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물산 불법 수주 의혹에 검찰 수사 착수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6 09:14
  • 호수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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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재건축 수주액만 4600억원대…검찰, 공무원 유착 여부 조사

 

검찰이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물산)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삼성물산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 재건축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동원됐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본지가 지난해 8월 ‘[단독] 삼성물산, 강남 일대 1조7000억원대 재건축사업 부당 수주 의혹(제1399호)’ 기사를 통해 관련 의혹을 보도한 지 1년여 만에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수사는 청와대에 날아든 한 통의 진정서에서 시작됐다. 진정이 접수된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과 2015년. 여기엔 삼성물산의 비리를 입증할 각종 정황과 증거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당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삼성의 ‘부당거래’가 한창이던 시기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 청와대는 진정 내용을 대검찰청에 이첩했고, 검찰은 최근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에 배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물산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現 래미안대치팰리스) 재건축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시사저널 고성준

 

 

 

 

 

삼성, 철거업자 내세워 갖은 협박과 회유

 

청실아파트 재건축단지(사업비 4672억원)는 2000년 처음 재건축 논의가 이뤄졌다. 그해 4월 ‘청실아파트 재건축사업 추진위원회(추진위)’가 발족하면서 창립총회가 열렸다. 총회엔 전체 조합원 1378명 중 641명이 참석했는데, 이 중 488명(35.4%)의 동의를 얻어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키로 했다. 추진위와 삼성물산은 2001년 사업약정(MOU)을 맺었고, 이듬해인 2002년 전체 조합원의 50.14%에 해당하는 691명의 동의를 얻어 인준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03년 7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시행되면서다. 법안의 핵심은 경쟁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건설사가 수의계약을 통해 사업을 수주하면서 과도한 추가분담금을 요구하는 등의 부조리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합 내에서는 경쟁입찰을 거치는 편이 이득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조합은 삼성물산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경쟁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새로 선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면서 ‘경쟁입찰로 시공사를 선정한다’고 조합정관도 개정했다.

 

이후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강남 재건축 열풍이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그러던 2009년 청실아파트 재건축사업이 다시 본격화됐다. 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위한 경쟁입찰 절차를 시작하려 했다. 이때 강남구청으로부터 예상 밖 공문을 받았다. 삼성물산이 이미 시공사로 선정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경쟁입찰로 시공사를 선정할 것으로 믿어온 조합원들의 반발은 상당했다.

 

삼성물산은 도정법의 예외규정을 이용해 시공사에 선정됐다. 도정법은 시행 이전에 체결한 수의계약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인정했다.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2002년 8월9일 전까지 조합원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을 것’과 ‘도정법 시행 두 달 이내인 2003년 8월31일까지 규정된 서류를 갖춰 관할 당국에 신고할 것’이다. 이런 규정에 따라 삼성물산이 2003년 7월29일 규정된 서류를 구비해 시공사 선정 신청을 했고, 같은 해 12월 강남구청에서 이를 수리했다는 것이었다.

 

반면, 조합은 삼성물산에 시공사 선정 신청에 필요한 자료 일체를 넘겨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합장이던 고(故) 이아무개씨는 녹취록을 통해 ‘도정법에 규정된 신고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신고서류를 제공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조합감사이던 이아무개씨 역시 조합총회 녹취록에서 ‘신고 서류를 준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삼성물산 측이 신고처리를 완료해 놓고 조합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남구청의 시행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행문은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 법적 효력을 갖는 지방자치단체장 직인이 포함된 문서다. 조합은 물론, 삼성물산도 이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삼성물산은 시행문을 받았지만, 이후 분실했다는 입장이다.

