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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낙제점’ 식약처가 낳은 생필품 ‘케미포비아’

생리대·달걀 등 제품·식품 안전성 논란 반복 전문성 바탕으로 국민에게 정보 적극 제공해야

노진섭 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6(Wed) 08:59:16 |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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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색소 어린이 감기약, 중금속 낙지, 독성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 유해물질 생리대 등 최근 10년 동안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제품·식품)의 안전성 논란이 반복된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정보를 받지 못한 국민은 ‘무엇을 먹고 어떤 걸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 한다.

 

그 배경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전문성 부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식약처는 점수로 매기자면 낙제점이다. 그 이유는 전문성과 원칙이 없기 때문”이라며 “모든 약은 공인된 시설(GMP)에서 만들고 그 성분도 공개되는데, 사람 몸에 들어가는 한방의 약침은 어떤 성분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모른다. 또 외국에서는 두통 치료에 사용하는 보톡스를 국내에서 두통 치료에 사용하면 불법이다. 식약처에 전문성이 없으니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10년을 돌아보면, 거의 매년 굵직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007년 소비자보호원이 어린이 감기약 10개 중 7개에서 타르색소가 나왔다고 공개했을 때, 당시 식약청은 “의약품에 허용된 성분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선진국은 어린이용으로 무색소 의약품을 권장했다. 타르색소가 어린이 호흡기와 피부 건강, 주의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받아들인 것이다. 8년이 흐른 2015년 식약처는 어린이 의약품에서 타르색소를 줄이겠다고 슬그머니 발표했다. 전형적인 늑장 대응이다.

 

이런 늑장 대응에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봤다. 2008년 9월12일 중국은 신장계통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멜라민이 분유에서 검출돼 이를 먹은 영유아 6000명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식약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멜라민 분유 문제가 불거진 지 12일 후 국산 과자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자 식약청은 분유나 우유가 든 중국산 식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과자가 팔렸는지에 대한 추적은 이뤄지지 못했다.

 

2004년 당시 식약청은 발암물질인 탈크(석면)의 안전성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용역 연구 보고서를 받았고, 2005년부터 유럽은 탈크를 규제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09년 ‘석면 베이비파우더’ 사태가 터졌다.

 

2010년 서울시가 낙지 머리 속 먹물과 내장에서 카드뮴이 기준치의 최대 15배 넘게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후 서울시와 식약청은 안전성 공방을 벌였고 당시 식약청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2011년 부산에서 일부 꽃게, 대게, 낙지의 내장에서 또다시 중금속 기준치를 초과한 카드뮴이 검출됐다. 그때도 식약청은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던 식약청은 2012년 내장을 포함한 꽃게와 낙지 등의 중금속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기준을 내놨다.

 

2014년 식약처에 신고된 건강기능식품 부작용 추정 사례 1733건 중 백수오 제품 관련 사례가 두 번째로 많은 것(전체 17%)으로 집계됐다. 식약처는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2015년 소비자원이 시중에 유통 중인 32개 백수오 제품을 조사했더니 90%가 가짜로 판명 났다. 지난해에는 가습기 살균제에 이어 치약에서도 살균제 성분(CMIT/MIT)이 검출됐다. 식약처는 “회수 조처는 했는데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아리송한 설명을 내놔 혼란을 가중시켰다. 최근 ‘살충제 달걀’ 논란이 생기자 식약처장은 유통 중인 제품 일부만 검사한 후 “안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유통 중인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계속 검출되자 전수조사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용가리 과자’를 먹고 위에 구멍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식약처는 3일 동안 아무런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여론이 악화하고 국무총리의 지시를 받고서야 대책을 마련하느라 허둥댔다.

