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북한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8 14:53
  • 호수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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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차분한 대응 이면엔 ‘안보 불감증’

 

지난 8월 남태평양의 괌을 방문했던 말레이시아인 분상 링(Voonsang Ling)은 예정보다 일찍 짐을 꾸려야만 했다. 북한이 괌 주변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초 연로한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괌을 찾았다. 하지만 링의 가족은 북한의 위협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올해 초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이복형인 김정남의 피살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괌 현지인들도 북한의 위협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비싼 금액을 물고 귀국 항공권을 구해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야만 했다.

 

링은 당시 이 같은 내용을 페이스북에 알렸다. 하지만 한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여행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는 그의 글에 “괌은 매우 위험하다”며 “매우 평화로운 한국으로 오라”고 댓글을 남겼다. 링은 “괌이 공격을 받는다면 서울 또한 안전하지 못하다”고 반응했다. 그러자 한국인 친구는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익숙하다”고 답했다. 링은 “모든 한국인들이 도발을 멈추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8월23일 을지훈련과 연계해 실시한 민방공대피훈련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시민들이 무관심하게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 58% “전쟁 가능성 없다”

 

실제로 8월 괌 포위사격 논란 당시 한국인들도 전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인식했다. 때문에 괌으로 휴가를 가려던 사람들이 취소를 문의하는 일이 많았지만, 실제로 여행을 취소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도발에 대한 한국인과 외국인의 시각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인해 북·미 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다소 완화된 지 한 달도 채 넘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실상 핵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성숙한 국민의식이라는 진단과 함께 지나치게 안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LA타임스는 8월9일 ‘놀라울 정도로 심드렁한(surprisingly blase) 한국인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다다랐지만, 한국인들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에서 1~2시간 거리에 있는 신촌의 상황을 전하며 “이곳 주민들은 물론이고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화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인 분상 링이 괌에서 귀국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 facebook


 

“영토 공격받을 때에도 파티가 계속되는 나라”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9월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58%가 ‘가능성이 없다’고 대답했다. ‘많이 있다’ 13%, ‘약간 있다’ 24% 등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7%에 불과했다.

 

1992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후 1994년 김일성 사망,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기조와 더불어 그 정도가 완화됐으며 2002년 33%까지 줄었다. 2006년 1차 핵실험 1년 뒤인 2007년 51%로 다시 늘었다.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고 있지만,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여론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한국갤럽은 60년이 넘는 휴전 상태와 반복되는 북한 도발로 인해 무뎌진 결과로 분석했다.

 

이 같은 모습은 외국인들에게도 어색하게 비쳤다. 2010년부터 4년간 외국계 기업 한국 법인에서 근무했던 제임스 우드(James Woods·남·49)는 한국에 머물렀을 당시의 특별한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발발하자, 회사에선 한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국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전화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당시 한국인들의 반응이 더욱 놀라웠다고 말한다. 우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북한이 한국 섬(연평도)에 미사일을 쏘고 섬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서울에서는 파티를 멈추지 않았고 계속 음악이 흘러나왔다”며 “한쪽에선 적국으로부터 미사일 포격을 당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파티를 열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고 기억했다.

 

물론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우드도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 사이 김정일이 사망했고 김정은이 집권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북한의 도발은 더욱 잦아졌다. 장거리 로켓을 포함한 미사일 도발도 계속됐다. 우드가 한국을 떠나기 직전인 2013년 2월에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그는 “나도 서울에 있으면서 북한과 연관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점점 익숙해져만 갔다”며 “한국인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나조차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21년간 기자 생활을 한 뒤 한국에 머물렀던 프랭크 아렌스는 한국을 “세계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핵무기 등에 대해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서울은 불과 휴전선으로부터 50km 정도 떨어져 있고, 장거리 미사일과 소형화된 핵탄두가 언제 서울을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지적한 후 “한국인들은 그런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로 옆집의 흉악범과 함께 사는 데 익숙해진 형국”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29일 새벽 6시,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자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다.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김성현씨는 “당일 아침 6시2분에 재난 경고음이 울렸다”며 “튼튼한 건물이나 지하로 피난하기 바란다는 메시지가 왔다”고 밝혔다. 몇 분 뒤에는 “미사일이 통과됐지만 수상한 물건들이 있을 경우 경찰서나 소방청에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가 왔다”고 전했다. 그는 “때문에 새벽 시간이지만 잠에서 깨 TV를 켜고 속보를 볼 수밖에 없었다”며 “처음에는 일본 본토를 향해 미사일을 쏜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설명했다.

