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1주기 집회, 경찰 대응은 달라졌지만 진상 규명 없어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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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인권위·경찰개혁위 권고안 수용…투쟁본부 "책임자 처벌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해야"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하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숨진 백남기씨의 사망 1주기를 맞아 도심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부상을 당한 백씨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뒤 투명하다 지난해 9월25일 숨졌다. 농민과 노동자,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백남기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는 9월23일 오후 7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추모대회엔 150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고, 농업정책 개혁,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등 각계의 요구가 이어졌다. 9월24일에는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9월23일 광화문광장 추모대회가 열리기 전인 오후 2시에는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건물 앞에서 농협의 수입농산물 판매 행위를 비판하는 집회가 열렸다. 백씨가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를 맞았던 종로1가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농민대회와 민중대회가 진행됐다.

 

 

9월2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사망 1주기 추모집회'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김영호 의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경찰은 이번 농민대회에서 '트랙터 행진'을 허용했다. 지난해 경찰은 교통체증과 위험성 등을 이유로 트랙터 이용을 막아왔다.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에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트랙터와 화물 차량을 이용해 서울로 이동하는 농민들을 막아섰고, 농민들은 경기 안성요금소나 서울 양재 나들목 등에서 경찰에 차단돼 발길을 돌려야 했다.

트랙터 행진 허용하고 살수차∙차벽 없애


이번 집회에 트랙터 행진이 허용된 것은 8월27일 인권위가 경찰에 집회∙시위 대응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인권위는 "당시 화물차량의 수와 집회 장소 부근의 교통량 등으로 볼 때 집회 장소 부근에 극심한 차량정체가 우려되지 않았고, 트랙터 등 경찰이 '미신고 집회용품'이라고 언급한 물품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위협적인 기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인권위 권고에 대해 수용의 뜻을 밝혔다. 경찰은 트랙터 행진에 대해 "교통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날 트랙터가 앞장 서 농민단체의 행진을 이끌었지만 제지하거나 막아서지 않았다.

2015년 백씨가 경찰이 쏜 직사 물대포에 쓰러진 종로1가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도 집회 행진을 안내하는 경찰이 배치됐을 뿐 차벽과 살수차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개혁위는 9월7일 '집회∙시위자유 보장방안 권고안 및 부속방안'을 경찰개혁위 전체회의에서 확정하고 경찰에 권고한 바 있다.

당시 경찰개혁위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직사살수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결국 사망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경찰인력 운용, 살수차 사용, 차벽 설치 등으로 인한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기본권 제약과 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며 "경찰은 평화적 집회∙시위를 폭 넓게 보장하고 인권친화적인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6월16일 서울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한 이철성 경찰청장이 백남기씨 사망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경찰은 이 권고안을 받아들였다. 이제 일반적인 집회∙시위 현장에서 살수차를 볼 수 없게 됐다. 경찰개혁위의 권고안에 따르면 소요사태나 핵심 국가 중요시설에 대한 공격행위로 시설이 파괴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살수차를 사용해야 한다. 물대포를 쏠 때도 분산살수, 곡사살수, 가슴이하 직사살수 순으로 시행할 것을 적시하고, 살수 방법을 변경할 때는 현장에서 방송과 전광판 등을 통해 알리도록 했다. 살수차 사용 전 과정에 대한 녹화가 의무화됐고, 구급차도 배치토록 했다. 살수 전 3회 이상 경고방송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차벽 역시 원칙적으로는 금지됐다. 경찰 인력과 폴리스라인만으로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거나 화염병이나 죽창, 쇠파이프 등 폭력행위를 저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집회∙시위를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신고 제도가 도입되고, 경찰의 '집회∙시위 금지 통고'가 최소화해 집회를 보장한 것도 지난해와 달라진 부분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백남기 농민의 사망으로 인해 집회에서 바뀐 부분들이 많지만 아직 해결해야 될 부분들이 많다"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집회를 막았던 경찰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회 제한을 완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특정장소에서 집회나 기자회견에 대한 방해가 여전하고, 집회에 투입되는 경찰 인력이 너무 많다. 경찰은 집회를 전면 보장하고 강력범죄예방과 민생치안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투쟁본부 “책임자 처벌과 확실한 재발방지대책 마련해야” 

 

이날 투쟁본부는 "(백남기 농민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정부의 사과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면서 "다시는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이 일어나지 않고, 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추모대회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사망 사건 책임에 대한 규명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시위 진압을 진두지휘한 구은수 전 청장, 서울청 차장이던 장향진 경찰청 경비국장을 비롯한 피고발인과 참고인들을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문재인 정부의 '촛불 개혁 10대 과제'에도 '백남기 농민 사건 재수사'가 포함됐고, 박상기 법무부장관 역시 백남기 사건에 대한 조속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수사 장기화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백남기씨의 큰 딸 백도라지씨는 "경찰이 인권 경찰로 환골탈태할 때까지 계속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김민문정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경찰의 차벽과 물대포가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배반하고 공권력을 불법 사용해 안타까운 죽음이 일어났다"면서 "남은 것은 책임자 처벌과 확실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검찰은 물대포 국가폭력 살인사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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