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단지, 어른들 위한 놀이터만 있었다
  • 강서영(경희대)·박지은(이화여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6 10:16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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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언론상-대상] 지원책 허술한 ‘어린이놀이시설법’…구색 맞추기식 놀이터 양산

 

편집자주​

 

많은 청춘들이 언론인의 길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나돌 정도로 저널리즘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험난한 길을 택한 이유는 바로 ‘세상에 짱돌 하나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일 것이다. 시사저널은 9월15일 제6회 대학언론상을 시상식을 가졌다. 3단계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작에 선정된 작품들은 모두 취재력과 문장 구성, 기획력 등에서 기성 언론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6회에 걸쳐 수상작을 소개한다. 

 

폭염이 한풀 꺾인 8월14일, 재건축 예정인 서울시 강남구 개포주공아파트 1단지에서 강라연양(11)을 만났다. 강양은 매번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다른 단지 놀이터에서 논다. 강양이 사는 개포주공 1단지에는 놀이터가 8개나 있다. 그러나 단지 놀이터 모두 그네 1개만 설치돼 있는 것이 전부다. 놀이터는 관리가 전혀 안 된 듯 잡초가 무성했고, 그네에는 무심한 듯 이불이 걸려 있었다. 강양은 “다른 아파트 놀이터로 갈 때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해서 위험한 것 같다”며 “다른 아파트 놀이터만 좋아서 차별당하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워터파크 놀이터가 들어서는 요즘 추세와 비교했을 때 “미끄럼틀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강양의 소망은 오히려 소박했다.

 

재건축 단지 놀이터 중 상당수가 시설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2월21일 경기도 광명시 재건축 단지인 철산주공아파트 4단지 놀이터에서 한 아이가 홀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 사진=강서영·박지은 제공

 

서울시 재건축 아파트 놀이터 절반 이상 부실

 

재건축 아파트단지에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가 사라지고 있다. 취재팀이 서울시 44개 재건축 아파트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85개 놀이터 중 56%인 48개 놀이터가 ‘2종류 이하’의 놀이기구를 갖춰 미흡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갖춰져 있는 놀이기구도 목마나 시소 등 기초 놀이기구가 대다수였다. 놀이기구를 철거하고 주차장이나 아파트 분양 홍보관 등 다른 시설을 세운 경우, 그대로 폐쇄 방치한 곳도 11곳(13%)이었다. 재건축사업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재건축 조합 설립 인가’ 절차부터 ‘철거’ 절차까지의 재건축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취재 내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가 몇 명인지도 기록했다. 그러나 ‘미흡’으로 판정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한 차례도 볼 수 없었다. 미흡한 놀이터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재건축 단지의 놀이터들이 이토록 부실해진 원인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에 통과된 ‘어린이놀이시설안전관리법(어린이놀이시설법)’은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2014년 본격 시행됐다. 그에 따라 전국의 모든 어린이놀이터들이 안전점검을 받았고, 안전등급을 충족하지 못한 놀이터는 일단 철거됐다. 그 후 대다수 아파트단지들은 시·구로부터 일부 비용을 지원받아 안전등급에 맞는 놀이터를 새로 지었다. 2015년까지 유지·보수 절차를 마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재건축 아파트단지는 구(區)의 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웠다. 이지승 강남구청 주택과 주무관은 “지원금으로 세운 놀이기구를 5년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남은 연(年)수에 따라 지원금을 상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 이주할지 모르는 재건축단지는 지원금 신청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지원금을 받아도 만일 일찍 이주가 시작되면 도로 뱉어내야 할 형편이었다.

 

비용 지원이 부재한 상태에서 아파트 측이 놀이터 건설비용을 전부 충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재건축 단지들은 보통 지은 지 30년이 넘어 보수가 필요한 놀이터가 많은 상태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준으로 놀이터를 지으려면, 놀이터 한 곳당 최소 4000만원에서 7000만원 정도 든다.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던 서울시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4단지 관리소 관계자는 “12개 놀이터 전부를 개·보수해야 했고, 비용 9218만원을 모두 관리비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놀이터 하나당 평균 768만원이 든 셈이다. 일반적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비용이다. 시소 하나, 목마 두 개. 기형적으로 단순해진 놀이터는 지원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어린이 놀이시설 규제를 최소 비용으로 통과하려는 재건축 아파트 측의 궁여지책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미흡’한 43개 놀이터가 모두 합법적으로 승인된 놀이터라는 점이다. 어린이놀이시설법을 포함한 어떤 법에도 ‘놀이기구 필수 구성’과 같은 놀이터의 질적 측면을 담보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강남구청 주택과 이 주무관은 “안전검사만 통과된다면 놀이터 구성은 아파트 자치의 문제”라며 “기구가 다양하지 않은 놀이터에 대해 구청이 제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일부 재건축 단지들은 앞다퉈 놀이터를 자진 폐쇄했다. 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법적 폐쇄’된 놀이터는 어린이놀이시설법이 적용되지 않아 과태료 부과와 놀이터 건설비용 부담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3년, 그리고 놀이의 중요성

 

어린이놀이시설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허술한 법망 사이에서 어른들이 경제성을 앞세워 아웅다웅하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재건축 단지의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른의 3년과 아이의 3년은 분명 다르다”고 단언했다. 영유아·아동기에 이뤄지는 신체·정신적 발달은 성인기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유년 시절의 3년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영유아와 아동에게 ‘놀이’란 성장과 발달의 수단”이라며 “다른 아이들과 바깥에서 어울릴 수 있는 놀이터라는 공간이 3년 동안 부재하다는 것은 아이들의 여러 발달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 큰 피해자는 이주 날짜가 1년 이상 남거나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아파트단지들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제대로 된 놀이터가 부재한 상태에서 최소 4년, 혹은 그 이상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 강남구 홍실아파트는 2014년 놀이터를 법적 폐쇄 조치했으나, 지지부진한 재건축사업으로 이주 날짜가 아직까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놀이시설법의 사각지대인 재건축 단지를 위해서도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주택단지를 위해 어린이놀이시설법 개정안을 발의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다양한 놀이기구로 원하는 만큼 놀 수 있어야 한다”며 “어린이놀이시설법은 비용의 측면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놀이터 질 담보하는 규정 필요”

 

안전에만 치중한 어린이놀이시설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영리 어린이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제충만 대리는 부실한 놀이터가 합법인 실태에 대해 “기구 하나만 놓고 방치하는 놀이터는 분명 문제”라며 “안전뿐만 아니라 아동의 놀이 욕구를 실질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진국의 경우 어린이놀이터에 필수적으로 설치돼야 하는 놀이시설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정글짐, 미끄럼대, 그네, 평균대, 평형봉 등’ 최소 5가지를 기준으로 두고 있다. 일본은 더 나아가 기구의 규격과 재료까지 규정해 놀이시설이 조악해지는 상황을 예방하고 있다.

 

영국의 사례는 우리나라 아동놀이정책의 장기적 방향성을 시사한다. 영국은 2008년부터 아동놀이정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아동놀이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함과 동시에 놀이시설을 정비하고 관련 산업까지 육성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에 따라 아동 인구와 놀이시설의 실태, 놀이터 건축 소요비용에 근거해 총 4200억원을 지자체에 지원했다. 정부도 2015년 ‘제1차 아동정책 기본계획’을 통해 국가적 아동놀이정책을 만들겠다고 한 바 있으나, 아직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장경은 교수는 이러한 세태에 대해 “아이들에게 놀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아직 보편적으로 확대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며 “아동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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