 

늑장 대응, 말 바꾸기, 안전 불감증, 모른 척하기 등은 식약처 관련 뉴스의 단골 메뉴가 됐다. 식약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의료인은 “식약처에 자문하는 전문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친정부 성향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런 인사들이 산업 육성 명분으로 각종 승인 절차를 느슨하게 했다. 이런 것이 계속 사회문제로 돌아왔다. 정부가 바뀐 요즘은 승인 절차가 조금 까다로워진 것 같다. 식약처는 정권에 따라 전문성과 원칙이 변해서는 안 되는 조직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식약처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하라면 조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현재의 식약처다. 식약처의 총체적 문제가 표출된 게 이번 유해물질 생리대 사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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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의 총체적 문제 표출된 ‘생리대 사태’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10월 강원대에 생리대 실험을 맡겼다. 그 결과는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부 교수가 올 3월 여성환경연대 주최 ‘여성건강을 위한 안전한 월경용품 토론회’에서 공개했다.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다. VOC란 페인트·접착제·세척제 등에 사용되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다. 포름알데하이드·벤젠·톨루엔이 VOC의 대표적인 물질이다.

 

그러나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생리대 포장지에는 포름알데하이드·형광증백제·색소·염소표백·향료 등 나쁜 성분이 없다고 표기돼 있다. 한 생리대 생산업체 관계자는 “식약처가 정한 방법으로 실험해 이런 물질이 검출되지 않아야 시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튼, 식약처의 기준에 따라 생리대를 만들었지만 유독물질이 발견됐다. 그러면 식약처는 당시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한 후 국민에게 생리대 안전성에 대해 밝혀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고, 결국 8월 이 문제가 언론을 통해 재조명되면서 사태가 커졌다.

 

사실 생리대의 구조는 단순해서 유독물질이 나올 곳이 거의 없다. 크게 표지, 흡수체, 방수층으로 나눈다. 피부에 닿는 부위인 표지는 천연펄프나 섬유질로 돼 있어 부드럽다. 흡수체는 펄프나 고분자 흡수제가 있어서 자체 부피의 400배에 해당하는 수분을 빨아들여 가두는 역할을 한다. 이 수분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한 방수층은 폴리에틸렌(PE) 등으로 만든 얇은 비닐 필름이다.

 

이런 생리대에서 유독물질이 검출됐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업체가 유해물질을 사용했거나, 생리대의 접착제가 문제인 경우다. 방수층 겉에 있는 접착 성분은 양면테이프처럼 생리대와 속옷을 붙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부위는 피부에 닿는 부분이 아니며, 피부에 닿아도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정량 이상의 VOC를 흡입하거나 섭취해야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강원대 실험에는 접착제가 있는 생리대를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험은 생리대를 밀폐된 투명박스에 넣어 체온(36.5도)과 같은 따뜻한 환경을 만든 후 방출되는 물질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VOC가 최대 6만㎍/㎥ 검출됐다. 이 양을 김만구 교수는 실내 공기 오염도와 비교해 설명한 바 있다. 다중이용시설의 실내 공기 중 VOC 기준은 500㎍/㎥이다. 이 이하로 공공시설의 내부 공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생리대에서 검출된 6만㎍은 상당히 많은 양으로 보인다. 이 결과가 마치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부풀려졌다. 전문가들은 실험 자체가 잘못됐고 검출된 양도 인체에 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적다고 설명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접착제를 제거한 후 실험해야 생리대 자체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생리대에서 나오는 물질을 공기 오염도와 비교하면 안 된다. 6만㎍/㎥은 많은 것 같지만, 1㎥에 생리대 약 1만 개가 들어간다. 6만㎍을 1만 개로 나누면 생리대 한 개에 6.5㎍ 정도 검출된 셈이다. 이 정도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진은 인체 유해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그 성분의 부작용을 연구한 결과가 없는 현 상태에서 유해·무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논란이 되는 실험에 대해 식약처는 안일하게 대응했다. 식약처는 “생리대의 VOC를 조사한 나라는 없다”거나 “유럽은 일반 공산품으로 관리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나마 의약외품으로 깐깐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전수조사는 없다고 밝혔다. 여론이 악화하자 식약처는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식약처 실험법 또 다른 논란 부를 것”

 

