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국감, MB 국감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2 16:12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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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2일 시작되는 국정감사, 이명박 前 대통령 관련 공방 치열할 듯

 

국정감사는 통상적으로 현 정부나 전(前) 정부 실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첫 국감은 특이한 양상이 예고돼 있다. 전전(前前) 정부인 이명박(MB) 정권이 국감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을 농단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박근혜 정부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돼 사법부의 단죄를 받으면서 전 정부 실정은 자연스럽게 이슈에서 밀려났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아 인사 실패와 원전 중단 등을 제외하면 현 정부 정책을 추궁할 만한 사안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반면 MB 정부와 관련해서는 이슈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MB 정부 국가정보원의 선거·정치 개입에 이어 ‘MB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기에 MB의 BBK 실소유주 논란까지 다시 제기됐다. 9년 만에 야당에서 여당으로 위치를 바꾼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계기로 ‘MB 적폐청산’을 벼르고 있다. 10월12일 시작되는 국감에선 여당이 국정 주도권의 고삐를 죄기 위해 ‘적폐청산’ 프레임으로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을 거세게 몰아붙일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첫 국감은 사실상 ‘MB 적폐청산 국감’이 되는 셈이다.

 

9월1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MB 정부 국정원 적폐 최우선 거론

 

무엇보다 먼저 MB 정부 국가정보원이 개입된 적폐 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감의 최우선 타깃이 되고 있다. 국정원 개혁위원회 산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MB 정부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 문서에 담긴 82명의 명단을 일부 공개했다. 명단에는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 탁현민 현 청와대 선임행정관, 배우 권해효·문소리·이준기·유준상씨 등이 포함됐다. 영화감독 여균동·박광현·장준환씨 등과 방송인 박미선·배칠수씨, 가수 안치환·양희은씨 등도 명단에 있다. 당시 청와대가 ‘좌파 연예인 비판활동 견제 방안’ 등의 문서를 수시로 내려보냈고, 국정원이 ‘좌파단체 제어·관리 방안’ 등을 ‘VIP(대통령) 일일보고’ 등의 형태로 보고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당시 청와대·국정원 관계자들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감 증인 채택도 점쳐진다.

 

국정원의 ‘민간인 댓글부대’ 동원 의혹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 수사팀의 사이버 외곽팀 활동자금 지급 영수증 분석 결과에 따라 국정원 간부의 횡령 또는 배임 혐의도 드러날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지시 정황이 증거로 발견될 경우 검찰수사가 불가피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도 불가피해 보인다.
 

MB 국감의 예고편은 이미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정국에서도 나왔다. 9월12일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과 박영선 의원이 BBK 실소유주 논란과 김경준씨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된 BBK 가짜 편지 논란을 각각 제기했다. 김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검찰 수사기록에 LKe뱅크가 (BBK 주식 매입 대금으로) 2001년 2월 이 전 대통령 계좌에 49억9999만5000원을 입금했다고 나와 있는데도 검찰은 이를 발표에서 누락했다”며 “부실수사를 넘어 은폐수사 의혹”이라고 주장했다.

 

박영선 의원은 BBK 사건의 ‘가짜 편지’와 관련해 제보자로부터 받은 문자를 공개하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했다. 박 의원이 공개한 문자에는 “가짜 편지에 대한 검찰청의 발표는 담당 검사 박철우 검사의 말 빼고는 전부 거짓”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BBK 가짜 편지는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주가조작 주범인 김경준 BBK투자자문 사장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인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입국하자 한나라당 측이 정부·여당의 기획입국이라며 제시한 물증이다. 박 의원의 재수사 요청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재수사 여부를 검토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답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외자원 개발사업 손실을 재부각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4대강 사업 문제를 거론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공언했다. 홍 의원은 “무리한 자원 개발로 총 20조원이 넘는 혈세를 낭비했다”면서 “이에 대한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게 누구냐.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적폐라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한 진상과 책임을 묻고자 한다”며 이 전 대통령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녹조, 생태계 파괴, 수돗물 안전위협, 농작물 피해, 4대강 자전거도로와 수변공원의 황폐화, 준설모래로 인한 관리비용 발생, 먼지 등 재앙 수준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4대강 사업 당시 환경영향평가는 부실하게 이뤄진 반면, 건설 참여업체들은 담합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고 지적했다.

 

9월14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투자자문회사 설립 발언을 한 화면을 소개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야당은 ‘안보무능’ 프레임으로 역공

 

이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MB 정부 국정원의 박 시장 제압 문제에 대해서도 집중 거론할 전망이다. 국정원 적폐청산 TF는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안’과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 등 소위 ‘박원순 제압문건’을 국정원이 작성했으며 관련한 심리전 활동도 수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이 2009년 9월과 2010년 9월에도 당시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비판활동을 수행하고 원 전 원장에게 보고한 사실도 확인한 바 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2013년 4월 원세훈의 국정원 ‘박원순 제압문건’을 공개하면서 의견서를 내고 검찰에도 찾아갔지만 5개월 만에 아무 소용없이 각하됐다”며 “박원순 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고소·고발한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수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안보·인사 무능’을 집중 추궁할 태세다. 또 ‘포퓰리즘·퍼주기 복지’에 대한 파상공세를 퍼부어 여소야대의 위력을 보여주겠다는 방침이다. 대정부질문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노련한 답변에 말린 측면이 있어 국감에서 이를 설욕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야당과 국민의당은 북한 핵실험·미사일 도발로 점점 고조되는 안보위기 상황에서 사드 배치 등을 놓고 우왕좌왕하고 외교안보 라인이 엇박자를 내는 등 문재인 정부의 안보 무능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야당은 4개월이 넘도록 조각(組閣)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인사 문제도 부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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