 

 

차라리 ‘오버’하는 일본이 낫다

 

실제로 일본의 대응은 빠르고 정확했다. 북한이 5시57분 일본 상공 방향으로 미사일을 발사하자 4분 만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보고가 이뤄졌다. 아베 총리는 보고를 받고 “정보 수집·분석에 전력을 다하고 국민에게 신속하게 알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본 소방청은 ‘J얼러트’라는 비상경보 시스템으로 홋카이도를 포함한 일본 동북부 12개 광역단체 주민들에게 긴급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부 지역에선 옥외 스피커로 사이렌이 울리면서 잠에서 덜 깬 주민들이 급하게 대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상공에 도달하기 전이었다.

 

일본 철도회사 JR히가시니혼(東日本)은 오전 6시부터 30분간 도호쿠 지방으로 향하는 신칸센 운행을 중단했다. 홋카이도 삿포로에서는 지하철과 노면 전차 운행이 13분간 중지됐고, 거리 곳곳에서 놀란 시민들이 지하철역으로 피신하려고 뛰었다. 동북부 지방 8개 현에서 총 48개 초·중·고등학교가 등교 시간을 늦추거나 휴교하는 등의 조치를 내렸다. 마이니치신문, 요미우리신문 같은 주요 신문도 호외를 찍어 신바시 역 등 출근길 인파가 몰리는 길목에서 배포했다.

 

미사일이 해상에 떨어진 이후엔 히로시마현과 시마네현 등 4곳에 육상 요격용 패트리엇 미사일을 긴급 배치했다. 히로시마 북쪽 동해에는 해상용 요격미사일 SM3가 탑재된 이지스함을 출동시켰다. 

 

 

전쟁 나면 모든 게 끝? “살아남을 수 있다”

 

북한이 9월3일 실시한 6차 핵실험의 위력은 50~100kt(TNT 5만~10만톤)으로 분석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50kt급 핵무기 폭발 시 서울에서 2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추정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의 반경 370여m 건물은 증발하고, 2.5㎞ 이내에선 모든 물체가 불이 붙거나 녹아버린다. 하지만 국지도발 등이 발생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다. 전쟁 대처 요령을 숙지하는 것은 막연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공격 시 대처 요령을 한 번쯤은 숙지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공습경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사일 발사 징후가 포착되면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린다. 이때 5분 안에 지하 대피소로 피해야 한다. 집이나 회사 근처 지하 대피소를 미리 검색해 보는 것도 좋다. 대피 공간으로 이동이 어려울 경우 지하철역이나 건물 지하 깊은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실내에선 건물 붕괴에 대비해 탄탄한 탁자 아래에 엎드려야 한다.

 

만일 핵공격이 이뤄졌을 시에는 섬광의 반대쪽으로 엎드린 후 입을 벌리고 눈과 귀를 막아야 한다. 이때 배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배가 땅에 닿으면 지축의 움직임으로 장이 파열될 수 있다. 핵폭발 시 발생하는 섬광을 직접 보면 실명할 수 있기 때문에 눈은 가려야 한다. 입을 벌리는 것은 고막이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화학무기 공격이 의심될 경우엔 반대로 고지대나 건물 고층으로 대피해야 한다. 방독면 또는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외부 공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창문틀, 출입문 틈 등을 접착테이프 등으로 밀폐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화학무기에 노출됐을 경우 흐르는 물에 15분 이상 씻고, 오염된 옷은 비닐봉지에 넣어서 밀봉하는 것이 중요하다. 

 

© 행정안전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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