 연대’를 통한 희망을 보여준다.

 

《팔복》 《병원》 《위로》(1940.12)를 쓰고 5개월 후에 쓴 《십자가》(1941.5)에서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 슬픔과 함께 살아왔던 예수는 괴로웠지만 행복했다. 이어서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내놓겠다고 한다. 모가지를 내놓는 태도야말로 ‘영원히 슬퍼하’겠다는 다짐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1941년 11월)

《서시》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며 함께 슬퍼하는 행복을 택한다. 그는 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쓰고, ‘그리고’라고 썼다. 산문이든 시든 접속사는 되도록 안 쓰는 게 좋다. 다만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만 써야 한다. 《서시》에서 ‘그리고’는 단순한 접속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그다음에’라는 뜻이다. 순서로 보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자기성찰을 한 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그 후에, 마지막으로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자기성찰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이후에 ‘그리고’ 나서 나한테 주어진 길, 가고 싶은 길을 가겠단다. 내게 주어진 길을 가기 전에 먼저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못 말릴 다짐이다. 함께 통곡하면 위로가 되고, 연대가 생기며, 힘이 솟는다. ‘영원히’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는 삶이 행복하다며 그는 축하보다 애도 곁으로 가려 한다.

 

영원히 슬퍼하는 행복한 몰락에 동의하지 않는 자에게 윤동주는 그냥 교과서에 실린 시, 혹은 팬시상품일 뿐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 곁에서 영원히 슬퍼하는 길, 이 짐승스러운 시대에 긴급히 필요한 행복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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