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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스웨덴 최상의 복지 탄생지 ‘살트셰바덴’을 가다

살트셰바덴 협약, 노·사 성의 있는 협의와 정부 중재가 빚어낸 작품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6(수) 18:30:00 |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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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급격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9년간의 보수 정권을 끝내고 진보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국 사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변화를 맞고 있다. 그중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 중 하나가 노동시장 변화다. 해방 이후 철저히 기업 위주의 경제체제가 고착화된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예년에 비해 파격(?)적으로 오른 최저임금이 그렇고, 공공부문에서 시작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그렇고,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기업의 ‘갑질’ 횡포에 대한 정권과 사회 차원의 두드러진 압박이 그렇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는 기업이나 사회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변화라기보다 정부 주도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없애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라는 대통령의 무언의 압박, 재벌과 대기업에 대해 혹독한 미래를 예고한 공정거래위원장의 노골적인 압박,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 적절히 올라탄 사회의 자각이 노사는 물론 정부까지 가세한 노·사·정의 새로운 인식 전환도 가능한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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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노사관계 속 피어난 극적인 합의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 노동자·사용자·정부의 획기적인 협력으로 스웨덴을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만든 ‘스웨덴 모델’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스웨덴 모델’의 모태는 ‘살트셰바덴 협약(Saltsjöbadsavtalet)’이다. 협약의 탄생지 살트셰바덴(Saltsjöbaden)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동쪽으로 약 20여km,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호숫가의 작은 마을이다. 발트해로 향하는 ‘스톡홀름의 입구’와도 같은 이곳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재벌기업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한 휴양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스웨덴 모델’의 기본 정신으로 통하는 역사적인 노·사·정 합의, ‘살트셰바덴 협약’이 탄생한 것이다.

 

최근 스웨덴을 여행하는 한국의 여행자들 사이에서 살트셰바덴의 그랜드호텔 방문이 인기다. 살트셰바덴 그랜드호텔은 스톡홀름에서도 가장 값비싼 고급 호텔로 유명하다. 발트해를 향한 멜라렌 호수의 끝자락에 있어 풍광도 아름답다. 그랜드호텔 주변엔 스톡홀름 최고 부자들의 호화롭고 아름다운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다. 호텔 뒤편 호숫가에는 크고 작은 멋진 요트와 보트가 줄을 서 있고, 호텔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섬 레스토란트홀멘(Restaurantholmen)은 산책과 간단한 식사, 커피와 맥주가 어울리는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여행자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 건 한국 정권 교체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살트셰바덴을 찾은 한국인 여행자들에 “이곳을 왜 왔느냐”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살트셰바덴 협약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거나 “역사적인 노동운동의 역사가 숨 쉬는 곳에서 하룻밤 자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노동 사회 변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곳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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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해고 ‘유연’…기업과 정부 책임 ‘무한’

 

살트셰바덴 협약은 사실 사상 최악의 노사 관계 속에서 태어났다. 1931년 유혈 사태로까지 확산된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최악이었다. 그 이듬해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erna·사민당)은 세계 대공황과 맞물린 노동자들의 고통을 방관할 수 없었다. 사민당 최초의 총리이기도 한 페르 알빈 한손은 이 문제를 사민주의에 입각해 고민하다가 1938년 당시 재무장관이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에게 노조와 사용자 모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노사 문제에 정부가 나서는 것을 꺼렸던 건 사용자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사민당을 뺀 채 지루한 협의를 하던 노동자와 사용자 측은 더 이상 정부의 개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고, 발렌베리 가문에서 먼저 사민당을 불러들였다. 비그포르스 재무장관에게 자신들이 소유한 휴양지에 테이블을 마련할 테니 담판을 짓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LO(스웨덴 노조연맹)와 사용자 대표인 SAF(스웨덴 사용자연합), 그리고 사민당이 모여 스웨덴의 미래를 결정한 것이다.

 

이 협약에는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가 엄청난 희생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다. 비그포르스는 LO에는 ‘고용의 유연성’을 요구했다. 그리고 생산성의 극대화에 협조할 것도 당부했다. 그리고 기업에는 최상의 일자리와 노동 복지를 요구했다. 또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지만 해고된 노동자를 책임지게 했다. 최고 85%에 이르는 소득세도 내게 했다. 결국 고용과 해고가 유연하지만, 그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무한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스웨덴 모델’이 태동하게 됐다.

 

살트셰바덴 그랜드호텔 뒤 호숫가 벤치에서 만난 김상호·정여운 커플은 이 호텔에서 신혼의 첫날을 보냈다. 지방의 모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시간강사인 김씨는 “살트셰바덴 협약에 대해 처음 안 건 5년 정도 됐다”며 “결혼 전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스웨덴 모델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이곳에 더 와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면 자신의 수업을 들을 학생들에게 좀 더 생생하게 스웨덴의 노사 협력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웨덴의 복지와 최고의 노동 조건, 그리고 최상의 기업 환경은 어느 한쪽의 노력이나 희생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 계급과 사용자 계급의 성의 있는 협의와 사민당 정부의 중재가 빚어낸 작품이다. 특히 사민당이 장기 집권을 하면서 그 완성이 가능했다. 스웨덴의 노동조합을 부러워하기만 할 일도 아니고, 발렌베리그룹을 무작정 롤모델로 삼을 일도 아니다. 노사정위원회만 열면 반쪽이니, 파행이니를 반복하기만 하는 것으로는 스웨덴의 모델을 습득할 수 없다는 것을 살트셰바덴의 짙푸른 호수가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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