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2050년 탈원전 실현은 충분히 합리적”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8.3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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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프랑스 상원의원 장 뱅상 플라세 인터뷰

 

“빨리빨리!”

 

장 뱅상 플라세(49) 프랑스 상원의원이 인터뷰 도중 뱉은 유일한 한국말이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가 인터뷰 시간을 넘겨 질문했을 때도 끝까지 대답을 해 줬다. 

 

한국계 입양아인 플라세 의원은 8월28일 한국 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최정화 이사장)이 주최한 문화소통포럼 참석차 한국에 왔다. 8월30일에는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에서 강연을 했다. 

 

장 뱅상 플라세(49) 프랑스 상원의원 © 시사저널 이종현

 

한국외대에서 강연한 한국계 프랑스 의원 플라세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을 ‘좌파’라고 소개했다. 그 이유에 대해 “프랑스란 나라가 나에게 기회를 줬고, 이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플라세 의원이 “가족은 모두 우파인데 나만 좌파”라고 말할 때는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치적 뿌리도 좌파다. 그는 한때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당에 몸담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규제 완화 등 친기업적 정책을 내세우다가 비난을 받고 탈당했다. 이후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한 신당 ‘앙마르슈(En Marche․전진)’ 소속으로 지난 5월7일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런 마크롱 대통령에 대해 플라세 의원은 “국제 사회에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마크롱은 프랑스 정치에서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여준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지율 30%대 프랑스 대통령, “아직 평가하긴 이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당선 직후 60%가 넘던 마크롱의 지지율이 취임 100일 만에 30%대로 반토막난 것이다. 외신들은 그 원인으로 노동 개혁과 복지․국방예산 삭감, 또 이 과정에서 보여준 ‘유치한 권위주의(Juvenile Authoritarianism)’ 등을 꼽았다. 플라세 의원의 생각은 어떨까.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대통령이 뽑힌 지 3개월밖에 안 됐다. 이 짧은 시간에 성적표를 매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임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추진했던 노동․기업 관련 정책들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산이나 세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들 정책은 균형 잡힌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의회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크롱과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정부가 8월29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보건․복지․노동 분야에 배정된 예산이 작년보다 12.9% 올랐다. 국방 예산도 6.9% 증가했다. 이 가운데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한지 석 달이 지난 지금도 70%를 웃돌고 있다. ‘탈권위’는 정부에 대한 긍정평가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다.(리얼미터 8월17일 여론조사) 플라세 의원도 이와 같은 한국의 여론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지지율 70%대 한국 대통령, “내가 평가하긴 적절치 않다”

 

그는 “한국 정치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 신문에서 한국 관련 소식은 모두 확인한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 책도 대부분 읽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마크롱 대통령과 달리 지지도가 높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마크롱에 대해 성적을 매기기 힘든 것처럼,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 대통령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건 알고 있나?

 

“알고 있다. 원전 문제는 프랑스에서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환경부 장관은 물론 마크롱 대통령도 원전에 대해 얘기한다. 나는 탈원전에 찬성한다. 일단 원전은 안전 문제가 걸려 있다. 부산에서 20km 떨어진 지역(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이 있는 울산시 울주군)에 원전이 지어진다고 알고 있는데, 그 근처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들었다. 프랑스는 원전 6기의 건설을 중단시켰다.”

 

“‘2050년 탈원전 실현’은 충분히 합리적인 프로세스”

 

한국의 경우 탈원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추진해야 하나?

 

“한국에서 탈원전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은 최적의 기술이 없어도 20~30년 뒤엔 (탈원전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탈원전이 실현되는 기한을 2050년이라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충분히 합리적인 프로세스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4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 ‘대체에너지 대책을 마련하면 2050년경에는 탈원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지지한다.”

 

플라세 의원은 2011년에 환경보존을 이념으로 한 좌파 정당 ‘녹색당’의 상원 원내대표를 지냈다. 하지만 당의 좌경화에 반발해 탈당, 2015년에 ‘환경민주당’을 창당했다. 여전히 환경이란 가치는 놓지 않은 셈이다. 그는 “프랑스에선 문화와 산업, 교통 등의 분야가 모두 생산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낭비를 우려하다가 생태주의적 사고를 갖게 됐다”고 했다. 

 

장 뱅상 플라세 한국계 프랑스 상원의원이 8월30일 한국외국어대학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고국에 분노 느꼈지만…“조금씩 한국 알아가는 중”

 

한국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솔직히 말하자면 버림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강한 분노를 갖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플라세 의원은 1968년 서울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 이름은 권오복(權五福)이다. 고아원에서 지내던 그는 7살 때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중산층 부부에게 입양됐다. 이후 지난 2011년에 녹색당 상원의원 신분으로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36년만에 처음이었다. 

 

“2011년 뒤로 지금까지 10차례 이상 비즈니스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젠 개인적인 목적으로 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국에 대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대한 분노도 조금씩 사그라지는 걸 느낀다. 정체성 때문에 젊은 시절에 혼란을 겪었다. 오히려 지금은 그 덕분에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나의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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