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과거 찬란했던 영광을 노래하다”
  •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3 12:55
  • 호수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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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싱송로드] 바다·축구 그리고 비틀스의 고향

 

여름이 갈 듯 말 듯 가지 않고 있다. 입추가 지나고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훅 하고 더워진 주말 오후, 종종 가는 카페로 피서를 떠나 ‘다음 싱송로드의 소재를 뭘로 할까’ 고민했다. 가본 곳들, 들어본 음악들, 아직 안 꺼낸 얘기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카페 주인장이 입고 있던 잉글랜드 축구 클럽 ‘리버풀 FC’의 저지(Jersey)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친숙한 하나의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꺼내어졌다. 리버풀 태생으로 흔히 ‘아이리시 컨트리(Irish Country)’ 음악가로 분류되는 네이선 카터(Nathan Carter)가 쓰고 부른 《리버풀로 가는 배 위에서(On the Boat to Liverpool)》라는 노래다. 벗을 만나기 위해 아일랜드의 더블린 항구에서 리버풀로 향하는 밤배 위에 올라 느낀 어떤 설렘을 담은 가사다.

 

저편 해안서 빛이 깜박거리고 / 

배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 

리버풀 부두로 향하네 / 

밤새 노랠 부르고 춤췄네

그가 직접 연주하는 아코디언이 연주하는 아일랜드 풍 멜로디와 2박자의 타악 리듬, 여기에 기타 소리까지 가사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 좋아, 한때 참 많이 들었던 노래다.

 

영국 리버풀 부두. 시계탑 건물이 리버풀의 랜드마크인 ‘로얄 리버 빌딩’ © 사진=Pixabay

그러다 보니 몇 해 전 기억, 그러니까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날 설렘으로 런던 히드로공항 입국 심사대 앞에 두어 시간을 줄 서 있던 기억이 겹쳐왔다. 비록 배를 탄 건 아니었지만, 위 노래의 화자(話者)처럼 나 역시 오랜만에 바다를 건너, 벗을 만나 시내를 함께 걷고 하룻밤을 묵었다. 초여름 템스강은 생각보다 작고 냄새가 났으며, 광장·계단 등 앉을 만한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거나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가 내가 가진 영국 경험의 전부다. 어찌 됐든, 이미지 하나와 노래 하나, 거기에다 개인적 추억 하나를 곁들여 안 가본 도시로의 여행을 갑자기 시작하게 됐다.

 

네이선 카터는 잉글랜드 출신이지만 애초에 북아일랜드 태생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며, 리버풀에서 살다가 십대 후반에 더블린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알고 들으면 가사가 더욱 흥겨우면서 아련하다). 찾아보니 리버풀과 더블린은 배로 여덟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리버풀은 20세기 중반까지 잉글랜드 내 주변 지역을 통틀어 가장 큰 도시였으며, 더블린이야 말할 것 없이 아일랜드의 중심지였기에, 서로 간의 교역과 이주, 문화적 접변이 매우 활발했다. 그러니까 리버풀 태생의 음악가가 아일랜드 풍의 작법과 연주를 어렸을 때부터 배워 쓰는 것이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닐 터다.

 

 

‘아이리시 컨트리 대부’ 네이선 카터의 고향

 

이번에는 아이리시 밴드 더블린 사람들(The Dubliners)이 연주하고 부르는 버전의 민요 《리버풀을 남겨두고(Leaving of Liverpool)》를 들어보자. 앞의 노래와는 달리, 가사 속에서 배는 리버풀항(港)을 떠나고 있다. 다만 더블린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벗을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다. 생계를 위해 사랑하는 이, 사랑하는 곳들을 떠나 배를 타게 되는 것이다. 바다 냄새가 나는 두 이야기를 들으며 리버풀과 그 인근에 대한 장면들을 그려보게 된다.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사회학적’ 편린(片鱗)들인 셈이다.

 

그대 (thee) 안녕 내 진짜 사랑 / 돌아오면 다시 하나가 되겠소 / 

슬픈 건 리버풀을 떠나는 게 아냐 / 하지만 그대여 (darling), 

그댈 생각할 때(가 슬픈 거라오)

앞서 언급한 축구 클럽 저지의 주인공인 대전시 대흥동의 독립서점 ‘도시여행자’의 주인장 부부는 축구에 대한 사랑을 빌미로(?) 리버풀을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단다. “여행은 어땠나요”라고 묻자 여러 경험담을 건네줬다. 리버풀 FC의 저지를 입고 길을 걷다 동네 라이벌 팀 에버튼 FC의 팬으로 보이는 할머니에게 다짜고짜 뺨을 맞았던 에피소드라든가, 록밴드 비틀스를 태동케 한 역사적 장소 ‘캐번 클럽’에 가 (비틀스가 공연하던 바로 그 장소는 없어졌다지만) 현대의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유별난 감회를 느꼈다든가 하는 얘기들이었다.

 

주인장 부부는 또한 이 지역에 대한 공부를 통해 얻은 이야기들도 들려줬다. 잉글랜드 북서부 최대의 항만 도시로 번성했던 리버풀은, 20세기 중엽 내륙으로 향하는 운하 시스템의 건설과 더불어 경제적 주도권을 주변의 ‘안쪽’ 지역, 예컨대 맨체스터 등지에 내줬다고 한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그 부두도 이 운하 체계의 일부다). 그래서 이 지역의 축구팬들은 맨체스터 기반의 축구팀들에 대해 더더욱 강한 경쟁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영국 리버풀엔 록밴드 비틀스가 공연한 것으로 유명한 ‘캐번 클럽’이 있다. © 사진=Pixabay

 

비틀스 태동시킨 ‘캐번 클럽’

 

그는 리버풀 FC의 팬들이 홈경기 때 스타디움 안에서 ‘떼창’하는 상징적인 노래 하나를 소개해 줬다. 제목은 《우린 절대 홀로 걷지 않을 거야(We Will Never Walk Alone)》다. 본디는 1940년대에 초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회전목마》 속에서 나온 노래였다고 한다. 세계의 여러 클럽 팬들이 이 노래를 경기장에서 불러 왔는데, 이 노래를 부르는 팀들끼리 연대감을 느끼고 친선 경기도 한다고 했다. 

 

바람을 뚫고 / 비를 뚫고 걸어 / 

꿈이 버려지고 날아가버려도

언젠가 삶 속에서 시간과 돈과 상황이 된다면, 오늘 적은 노래들처럼, 더블린을 거쳐 배를 타고 리버풀항에 닿은 뒤 걸으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려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단, 특정 축구 클럽의 셔츠는 입지 않은 채로 말이다. 

 

아이리시 밴드 ‘더블린 사람들’의 공연 모습. © 사진=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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