그럼에도 생리대를 사용한 소비자가 생리불순 등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독성 쇼크 증후군(TSS) 가능성이 나왔다. 이덕환 교수는 “TSS일 것 같다. 포도상구균이나 화농연쇄상구균과 같은 박테리아가 생리대에서 증식하면서 독소를 만든 것이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여러 여성에게 물어보니 생리대를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 이상 착용한다. 체온, 습도, 분비물 등이 있는 생리대는 세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험을 의뢰한 여성환경연대도 “생리대에서 검출된 VOC에 인체에 해로운 독성물질이 포함된 것은 맞지만 해당 성분이 생리불순, 생리량 감소, 생리통 등의 부작용에 직접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생리대의 TSS 사태는 1980년에 밝혀진 바 있다. P&G사가 개발한 탐폰 생리대는 흡수력이 뛰어나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상 증상이 보고됐다. 조사 결과, 세균학자와 감염증 전문가들은 생리대가 질 내로 삽입되므로 포도상구균이 독소를 생성하기에 완벽한 조건이라고 밝혔다.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자 식약처는 생리대를 분석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가 결정한 실험 방법은 이른바 고체시료법이다. 시중의 모든 생리대를 급속 냉동한 뒤 가루로 분쇄해 성분을 검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식약처가 기존에 고시한 실험법과 다르다. 기존 방법은 생리대 성분과 관계없이 방출되는 물질을 측정하는 방출실험법이다. 식약처의 ‘의약외품에 관한 기준 및 시험방법’에 따르면, 포름알데하이드의 경우 생리대를 가늘게 잘라 증류수와 섞고 일정 온도와 시간 후에 검출을 확인한다. 이덕환 교수는 “생리대 업체에는 기존 실험(방출실험법)으로 안전성을 유지하라고 한 식약처가 이번에는 고체시료법으로 안전성을 파악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전혀 다른 결과치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 또 새로운 논란이 불거질 것은 자명하다. 식약처의 전문성이 이렇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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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불필요한 케미포비아 해소해야”

 

식약처 인력 1700명 중 식품 안전 담당자는 약 360명이다. 생리대와 같은 의약외품 전담자는 10명 내외다. 대부분 제약 등 의료분야 전문가여서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생필품 안전에 대한 전문가는 태부족이다. 실제로 의사와 약사 등 전문직종은 특별 채용 형식으로 식약처 공무원이 될 수 있지만, 식품 분야는 연구직 외에 식품 전문가가 공무원이 되는 길은 공무원 시험뿐이다. 몇 해 전 식약처에서 식품을 담당했던 한 식품 전문가는 “식품 분야 박사라도 7급 시험을 쳐야 하고 식약처에 들어가서도 대우를 받지 못한다. 나도 첫 6개월 동안 일을 받지 못해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잤다. 그러니 식품 전문가로 식약처에 들어가려는 사람도 없고 공무원이 된 후에도 비전이 없어 결국 몇 년 만에 그만두는 행태가 반복됐다. 식약처는 ‘불량식품 관리’가 ‘식품 안전’인 줄 안다”고 밝혔다.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보건·환경·위생에 대한 정부의 잣대는 보수적이어야 한다. 예컨대 식품을 승인할 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조직법과 축산물위생관리법 등에 따르면, 의약품은 물론 생필품 특히 식품 안전의 컨트롤타워는 식약처다. 2013년 식약청이 식약처로 격상되면서 식품 안전 관리를 일원화했다. 각 부처로부터 관련 업무들을 이관 받았다. 그러나 부처 간 이견 등 각종 이유로 일부를 해당 부처에 위탁한 상태다. 따라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각 부처와 협조해야 한다. 예컨대 살충제 계란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휘발물질 생리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조한다. 문제는 이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식약처는 양계 농가 현장을 다 관리할 수 없으므로 농림축산식품부에 현장 관리를 맡겼다. 위탁 업무의 특성상 식약처가 농식품부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책임져야 하지만, 두 기관 간 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상대 부처가 발표할 내용이라며 제대로 된 정보 공개에 소홀했고, 한 곳이 발표한 결과를 번복하는 등 국민 혼란을 가중시켰다. 한마디로 ‘불완전한 일원화’ 체제에서 살충제 달걀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김태민 식품전문 변호사는 “식품의 안전관리는 식약처가 생산부터 소비까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사실상 농식품부가 실무를 처리한다”며 “이번에 완전한 일원화를 이루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식약처가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이덕환 교수는 “이번에 휴대폰 케이스에서 납이 검출됐다고 한다. 납은 손으로 만진다고 해로운 것이 아니라 화학반응이 있어야 유독한 물질이다. 이런 점을 정부가 제때 국민에게 알려야 불필요한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가 생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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