 

국내 대표적 건설회사가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사업의 법적 효력을 갖는 서류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강남구청에도 시행문은 없었다. 사무관리규정시행규칙은 시행문을 그 기안문과 함께 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합은 삼성물산과 강남구청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합이사이던 김아무개씨는 2010년 12월 법원에 시공도급계약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그러자 삼성물산 하청 철거업자가 ‘해결사’로 나서기도 했다. 김씨와의 대화녹취록에서 철거업자는 ‘어제 삼성을 만났다. 위 가처분 소를 취하하면 소송비용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뜻하는 바를 들어주겠다’는 회유와 ‘협조하지 않으면 서로 자폭하자’는 협박을 함께 하기도 했다. 김씨는 철거업자의 이런 행동이 삼성물산의 사주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철거업자가 포섭에 실패하자 삼성물산 임원이 직접 김씨에 대한 회유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근 삼성물산의 강남 재건축 불법 수주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 시사저널 최준필

 

 

 

 

 

시공사 선정과 관련한 문건 진짜 조작됐나

 

결국 소송은 그대로 진행됐다. 삼성물산은 조합으로부터 정상적으로 자료를 넘겨받아 시공사 선정 신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실아파트를 비롯한 7개 재건축단지 시공사 선정 신고 내용이 담긴 접수서류와 이런 서류가 접수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강남구청 접수대장, 신고를 처리한 강남구청 내부 기안문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법원은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줬다. 증거로 제시된 서류만 놓고 보면, 정상적인 수주와 신고가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패소 이후 조합 측은 2012년 검찰에 삼성물산을 고발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삼성물산이 재판부에 제시한 문서들의 허위 정황이 차례로 나타났다. 먼저, 삼성물산의 시공자 신고 접수서류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나온다. 서류 좌측 상단에 붙어 있던 태그라벨의 바코드와 일련번호를 확인한 결과, 1996년도 문서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남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이 문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003년도 삼성물산 신고서류로 위장하기 위해 강남구청 과거 문서에 붙어 있던 태그라벨을 옮겨 붙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남구청의 접수대장도 비슷한 의혹을 받는다. 강남구청은 정보공개 청구를 한 후 반년 이상 접수대장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 7개월여가 지난 뒤에야 접수대장을 제공했는데, 여기엔 삼성물산이 7월29일 시공사 선정 서류를 접수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조합에 최초로 신고서류를 요청한 날은 8월29일이다. 규정된 서류 없이 신고를 접수했음에도 이를 받아줬다는 얘기다. 삼성물산은 이날 신고를 접수하고, 강남구청의 보완 요청에 따라 조합으로부터 8월29일과 10월28일 관련 서류를 넘겨받아 신고를 완료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추가 정보공개 청구 결과, 강남구청은 삼성물산에 서류 보완 요청을 한 적도, 보완된 사항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물산에 서류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조합 측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시공사 선정 신고와 관련한 강남구청 내부 기안문도 위조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강남구청 전산상에 저장된 문서와 보관 중인 종이문서 사이에 차이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종이문서에 없는 오탈자가 전산상 문서에 등장하는가 하면, 틀과 형태도 달랐다. 강남구청은 2003년까지 종이문서를 사용하다 2004년 전자문서법이 시행되면서, 기존의 서류는 외주용역업체를 통해 스캔해 보관하고 있다. 따라서 원본인 종이문서와 사본인 전자문서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특히, 스캔본에는 기안자 사인 하단이 잘려 있는 등 컴퓨터를 이용해 서명을 합성한 흔적도 포착됐다. 조합 측은 이를 뒤늦게 기안문을 급조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로 봤다.

 

특히, 강남구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과정에서 위조 의혹은 더욱 명확해졌다. 시행문을 삼성물산과 조합에 전달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청구에 강남구청 공무원은 기안문 전자문서 파일을 전송했다. 그러면서 ‘전산정보과에 보관 중인 원본 전자문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자문서법 시행 이전인 2003년에는 전산화가 미구축된 상태여서 전자문서가 존재할 수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문서 정보 확인 결과, 최종 수정 및 저장된 날짜가 2003년이 아닌 2010년으로 나타났다. 또 강남구청 내에서 생성된 모든 전자문서의 작성자가 ‘gangnam’인데 청구를 통해 제공받은 전자문서의 경우는 ‘user’였다. 2010년, 강남구청 외의 장소에서 전자문서가 만들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삼성물산이 수주한 서울 강남구 서초동 우성아파트 재건축 현장. © 시사저널 고성준

