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한국 운전면허 인정하지 않는 까닭은?
  •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2 18:09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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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불인정에 대한 ‘88 올림픽 기원설’ 등 잘못된 상식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까진 한국의 운전면허증을 스웨덴 운전면허증으로 바꿀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때 한국에 왔던 스웨덴 교통 당국자들이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너무 험악하게 운전하고, 법규도 거의 지키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스웨덴으로 돌아간 이들은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어도 스웨덴 운전면허증으로 바꿔주지 않게 됐답니다.”(한국 대기업의 스웨덴 주재원 현아무개씨)

 

“한국 운전면허증은 스웨덴 운전면허증으로 바꿔주지 않는데 일본이나 태국·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운전면허증은 스웨덴 운전면허증으로 바꿔준대요. 왜 한국 것만 안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스웨덴 모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는 김아무개씨)

스웨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한국과 스웨덴 간 운전면허 상호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한국 사람이 스웨덴에서 취업이나 유학·사업 등 이유로 1년 이상 거주할 경우 운전을 하지 말든지, 아니면 스웨덴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일본이나 미국·중국·호주 등의 나라들이 한국 운전면허를 인정해 주는 것과 다른 점이다.

 

물론 예외적 조치는 있다. 기업 주재원의 경우 정식 운전면허증은 아니지만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증명서, 즉 운전허가증을 발급해 준다. 카드형으로 된 신분증은 아니고 A4용지로 된 증명서다. 이것도 1년 단위로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배우자까지도 운전허가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차량이 오가는 스웨덴 거리 모습. 한국과 스웨덴은 운전면허를 상호 인정하지 않고 있다. © 사진=이석원 제공


 

1988년 이전부터 운전면허 상호 불인정

 

주재원이 아닌 경우 최초 1년 동안은 한국에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증으로 운전할 수 있다. 국제운전면허증은 운전면허증과 여권만 있으면 한국 내 어느 경찰서에서든지 일정액의 수수료만 지불하면 발급해 준다. 그리고 국제운전면허증은 국내 운전면허증, 그리고 여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 세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에서도 합법적인 운전면허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스웨덴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장아무개씨는 최근 한국에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증의 유효기간이 만료됐다. 장씨는 “앞으로 3년 정도 더 여기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면허는 필요하고, 스웨덴에서 운전면허 따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다시 한국에 가서 국제운전면허증을 재발급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장씨의 계획에는 문제가 있다. 스웨덴 교통국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증은 최초 1회 1년에 한해 유효하다. 다시 발급받은 것은 스웨덴에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앞선 한국의 한 대기업 스웨덴 주재원인 현아무개씨와 스웨덴 한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는 김아무개씨의 이야기는 ‘팩트 오류’다. 한국과 스웨덴 간에는 1988년 이전이든 이후든 운전면허 상호 인정이 이뤄진 적이 없다. 또 스웨덴과 운전면허 상호 인정이 이뤄진 아시아 국가는 일본뿐이다. 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 등도 스웨덴과 운전면허 상호 인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주스웨덴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스웨덴은 1991년 ‘운전면허법’을 제정해 EU 등 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만 운전면허 상호 인정 협정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일본의 경우 이미 훨씬 이전인 1970년대 운전면허 상호 인정 협정을 맺어 운전면허법 제정 이후에도 이를 인정해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한국 정부는 스웨덴 당국과 이에 대한 협상을 진행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꾸준히 스웨덴 정부와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운전면허를 상호 인정하는 문제에 대해 협상을 했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길고 지루한 협상의 결론은 “스웨덴은 운전면허법의 예외를 인정하는 어떤 협상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한국과 스웨덴 간의 운전면허 상호 인정에 관한 협상은 거기서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사관 측에서도 그 이후 더 이상 관련 협상이 진행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재스웨덴 한국 교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 의해 입소문이 난 것인지는 확인 불가하지만, 교민들 사이에서는 앞서 현씨나 김씨가 이야기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한국 운전면허 불인정의 서울올림픽 기원설’이 스웨덴에서 한국 운전면허를 인정하지 않는 ‘정설’이 돼 버린 셈이다. 또 운전면허를 가진 태국인이나 중국인들을 보면서 “쟤들은 되는데 우리는 안 된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국 우리 외교 당국의 홍보 부족이 빚어낸 우화가 돼 버린 것이다.

 

스웨덴 주재원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운전허가증. 발급받는 데 600크로나(약 8만5000원)의 비용이 든다.© 사진=이석원 제공


 

스웨덴 정부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

 

스웨덴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우선 수준급의 스웨덴어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필기시험을 치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어로 치르는 시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필기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실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한국의 운전면허시험보다 훨씬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도의 운전 기술과 소양을 요하는 데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북유럽의 특성을 감안한 눈길 운전 테스트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고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일부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는 편법에 대한 소문도 퍼지고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가서 운전면허를 딴 후 스웨덴에서 교환한다거나, 스파르타식 단기 속성 학원이 있어 거기서 면허를 취득한다는 등등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정보란 이름으로 공유되기도 한다.

 

스웨덴의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항의에 대해 스웨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어쨌든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외교는 늘 변하고,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그 나라의 법적, 제도적 환경도 바뀐다. 2013년에 안 된 일이기에 더 이상 거론도 하지 않는 것은, 귀찮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외교 편의주의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유럽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이 사는 스웨덴. 한국 교민들이 무엇을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고 불만인지 좀 더 관심을 갖고 논의하는 것도 ‘사람이 먼저’인 세상에서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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