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 앞에 병사 다니는데…“사격장 조성 기준 없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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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안전’만 있고 ‘병사 안전’ 없는 軍 사격장 설치 조건

 

강원도 철원 6사단 소속 이아무개(22) 일병이 9월26일 갑자기 날아든 총알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총알은 인근 군부대의 사격장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격장 총기사고는 지난 2015년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 사격장을 어떻게 조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상 군 사격장을 조성할 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민가와의 거리다. 군사기지법 제5조에 따르면, 사격장 가장 바깥의 경계선으로부터 1km 안쪽 지역은 ‘제한보호구역’으로 지정된다. 이는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해 요구되는 구역이다. 하지만 병사가 다니는 전술도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9월26일 육군 6사단 소속 이아무개(22) 일병이 진지 공사를 마치고 도보로 부대 복귀 중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사진은 8월21일 K-9 자주포 사격훈련중 순직한 故 이태균 상사와 故 정수연 상병의 운구가 실려나오자 장병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군 사격장 설치 조건에 ‘전술도로’ 없다

 

사망한 이 일병은 사고 당시 사격장 부근의 전술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사고 지점은 사격장 사로(射路)에서 전방 위쪽으로 약 400m 떨어져 있었고, 사격장 바깥 경계선과의 거리는 100m가 채 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총알이 맞게 될 과녁의 뒤쪽을 지나가고 있었던 셈이다. 사격에 이용된 K2 소총의 유효사거리(평균 50% 확률로 표적을 맞힐 수 있는 거리)는 460m(훈련용 KM193탄 사용시)다. 

 

시사저널은 9월28일 국방부 교육훈련정책과에 “사격장과 전술도로 사이의 거리에 대한 기준이 있나”라고 물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그런 기준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뒷산의 형태 등 주변 지형에 대한 기준 역시 없었다.  

 

 

“사격장 조성 기준 있나?… 국방부 “없다”

 

이번 사고를 두고 안전수칙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칙상 군부대 사격을 하기 전에는 “잠시 후 실탄사격이 있을 예정이오니 민간인들과 군 관계자분들은 신속히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란 내용의 안내방송을 해야 한다. 또 주변 출입을 막는 안전통제관과 경계병을 배치하게 돼 있다. 

 

이 일병이 사망한 날엔 경계병 4명이 주변 전술도로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경계병들은 이 일병 일행을 막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행을 인솔했던 소대장은 군에 “총소리가 들리지 않고 별다른 통제가 없어, 사격이 멈춘 것으로 알고 지나갔다”고 진술했다. 

 

군은 뒤늦게 안전관리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육군은 사고 다음날인 9월27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사격장 안전관리 측면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비슷한 사고가 이전에 여러 차례 발생했음에도 재발 방지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전 조치를 소홀히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9월26일 총탄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원 동송읍 금학산 인근 군부대 사격장 모습. 오르막으로 된 사격장의 왼쪽 끝자락 상단 인근에 숨진 이 일병 등 부대원이 이동한 전술도로가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국 사격장 1500곳, 위치 정보는 ‘비공개’

 

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조성돼 있는 육군의 사격장은 약 1500곳이다. 주특기 훈련장 등 육군의 모든 훈련장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인 49%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각 사격장의 위치는 비공개 사항이다. 육군 공보과 관계자는 9월28일 “대부분의 사격장은 군부대와 인접해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군부대가 기밀사항이므로 사격장에 대해서도 공개된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2006년 보고서를 통해 “(군대) 사격장 사업의 경우 사격훈련에 사용되는 화기의 유효 살상반경과 불발탄 및 오발 가능성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9월28일 시사저널에 “이번 사고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에 사격장 안전점검을 꼼꼼히 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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