 

 

朴 정부 때 접수된 진정, 文재인 정부가 수사

 

조합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과 2015년 청와대에 이런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발송했다. 여기엔 조합원 200여 명의 서명이 포함됐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삼성물산은 2015년 9월 재건축사업을 마무리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그 배경을 진정 당시가 삼성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당거래가 한창이던 시기였다는 점과 연관 짓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조합원들이 진정을 통해 제기한 의혹이 실체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아직 검찰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은 바 없어 별달리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發, 강남 재건축 비리 수사 본격화되나

 

삼성물산에 대한 검찰수사가 강남권 재건축사업장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물산이 도정법 예외규정을 통해 수주한 재건축사업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솔아파트 외에도 11곳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일부 재건축사업장에서는 이미 시공사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나온 바 있다. 강남구 개포동 시영아파트 재건축사업(사업비 8431억원)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삼성물산이 2002년 8월9일까지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했음에도 동의자 수를 임의대로 조작해 시공사 신고 절차를 마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재건축사업은 1997년에 시작됐다. 그해 7월 창립총회를 열어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정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창립총회 속기록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1665명 가운데 직접 참석 820명과 서면결의서 202명 등 모두 1022명이 참석했고, 이 가운데 902명이 단독 시공사로 나선 삼성물산에 동의했다. 그러나 2003년 삼성물산이 강남구청에 시공자 선정 신고를 할 때 동의자 수는 990명으로 둔갑했다. 문제는 동의자 수의 근거가 1997년 7월 열린 창립총회였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실제 토지 등 소유자 수가 1970명으로 파악되면서 과반수 이상의 동의율(50.3%)을 맞추기 위해 임의로 동의자 수를 늘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재건축이 한창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시영아파트 현장. © 시사저널 고성준


삼성물산이 2003년 8월29일 시공자 변경 신고를 내는 과정에서도 동의자 수는 다시 한 번 늘어났다. 직접 참석자 902명이 동의를 했고, 서면결의서를 통한 동의자가 141명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동의자 수의 근거는 ‘창립총회’였다. 상기한 창립총회 속기록에 따르면, ‘902명의 동의’는 직접 참석자와 서면결의서를 합한 수다. 결국 141명의 추가 서면결의서를 통한 동의자가 갑작스레 생겨난 것이다. 이번에도 전체 조합원 수가 2038명으로 재확인되면서 과반수 이상(51.2%)의 동의율 확보를 위해 허위 신고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물산은 변경한 동의자 수가 창립총회 참석자 수를 넘어서자, 이마저도 기존 1022명에서 1105명으로 늘렸다.

 

강남구 서초동 우성1차아파트 재건축사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삼성물산은 2001년 10월 열린 추진위원회 창립총회에서 삼성물산의 시공사 선정 안건에 대해 조합원 786명 가운데 49.7%에 해당하는 391명의 동의를 얻었다. 2002년 8월9일까지 조합원 절반 이상 동의라는 도정법 예외규정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도정법 시행 이후 삼성물산은 서초구청에 시공사 선정 신청을 했다. 2003년 조합원 12명으로부터 서면결의서를 받아 부족한 동의 수를 메운 것이다.

 

대법원 판례상으로는 이런 삼성물산의 시공사 선정은 무효다. 대법원은 롯데건설의 신반포2차 재건축사업 과정에서 2002년 8월9일 이전, 총회에서 토지 등 소유자 40.3%의 동의를 받고 신고기간에 16%의 추가 동의를 받은 시공자 신고 수리는 법규 위반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시영·우성아파트 조합원들은 관할 구청을 상대로 삼성물산의 시공사 선정 신고수리 무효 확인 청구 소송 등을 벌였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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